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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광풍을 해소하려면
임진우 2018-10-02 13:52:10

‘의회 효과(Congressional effect)’라는 말이 있다. 미국 뉴욕의 교수이자 펀드매니저인 에릭 싱어가 고안해 냈다. 1965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S&P500 지수의 흐름을 보니 의회가 열려 있는 동안에는 평균 0.31% 상승했지만, 폐회 기간 평균 상승률은 16.2%에 달했다고 한다. 싱어는 의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만 주식을 보유하는 뮤추얼펀드를 내놨고 대성공을 거뒀다.
정부의 간섭을 싫어하는 시장의 속성을 얘기할 때 흔히 사용되는 일화다. 정부에서 시장을 띄우기 위해 호재를 내놓으면 시장은 주저앉고, 반대로 억누르려 각종 규제를 가하면 시장은 더 흥분한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손을 대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일이 없다는얘 기다.

 

임상균
매일경제신문 부동산부장

 

정부 규제를 비웃는 부동산 시장
한국 부동산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먼저 노무현 정부 시절로 돌아가 보자.
2005년 8월, 정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를 60%에서 40%로 크게 내리는 조치를발표한다. 참여정부들어 계속 오르던 집값을 잡기 위한 첫 대책이었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수요를 잡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해 서울 아파트값은 12.8% 올랐다.
이듬해 정부는 더 강력한 부동산 억제책을 가동했다. 3월 말 총부채상환비율(DTI)도 40%로 하향 조정했다. 소득을 따져서 대출 한도를 정하는 제도로 집을 살 수 있는 재원을 쪼이는 수단으로는 LTV보다 더 강력하다. 노무현 정부는 동시에 회심의 칼을 빼 들었다. 재건축을 해서 얻는 이익의 상당분을 국고로 환수하는 초과이익환수제였다.
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그해 11월 수도권에 164만 가구를 공급하는 대책까지 내놨지만 2006년 서울의 아파트 값 상승률은 무려 33%에 달했다. 2007년 1월 DTI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초강수도 내놨지만 같은 해 서울 집값은 2.7% 오르며 정부를 안달 나게 했다.
결국 집값 상승을 끝낸 것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이어진 글로벌 경제의 추락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당시와 같은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정권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는 거래, 금융, 세제 등 전방위에 걸쳐 규제를 쏟아냈다. 1년 반 동안 내놓은 대책이 7번이나 된다.
주택의 생성 시점을 보더라도 재건축 초기 단계, 분양 단계, 완공 후 기존 주택 등이 망라돼 있다. 하지만 시장은 아랑곳없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1년간 서울 25개 구의 집값은 평균 16.4% 올랐다. 지난 5년의 연간 상승률은 2013~2014년 0.7%, 2014~2015년 5.5%, 2015~2016년 6.2%, 2016~2017년 12.4%다. 집값을 잡겠다고 규제를 가하니 되레 집값이 폭발했다.

올 7월 이후 상승세에는 ‘미친 집값’이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강남권과 일부 강북에 한정되던 상승세가 서울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입주 물량이 몰리고 미분양에 신음하던 경기도마저 상승세에 합류했다.

 

시장에 대한 잘못된 진단
정부의 집값 억제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우선 잘못된 진단이다.
시장의 속성을 무시한 규제책만 내놨으니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서울은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수도이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강남에 들어와 살고 싶어한다. 수요는 무
궁무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급은 한정돼 있다. 서울에 집 지을 땅은 이제 외곽의 그린벨트 정도만 남아 있다. 숫자로도 증명된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 서울에 새로 들어선 집은 6만 8,000가구이고, 재건축·재개발 등으로 멸실된 집은 4만7,000가구이다. 2만1,000가구만 순증했다는 얘기다. 5년 평균 순증 주택 수(4만6,000가구)에 못 미친다. 강남 4구에는 지난해 1만5,000채의 아파트가 새로 들어섰지만 멸실된 아파트는 1만7,000채나 됐다. 오히려 줄었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2016년 기준으로 96.3%다.
결국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에도 택지로 발굴할만한 땅이 여의치 않다. 김포 평택 파주 등 경기 외곽권은 얼마든지 토지개발 여력이 있지만 이런 곳이 서울의 대체지가 될 수는 없다. 지금도 그쪽은 여전히 미분양이 쌓여 있다. 서울 혹은 서울에 인접한 경기권에서 땅을 찾아야 하지만 빈 땅이 거의 없다. 실질적인 공급 효과를 보려면서울 내의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서 공급해야 하지만, 정부는 이 또한 막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 문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가동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한 35층 층고 제한이 대표적이다. 박 시장은 재개발에 대해서도 뉴타운 지정해제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신규주택 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기존주택에서조차 공급을 틀어막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8·2대책을 통해 재건축 단지의 경우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조치를 내렸다. 분양권도 서울에서는 완공 때까지 팔수가 없다. 다주택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를 대폭 올렸고, 세제 혜택을 부여하며 민간임대사업자로 등록을 유도했다. 이리 하니 시장에서 매물이 잠겨버리는 역효과가 났다. 집을 팔 수 없게 만들어놨는데, 수요는 꾸준하니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시장은 공급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수요를 억제하는 데만 집중해 왔다. 대출규제가 대표적이고 보유세인상도 집을 사려는 욕구를 억제하는 수단이다.

 

부동산을 정치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이번 정부 들어 집값 대책의 효과가 반감되는 또 다른 이유는 부동산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부동산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치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동산을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결구도로 프레임을 만들거나, 저소득층과 청년 즉, 현 정부의 지지층을 위한 복지재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실제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의 집값 대책은 서울 특히 강남권의 고가주택의 보유세를 대폭올리는데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오랜 기간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을 뿐이고, 자신은 가격상승을 위해 아무 일도 한 게 없는데, 세금만 잔뜩 늘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당하는 부자들은 원망과 분함을 표출하고, 무주택자들은 통쾌함으로반긴다. 정부의 정책당국자들은 틈만 나면 집값 급등을 투기세력의 준동 탓으로 돌리는 것도 이러한 계층 간 반목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일부에서는 부자에 대한한풀이가 담겨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갖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부동산정책은 경제부총리가 총괄해 왔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보다 기획재정부가 총괄한 이유는 부동산을 경제정책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청와대에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그것도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윤종원 경제주석이 아닌 김수현 사회수석이 사령탑이다. 8·2대책도 정통관료인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아닌 정치인 출신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맡았고, 김수현 수석이 청와대에서 별도로 기자회견까지 했다.
김수현 수석은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부동산 정책은 경제 정책이기도 하지만, 사회정책 나아가 그 자체가 정치이기도 하다”라고 단언한 인물이다.
의아스러운 것은 김 수석도 서울 강남에 집을 가지려는 욕구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책의 한 대목이다.
‘집값이 비싼 동네의 고3 졸업생 1,000명당 서울대 합격률은 가장 낮은 지역에 비해 4배나높다. 부동산 재산 격차가 사교육비 격차로, 결국 학력 격차로 귀결되는 것이다. … 공기좋은 시골에서 웰빙생활을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값이 비싸고 많이올라 돈벌이가 잘되는 동네에 사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수석은 강남에 집을 갖고 있거나 사려는 사람들을 투기세력으로 몰며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간주하고 있다. 부동산을 정치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게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구도가 강화될수록 유리한데 현 정부가 굳이 강남 집값을 잡겠냐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으로 돈의 물꼬를 돌려라
다행히 정부는 9·13대책을 통해 서울 혹은 서울근교에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실제 얼마나 공급될지, 그 물량과 위치가 수요를 충족할지 여부를 떠나 공급확대라는 시장의 요구에 반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변화다.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부동산으로 들어오는 돈의 물꼬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손쉽고도 확실한 대책은 금리 인상이지만 여의치 않다. 미국이 올들어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했음에도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실물경제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즉시 유동화할 수 있는 현금과 금융자산(M2) 규모는 2500조 원 이상으로 집계된다. 지난 7~8년간 우리나라 통화량 증가세는 폭발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풀린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 가느냐가 국가 경제의 큰 흐름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산업 영역으로 투자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오히려 산업자본화를 틀어막는다. 기업 할 의욕을 떨어뜨리는 정책뿐이다. 임금, 근로시간, 조세, 정책결정 등 기업 활동 전 부문에 망라돼 있다.
최저임금인상, 주52시간제 등은 기업은 물론 소자본 창업마저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 일본 등 전 세계가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감세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우리는오히려 법인세를 올렸다. 결국, 한국이 미국보다 법인세가 더 높아지는 역전 현상까지 빚어진다. 미국 기업들은 자국 정부가 법인세를 낮추자 경쟁적으로 임금 인상, 투자확대 등의 계획을 내놓으며 화답한다. 넘치는 유동성이 산업으로 유입돼 생산을 늘리고, 고용 확대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며 소비 진작이 진행되는 선순환 구조가 그려지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부담만 더 늘리고 있으니 거액의 돈이 생겨도 기업을 해보겠다는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넘치는 유동성이 산업자금으로 가지 못하며 부동산만 기웃거리는 이유다. 이 물꼬를 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를 살려야 하고, 방안은 기업이 맘 놓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규제를 풀며 응원하는 것이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약력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前 미국 미 UC버클리대 객원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 매일경제신문 증권부, 국제부, 경제부 차장, 과학기술부 부장 / 現 매일경제신문 부동산부 부장
주요저서 : 『중국발 금융위기, 어디로 갈 것인가』, 『율곡, 한국경제를 꾸짖다』, 『도쿄
비즈니스 산책』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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