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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의 대재앙Ⅱ
신용경제 2019-01-07 15:13:58

<2018 인구 절벽이 온다> 저명한 인구학자 해리 덴트가 한국을 향해 보낸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 제목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은 일본을 눈이 빠지도록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저출산의 원인에서부터 저출산 해소의 장애물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의 패턴에 유사한 점이 많으니, 일단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의 고통과 폐해를 경험해온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행착오를 줄이라는 이야기다.

 

 

함인희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저출산 늪에 빠진 한국사회
오늘날 한국사회가 저출산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산아제한 정책의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저출산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정책 개입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음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4년 출산율 1.04를 기록하면서 그제야 저출산 대책 수립에 나섰지만 그때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중증 상태였다.
이뿐만 아니라 저출산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심각한 시행착오를 거쳤음 또한 주목을 요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10여 년간 1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꾸준히 하강 곡선을 그린 이유를 분석한 자리에서, 출산율 하락의 주범은 일·가정 양립의 고통으로 인해 출산을 포기한 워킹맘이 아니라, 결혼 적령기 인구의 결혼율 하락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
결혼율 하락이 저출산을 거쳐 인구절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함을 일찍이 간파한 것은 기업이었다. 당시 기업 쪽에서 제시되었던 해법 가운데는, 80년대 초반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면서 출산율이 하락했으니 ‘통행금지를 부활시키자’라는 농담과 더불어, 결혼 적령기를 지나도 미혼으로 남아있는 이들에게 ‘독신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포함된 바 있다.
다만 혼인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만큼 독신세 부과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 후, 일본에서는 ‘부모 의존세’도입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결혼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 변화
결혼과 출산의 분리를 인정해온 유럽과 달리, 출산은 ‘정상가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고수해온 한국과 일본에서 결혼율과 출산율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임은 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문제는 왜 결혼율이 떨어지느냐인데, 이는 신세대 결혼관의 눈부신 변화를 통해 원인의 일단을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대를 대상으로 “성, 사랑, 결혼의 순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해보았다. 그 결과 2000년만 해도 사랑 → 결혼 → 성(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성관계를 한다)는 응답이 약 6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사랑 → 성 → 결혼(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하고 결혼한다)이라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혼전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음이 확인된 셈인데, 드디어 올해는 “결혼을 선택지에 넣은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다소 과격한 의견까지 새롭게 추가되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는지를 표현하면서 미국의 가족사회학자 스테파니 쿤츠는 “지진이 일어나는가 했더니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는 비유를 든 바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혼 여성들은 왠지 주눅 들어 있었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변명하려 했으며, 행여 노처녀 히스테리란 소리를 들을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역전되어 ‘당당한 비혼에 주눅 든 기혼’으로 변화했다. 비혼의 이유를 물어보면 나이를 불문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현재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데 결혼은 장애물일 뿐이다” “여자 친구와 1년 정도 함께 살아보는 동안 결혼생활에 대한 미련이 깨끗이 사라졌다” “결혼한 친구들 모두 나를 부러워한다” 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향후 출산 계획을 인터뷰한 자료를 접한 적이 있다. 약 50%만이 출산을 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출산을 원치 않는 이유로는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것만큼 내 자식을 위해 희생할 자신이 없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아 고통을 반복하도록 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내 인생에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등 기성세대가 예상치 못했던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고백이 등장했다.
저출산이 진정 위기 상황이라면, 그래서 이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 그 누구보다 결혼과 출산을 담당하게 될 세대의 솔직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구상하는 것이 필수이리라 생각한다.

 

일본 경험, 타산지석 될까
2019년 중학교 2학년에 진입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가 되면 그들 숫자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더 많을 것이라는 추계가 나온 적이 있다. 이제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이해서 인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네 저출산 대책이 주로 기혼부부의 일·가정양립 지원과 보육 지원 등에 모이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 지원에도 출산율 제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은 진
정 유감이다. 물론 일·가정 양립 지원 및 보육 정책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도모함에 그 자체로 충분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를 저출산 해결과 연동
하면서 저출산 해법에 착시를 야기해온 것은 필히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제 정부가 출산율 제고에 연연해 하지 않고 전 생애주기에 걸친 삶의 질 제고를 목표로 삼기 시작했음은 진정 반가운 일이다. 출산율 제고 이전에 양성평등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음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저출산의 진짜 원인이 결혼율 감소에 있다면 결혼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매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율을 높일 방법을 찾는 일은 쉽지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실패를 경험해본 일본의 사례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돼줄 것이다.
일본에서는 결혼율 감소에 기여한 현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채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패러사이트(parasite) 싱글’이 지목된 바 있다. 이에 저출산의 주범인 결혼율 감소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혼활(婚活)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 적이 있다. 여기서 혼인활동을 의미하는 혼활은, 취직을 위해 취직활 동이 필요하듯 결혼을 위해서도 운명적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 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었던 다채로운 혼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결혼율은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그대로 저출산 유지로 연결되면서 오늘날 일본은 ‘가족 파산(破産)’ 내지‘가족 난민(難民)’으로 표상되는 가족 차원의 부양 위기를 심각하게 앓고 있다.
물론 저출산의 위기 앞에서 한국이 일본이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반복하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세밀히 관찰한다면 적어도 다가올 재앙을 예측함으로써 예방 내지 대처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덴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처럼 저출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후 저출산이 가져올 사회 각 분야의 충격을 미리 재단하여 충격을 완화하거나 방지하는 정책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저출산이 일상화된 미래, 인구 감소 사회도 고령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가족에서부터 교육·노동을 거쳐, 의료· 연금 등의 제반 영역에 걸쳐 저출산 친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투자해야 하리란 생각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시작됐고, 노동력 부족 현상도 조만간 시작될 것이며, 머지않아 자녀의 존재를 전제로 한 건강보험 및 연금정책도 위기에 봉착할 것이요, 세금 정책도 폭넓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가족과 자녀의 존재를 전제로 한 사회보장을 개인 단위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는 일본의 행보가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필자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 학사, 美 에모리대학교 사회학 박사 / 前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원회의 비상임위원, 이화여자대학교 경력개발센터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 現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주요 저서 :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오늘의 사회이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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