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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새로운 도약대 만들어야
신용경제 2017-06-05 16:09:38

 

캡처.JPG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나는 19대 대통령 선거 한 달 전쯤 신문에 ‘링컨의 세 귀’라는 칼럼을 썼다.
사람은 보통 두 귀로 듣는다. 하지만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스스로 “세 귀를 다 열고 듣는다”고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의 대사 가운데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들었던 대목이다. 무릇 국가 최고 지도자는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을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잘들어야 한다.
그 한 달 후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맞았다. 그의 취임 일성은 무엇보다 잘듣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짧은 취임사 가운데 ‘대화’ ‘소통’ ‘토론’ 이라는 말이 열 번이나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참모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퇴근길 시장에서 시민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도 열겠다는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전 정부의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던 만큼 새 대통령의 탈권위적 소통 의지에 대한 박수 소리가 컸다.
나는 문 대통령이 정말이지 링컨처럼 세 귀를 모두 열고 듣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좌절하는 젊은이들이나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비판하는 정적에도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념, 계층, 세대, 지역에 따라 이리 갈라지고 저리 쪼개진 나라에서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아무리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소통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결코 지난날과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지 못한다. 거대 권력의 쇠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오늘날의 정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말한 비토크라시(vetocracy)의 경향을 보인다. 이제 온갖 반대세력들이 정부의 결정을 거부하고 지연시킬 수 있다.

 

반세기 전 우리나라 인구는 2,800만 명이었다. 지금은 5,100만 명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많이 배우고 더 부유해졌으므로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층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가장 많은 표심을 얻어 대권을 쥐었지만 대통령을 낸 집권 여당의 국회 의석은 전체의 40%에 불과하다. 새 정부는 대선 공약들을 이행하기 위한 입법 과정에서 의회권력의 거부권 정치에 자주 부딪힐 것이다. 새 정부의 정책들은 또한 언제든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글로벌 자본과 냉혹한 시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회와 시장의 저항에 부딪힌 지도자는 흔히 대중영합적인 포퓰리스트가 되기 쉽다. 포퓰리스트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면서 의회라는 대의기구를 무시하고 무력화하려 한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한편으로 여소야대 정국의 의회권력과도 충분히 대화하면서 협치의 틀을 만들어가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또한 ‘가속의 시대’에 걸맞은 혁신적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참으로 숨 가쁜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낙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산다. 나보다 훨씬 더 힘이 세고 똑똑한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선진 기업의 빠른 추격자였던 우리 기업들은 혁신적인 선도자가 되지 못하면 생존마저 위협받을 처지에 몰려 있다.
이 가속의 시대에 개인과 기업, 국가가 어떻게 하면 번영할 수 있을지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은 이시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아무리 열심히 국민과 소통하고 통합의 정치를 실천하려 애쓰더라도 그 책무를 소홀히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일자리 가뭄은 구조적인 문제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대증요법이며 임시처방일 뿐이다. 물론 지금처럼 일자리 가뭄에 목이 탈 때는 그런 마중물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근원처방이 될 수는 없다.
근원처방은 경제구조와 사회제도 전반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붕어빵 인재를 양산하는 산업화시대 공장식 교육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해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고 평생학습이 가능한 체제로 바꿔야 한다. 또한 혈연과 학연과 지연을 따지는 고질적인 연고주의를 깨고 기득권을 틀어쥔 이익집단의 지대 추구를 막아야 한다. 우리가 갈수록 빨라지는 기술 변화와 자본의 흐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빨리 적응하고 빨리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경제·사회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정치를 해야한다.

앞으로 5년은 한국이 재도약할 것인지 퇴보할 것인지를 가름할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개혁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새로운 도약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길에는 숱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리더십도 시험받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10년 동안 집권하며 영국을 바꾼 토니 블레어의 말은 참고할 만하다. “리더십은 사람들의 바람을 알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뭔지 알고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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