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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해상강국 베네치아
신용경제 2017-06-05 17:32:08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중세 시대에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이탈리아 최강의 공화국이었다. 일찍부터 지중해 무역의중 심지로 발전했으며 14~15세기에는 동방과의 향료 및 비단 무역을 통해 부유한 해상 무역 국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오면서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고, 1866년 이탈리아 통일 왕국에 합병되면서 지금은 아름다운 관광 도시로서 그 명성을 이어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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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선상에서 본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분명 특이한 도시다. 어떤 도시도 환상과 현실을 이렇게 예술적으로 결합시킨 곳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카사노바가 로맨스를 일으킨 이래, 여행자와 작가 심지어 독재자까지도 베네치아에 공화국에 매혹되었다. 바이런, 헨리 제임스부터 현대 베스트셀러 작가 재닛 윈터슨에 이르는 많은 작가들이 베네치아를 그들의 작품 무대로 삼았다.
베네치아는 예술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을 지녔음이 분명했을 것이다. 해상무역을 통해서 각 나라에서 건너온 진기한 물품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 물품들 속에는 다양한 문화적 정취들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무솔리니가 세운 ‘자유의 다리’
우리는 피렌체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베네치아로 향했다. 약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이다. 베네치아는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있기 때문에 19세기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철도다리는 1846년에 오스트리아가 세웠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유의 다리’라고 불리는 자동차용 다리는 1933년 파시스트 정권 무솔리니가 세웠다.

무솔리니는 이 다리를 건설하면서 자신의 절대 권력을 영원히 누리리라는 환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후에 자신이 피살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독재자의 최후는 비극적인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다리를 통과해 베네치아로 들어간 자동차 이용자들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쪽에 있는 트론케토(Tronchetto)라는 거대한 주차 전용 인공 섬에 주차해야 한다.
전용 인공 섬에 주차한 다음 베네치아로 가는 버스 터미널을 찾아갔다.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섬
산마르코(San Marco)광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는데 이곳에서 말하는 버스는 ‘바포렛토(Vaporett)’라고 불리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증기선 즉, 수상버스를 일컫는다. 이곳의 교통수단은 모두 배이기 때문에 실제 자동차는 한 대도 없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말하는 택시는 작은 모터보트이다.
내가 탄 바포렛토는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따라 서서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산 제레미아 성당을 지나자 좌우로 황홀한 광경이 필름이 이어지듯 펼쳐졌다. 대운하 양쪽에 늘어서 있는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가볍게 보였다.
베네치아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벙어리장갑을 낀 두 손이 서로 잡고 있는 듯한 모양인데 두 손이 접촉하는 부분이 대운하에 해당된다. 대운하는 ‘T’자를 크게 흘겨 놓은 것처럼 베네치아의 심장부를 휘감으며 관통하고 있다. 그 폭은 가장 좁은 곳이 약 30m이며 가장 넓은 곳은 약 90m에 이른다. 수심은 5m 정도이며 총 길이는 약 3.8km로 도시의 어느 지점에서라도 300m 이내에 있어 베네치아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베네치아는 약 120개의 작은 조각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약 180개의 작은 운하와 각 구역을 연결하는 약 410개의 크고 작은다리가 놓여 있다. 작은 운하들은 모세혈관이나 신경조직처럼 도시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운하 중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조각 섬 사이로 물길이 그렇게 나 있었던 것이다.

 

사방팔방으로 열려있는 ‘두칼레 궁전’
우리가 탑승했던 바포렛토는 마침내 산 마르코 광장 입구에 이르렀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 도제의 집무실이자 관저인 두칼레 궁전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종합청사’였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의 도시에 세워진 육중한 성채 같은 정청과는 달리 완전히 개방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궁전 자체로써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으며 모든것을 포용하는 나라였음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듯한 모습으로 있다.
이 궁전의 1층은 섬세하고 리듬감 있게 반복된 기둥과 창들이 육중한 윗부분을 받쳐주고 있다. 윗부분의 벽은 연한 장밋빛과 흰색 대리석을 모자이크처럼 연출해서 일정 거리에서 바라보면 부드럽고 섬세한 레이스를 두른 것처럼 보인다.
이 궁전이 착공한 것은 1340년인데 그 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개축과 증축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고딕양식이지만 이슬람 풍의 날렵하고 섬세한 디자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되어 있기도 하다. 당시 베네치아가 동방의 이슬람 문화권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들이 머물렀던 곳은 웅장하고 개성 있는 건축양식으로 설계되고 지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왕들의 취향과 아름다운 예술 감각이 어우러져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의 풍경 속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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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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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에서 머문 발걸음은 소광장을 거쳐 산 마르코 광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나폴레옹이 산 마르코 광장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한곳인 만큼 베네치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시대와 양식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광장에는 밝은 햇살이 가득했고 카페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비발디의 경쾌한 선율이 바다 바람결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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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광장에는 밝은 햇살이 가득했고 카페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비발디의 경쾌한 선율이 바다 바람결에 흩날렸다.
이곳에 오면 무엇보다도 산 마르코 대성당에 눈길이 집중된다. 이 성당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인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의 혼합으로 동서양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성당은 5개의 돔을 가지고 있으며 성당 전면 위쪽에는 네 마리의 청동 말이 세워져 있다. 이 청동 말은 13세기에 베네치아의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것으로 기원전 4~2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1805년에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때 파리로 가져갔다가 되돌려 받게 되었다. 외부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고 성당 내부에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 내부 천장의 모자이크는 구약성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아름다운 제단화는 이 성당을 대표하고 있는 보물이자 비잔틴 예술의 걸작이다.
베네치아의 랜드마크 ‘종루’와 카사노바가 즐겨 찾던 카페 ‘폴로리안’산 마르코 광장에 세워진 종탑은 12세기에 등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세운탑이었는데, 중세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 1902년 붕괴되어 1912년 재건한 것으로, 이탈리아의 다른 종탑과 다르게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어 100m 높이의 전망대까지 단번에 올라갈 수 있다. 종루에 오르면 탁 트인 전망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며 산 마르코 광장은 물론 베네치아 풍경이 아드리아 해까지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비발디 성당에서 다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북쪽에는 카페 콰드리가 있고 남쪽에는 카페 폴로리안이 있는데 서로 경쟁하듯 달콤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카페는 유럽의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카페 폴로리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꼽힌다. 1720년 개업했는데 이 카페는 골도 니, 괴테, 카사노바, 바이런 등 많은 저명한 인물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특히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때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카페 플로라인이었다고 전해
지고 있다.

 

궁전과 감옥 사이를 이어 주는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 칼레 궁전과 감옥을 이어주는 다리인데,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한숨을 쉬는 곳이라고 해서 탄식의 다리로 불렸다. 베네치아는 홍수가 자주 나는 편인데 지하 감옥은 홍수가 날 때 물에 잠겨 버리기 때문에 탄식의 다리를 통하여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 탄식의 다리는 죄인들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징물과도 같은 느낌이다. 이지형에 밝은 죄수들이 감옥에 가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 또한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탄식의 다리를 오고 가는 고비들이 수없이 많은 게인간사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잘 아는 카사노바가 이 탄식의 다리를 탈옥한 일화도 유명하다. 카사노바는베네치아 출신으로 인물이 출중하고 언변이 좋아서 여러 여성과 두루 사귀었다. 하지만 풍기문란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가 사귀던 여성들의 도움으로 다시 감옥에서 탈출한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카사노바는 그 감옥에서 탈출한 유일한 인물로 전해진다.

 

베네치아 명물 곤돌라, 수상 택시
가이드 설명을 듣고 일행은 곤돌라에 탑승하러 선착장으로 갔다. 많은 사람이 베네치아 여행을 가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것 중에 ‘곤돌라’를 떠올리는 것 같다. 곤돌라는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라는 뜻으로 11세기부터 운하를 이용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에 모터보트의 보급으로 수백 척 정도만 남아 있으며 대부분 관광객들의 유람용으로 사용된다.
곤돌라에는 보통 5~6명 탑승하며 뱃사공이 3m 정도의 긴 노를 젓는다.
운하의 폭이 좁아서 곤돌라 운전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역시 곤돌라 전문가답게 요리조리 이리저리 잘도 지나간다. 곤돌라 사공인 곤들리에는 곤돌라 조정능력은 물론 영어, 문화, 역사, 다방면에 걸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자격시험을 거친 뒤 발탁하기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수입도 가장 좋고 자부심도 높은 직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게 20여 분의 묘기 곤돌라 체험이 끝나고 하선을 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나머지 일행과 함께 산 마르코 광장 입구에 있는 수상 택시를 몇 조로 나누어 탑승했다. 수상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바라본 베네치아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워서 어디를 보아도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다 양옆으로 가로지르며 가이드는 건물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과거에 사용한 용도와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였다.
카사노바 집이 있었고, 메릴린 먼로가 바람피웠다는 집 등 열심히 안내해주었다. 20여 분 승선 속에 주마간산 격이라 유독 리알토 다리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만 귀담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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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Santa Maria della Salute) 성당

 

<베니스의 상인> 주요 무대인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는 대운하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을 골라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원래 목조였던 다리를 16세기 말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했으며 베네치아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군선이 드나들기 쉽도록 가운데를 높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일대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그리고 이 다리 근처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곳이다. 명작 속 배경인 데다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름답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라고 설명하여 준다. 오래전 한국에서 이 연극을 보면서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순간순간을 즐겼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요 무대인 리알토 다리를 보게 되어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대운하 끝에는 8각형이 아름다운 바로크양식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춤추는 듯 바다에 떠 있다. 17세기 건축가론게나가 건축한 이 성당은 흑사병이 물러간 이후에 지어져서 인지 건강과 구원을 의미하는 말의 살루테가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데, 해 질 녘산 마르코 광장 쪽에서 바라보는 실루엣과 물에 비친 야경은 그 어떤 그림보다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베네치아는 예술적인 감각을 살린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곳에 머물면서 가슴에 담아 온 베네치아의 역사적 진풍경이 지금도
삶의 활력소로 내면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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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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