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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꽃피운 중세도시, 피렌체 찾아가다
신용경제 2017-05-08 14:24:02

 

로마에서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던 이른 아침.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많은 예술가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도시인 이탈리아의 북부에 위치한 ‘피렌체’로 출발하였다. 중부 이탈리아의 심장인 토스카나의 수도이자 중세 르네상스 문화를 낳은 피렌체는 다채로운 예술, 역사,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 ‘르네상스의 요람’, ‘중세의 아테네’, ‘이탈리아 예술의 수도’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피렌체 역사지구는 198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고,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등이 바로 이곳, 피렌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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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생가를 복원한 집 단테기념관
햇살이 짙어지는 오후 1시경, 우리는 피렌체 시인 단테 기념관에 도착했다. 르네상스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중세와 근세의 분수령을 이루는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는 1265년 3월에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단테 알리기에리’이며 세례명을 ‘드란데라’로 받았기 때문에 후에 단테라 불리게 되었다.
원래 그가 살던 집은 없어졌으나 피렌체시가 단테가 살았던 위치의 건물을 사들여 단테 기념관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에 처음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그의 행적을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이 침실과 서재 등 7개의 방에 걸쳐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 전편을 한국어를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인쇄해 계단 벽에 걸어 둔 것이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계모 밑에서 자란 탓에 모성애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동경을 품고 성장했다. 그러던 단테가 9살이 되던 해에 동갑내기 베아트리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유년 시절 경험한 베아트리체와의 운명적이고도 진귀한 만남은 후에 단테의 인생행로를 좌우한 사건이 되었다. 첫 만남 이후, 길을 가다
베아트리체와 인사를 나누게 된 단테는 황홀함에 빠져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을 담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관습으로 인해 단테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베아트리체가 아니라 부모님이 정한 배우자 였던 젬마 도나타와 1286년에 결혼을 하게 된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그러다 1290년 6월, 베아트리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됐고 슬픔에 빠진 단테는 그때까지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쓴 시를 엮어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냈다.

 

무엇보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1275년부터 약 20여 년간 시학을 비롯하여 다방면에 걸쳐 교육을 받았는데, 중세의 스콜라 철학뿐 아니라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까지 섭렵하였다.
정치 입문 5년 만인 35세에 도시국가 최고의 지휘인 대통령에 선출되는 등 화려한 정치 생활을 했지만, 이후 당파싸움에 휘말려 직위를 박탈당하고 국외 추방을 당하고 만다. 그러다 1301년 11월, 단테와 뜻을 함께한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돌아갈 기회를 얻지만 끝내 돌아갈 것을 포기하고 방랑생활을 계속하며 <신곡>의 집필에 몰두하였고, 말년에 고향 피렌체가 아닌 나벤나에 머물며 집필하다 숨을 거뒀다. 향년 56세였다.
단테의 ‘신곡’은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사후의 세계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도덕, 윤리를 연결하는 상상의 세계를 그려주는 작품으로 기독교적인 신앙 차원에서 자신 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와 조토의 종루
다음으로 간 곳은 두말할 나위 없는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였다.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로 피렌체에서 가장 높이가 큰 건축물이자 유럽에서는 네번째로 큰 성당이다. 특히 흰색, 분홍색, 녹색의 대리석이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다. 성당의 건축은 1296년에 시작되어 1371년에 본당이 완공되었고, 돔은 브루넬레키에 의해 1437년에 완공된 것이다. 돔의 내부에는 비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으며, 돔의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463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멋진 피렌체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두오모의 돔 전망대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으로 나온 바 있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낭만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두오모 바로 옆에 있는 조토의 종루는 82m의 종탑으로 14세기 말에 건축되었다. 두오모와 마찬가지로 흰색, 분홍 녹색의 삼색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조토가 설계한 것으로 1334년에 처음 건축을 시작하여 그가 죽은 지 22년이 지난 1359년에 완공되었다.
종탑 전체 문양의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다. 스콜라 철학에서 기인한 문양들이 종탑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데 제일 아래의 육각형 대리석 부분에는 인간의 창조와 농업, 예술, 법률 등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두 번째 층에는 고대 신들의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세 번째 층은 세례자 요한, 시발리 무녀, 고대 예언자들의 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세 번째 층부터 창문이 만들어져 있는데 창 주변의 섬세한 꽃 모양 조각이 두오모와 매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종탑의 정상까지 414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이 두오모의 쿠풀라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피렌체 정치의 중심지 시뇨리아 광장·옛 공화국의 종합청사 베키오 궁전피렌체의 가장 중심이 되는 시뇨리아 광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피렌체정치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공화정 시대의 시민들은 이 광장에 모여서 토론을 하고, 거수투표도 하면서 공공 모임에 참여하였다. 광장 중앙에는 넵륜의 분수가 있고, 그 옆으로는 지암불로나가 만든 코시모 1세 대공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의 주인인 코시모 1세는 토스카나 지역을 통치하던 인물이다.
분수 근처에 청동으로 된 둥근 바닥돌이 깔린 곳은 사보나틀라가 화형에 처해진 장소이다. 베키오 궁전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의 복제품이 세워져 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진짜 원본은 현재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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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년에 완공된 베키오 궁전은 피렌체 공국의 정부청사로 쓰인 곳이다. 총 94m의 종탑이 건물 가운데 서 있으며 볼록볼록 튀어나온 벽 끝이 특징인 토스카나 고딕식 건물로 현재 일부는 시청사,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입구에는 피렌체 공화국 문장을 지닌 사자상이 놓여있다. 궁전 안뜰에는 베로키오가 만든 ‘돌고래를 안은 천사’ 작품이 있고 궁전 내부는 2~3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500인 방에는 미켈란젤로의 ‘승리’ 상을 만날 수 있다.
단순한 외형과 달리 내부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궁 옆으로는 넵륜의 분수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의 모사품과 ‘헤라클레스’, ‘유디트’ 등이 있다. 그래선지 여기는 늘 기념 촬영을 하는 이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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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걸작을 만나다,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궁전과 아르노 강 사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회화를 모아 놓은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미술관으로 1560년에 시작하여 20년 동안 건축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가 행정사법 기관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사무실로 지어진 것으로 ‘ㄷ’ 자형 건물에 메디치 가문의 사무소(우피’는 사무소라는 뜻의 옛말)가 세워져 이런 이름이 붙였다.
오랫동안 메디치가에서 모은 미술품들은 1737년 피렌체시에 기증되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이 더해지면서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소장품은 13세기 비잔틴과 고딕양식의 그림부터 18세기 바로크 양식그림까지 망라되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조토의 ‘마에스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성모’와 23살 때의 자화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와 ‘수태고지’ 미켈란젤로 ‘성 가족’ 등으로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은 다른 어느 미술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높은 작품성과 중요도를 자랑한다. 특히 2~3층 전체에 걸쳐 이탈리아 중세 종교화로부터 르네상스의 탄생과 그 후 북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어떤 차이점이 생겨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로크로 이어졌는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단테의 가묘가 있는 피렌체 고딕 양식의 성당
아쉬운 피렌체의 마지막 일정, 산타 크로체 성당을 찾아갔다. 이곳에는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토시니 등의 무덤이 있고 단테의 가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296년 공사를 시작해 14세기 후반에 완성된 고딕 양식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당이다. 성당 앞에 들어서자 피렌체가 자랑하는 인물 단테의 동상이 일행을 맞이하고 있다. 이 동상은 처음에는 산타크로체 광장의 중앙에 서 있었는데 1966년 대홍수 피해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단테는 생애 마지막에 추방을 당해, 베네치아에서 병에 걸려 객사했기 때문에 시신 없이 가묘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의 묘는 현재 라벤나에 있으며 피렌체에서는 단테의 시신을 돌려 달라고 라벤나에게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라벤나가 끝까지 거부하고 있어 여전히 라벤나에 묻혀 있다.

 

피렌체에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라는 예술가가 태어난 자체로도 명성을 드높여준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불후의 예술작품들은 전 세계에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가치를 더해준다.
대부분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다.
그 시대의 종교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상징물이다.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그곳 예술가들이 남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이탈리아를 알리고, 피렌체를 자연스럽게 빛나는 도시로 만들었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가장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훌륭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작품들을 발굴하고 찾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여행객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감동을 받고,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는 관광자원이 없을까, 자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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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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