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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속의 아시아, 유목민 마자르족의 정신이 흐르는 헝가리
신용경제 2017-09-06 18:16:28

자정을 갓 넘어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객실은 유럽 기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룸 하나에 6명이 이용할 수 있는 컴파트먼트 형태로 되어 있었고, 양쪽으로는 3층 침대가 있어서 장거리 여행에는 편리했다. 헝가리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슬로바키아를 통과해야 했다.

 

 

아시아 훈족이 세운 헝가리
예전 헝가리는 체코와 한 나라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1차 대전 직후인 1918년 생겨나 70여 년 이어져 오다가,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최근까지도 유럽은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밖으로 보이는 푸른 숲은 비에 젖어 음산하였고, 집들은 체코보다 더 어둡고 무거워 보였다.
부다페스트로 출발한 지 6시간 30분 후, 부다페스트 켈레티역(동역)에 도착하였다. 낡았지만 천정이 높고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켈레티 역은 부다페스트의 중앙역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많은 국제선 열차가 이곳을 지나다닌다.
헝가리는 유럽 중동부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도나우 강이 국토를 관통하고 있으며 수도는 부다페스트이다. 인구는 약 1,000만 명 정도인데 그중 97%가 마자르인이고 공용어는 마자르어이다. 헝가리 평원이라 불리는 중부 유럽의 넓은 지역에 있으며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다양한 민족들의 이동 경로가 되어 왔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앞서 말했듯이 헝가리는 유럽 속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게르만, 라틴, 슬라브족들 사이에서 외딴 섬처럼 아시아인종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더욱이 수많은 외부의 침입(1000년의 역사에 900번 전쟁을 겪음)에도 동화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아시아계의 유목민인 마자르족의 정신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부다에서 본 페스트 지역

페스트 지역에서 본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 아래

 

헝가리 신생아도 몽골 반점
헝가리는 동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5세기 초 아시아의 훈족이 게르만 민족을 밀어내면서 세운 나라이다. 그래서 고대 헝가리인은 시베리아 서부의 우고르 족과 투르크 족의 혼혈이며 특히 마자르어(헝가리어)는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랄어족에 속하는 우리나라 말과도 관련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생아처럼 헝가리 신생아도 몽골 반점이 있으며, 이름을 쓸 때 성을 먼저 쓰는 것과 년, 월, 일을 쓰는 순서, 국가 명, 도시 명, 거리 명 등 큰 것부터 작은 순서로 주소를 적는 방법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헝가리인의 뿌리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논쟁이 있지만, 위와 같은 일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인과 헝가리인의 뿌리가 만나는 역사적 시점 또는 한국과 같은 뿌리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친근감마저 들었다.
헝가리의 최초 국왕은 이슈트반 1세(재위 997-1038)이다. 그는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서유럽을 모델로 삼아 급속히 유럽화로 진행시켰으며, 세상을 떠난 후에는 성인 반열에 올라 헝가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1241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사망하는 재난을 겪었다. 그 후 1526년 투르크군이 침입, 약 150년간 그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헝가리 몫으로 남아 서북부는 오스트리아, 동남부는 투르크에 의해 분할 통치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1848년 헝가리는 독립운동을 벌여 오스트리아에는 황제 칭호를 하고 헝가리인들은 자치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오스트리아 편에서 싸우는 바람에 패전국이 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 역시 독일 편에 서서 참전했다가 패전국이 되었다.
헝가리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전쟁 때마다 유럽 서쪽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구 공산국가 붕괴가 연쇄적으로 일어났을 때 헝가리는 1989년 우리나라와 맨처음 수교할 정도로 발 빠르게 민주화가 되었으며, 이후 급성장하면서 현재는 15대 관광 대국이기도 하다. EU, NATO, OECD에도 가입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 (구매력 기준)에 달해 한국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다.

 

동유럽의 파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는 1849년 세체니 다리가 개통된 이후 ‘부다’ 와 ‘페스트’ 두 개의 도시가 통합되면서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리는 지금의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우리의 한강이 강남과 강북을 가르듯이 이곳은 도나우 강을 좌우로 도시를 나누어 우 쪽의 부다와 좌 쪽의 페스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낮에는 다소 복잡하고 평범한 대도시 의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강에 비치는 환상적인 야경으로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에 ‘도나우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영웅광장, 국회의사당

 

처음 들른 곳은 영웅광장이다. 건국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 만들었는데, 세계 각국 정상들이 헝가리를 방문하면 꼭 이곳에 들러 헌화를 하는 곳이다. 영웅의 광장에는 헝가리인들의 시조인 6명의 부족장이 896년에 이곳을 점령하여 나라를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탑으로, 36m높이의 큰 기둥의 떠받치고 있는 코린트 양식의 천사 가브리엘 조각상은 오른손에 왕관을, 왼손에는 십자가를 들고있다. 천사상의 오른편과 왼편에는 각각 헝가리 역사를 빛낸 7명씩의 영웅을 조각해 놓은 영웅상이 놓여 있다.
지난 8월 15일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로 해야 한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있는데, 우리나라도 통일된 영웅광장이 만들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오랜 역사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건국신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는 것은 한 민족을 지탱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드라시 거리, 안드라시의 아름다운 건물, 에르제베트 다리

국립 오페라극장, 시너고그

 

명품 안드라시 거리,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오페라극장
영웅광장을 둘러본 후, 바로 이어져 있는 거리로 들어섰다. 이곳은 1868년 외무부 장관이었던 안드라시가 파리를 다녀온 후 도시계획을 세워 1872년에 완성된 안드라시 거리로 영웅광장에서 에르제베트 광장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2.6km의 긴 대로이다.

이 거리에는 각국 대사관 등 품격 있어 보이는 5층 건물과 연륜을 머금고 있는 가로수들이 어우러져,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이 도시를 한층 빛나게 해 주는 오페라 극장을 만난다. 1875~1884년까지 10년에 걸쳐 지어진 오페라 극장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80년 리모델링 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부다페스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페스트 지역의 성 이슈트반 성당과 국회의사당은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대 국왕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위한 건물로 1906년에 완공하였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으로 정면 양쪽에 80m 높이 탑이 있으며, 본당 중앙의 돔은 그보다 높은 96m이다. 이는 국회의사당 돔과 마찬가지로헝가리 건국 896년의 96 숫자와 맞춘 것이라 한다.

 

헝가리 민족의 자부심 국회의사당과 유럽 최대 시너고그
1884~1904년에 걸쳐 네오고딕양식으로 건축된 국회의사당은 다뉴브 강의 위용에 힘입어 그 장엄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 건물은 순수하게 헝가리의 인력과 건축 자재만으로 지어져 헝가리 민족의 자존심과 자부심과도 같은 곳이다.
총 길이 268m, 너비 123m, 높이 96m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의회로 손꼽히기도 한다. 외부의 첨탑은 총 365개로 1년 365일을 상징한다. 내부 역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데 총 691개의 집무실을 갖추고 있으며 금으로 곳곳을 장식해두었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광장에는 각각 헝가리 정치사를 대변하는 인물상들이 서 있다. 이 국회의사당은 헝가리 민주의회정치의 현재인 동시에 1956년 5·8 혁명 당시 이곳에서 부다페스트 공과대학 학생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 데모를 벌였던 곳으로, 이 사건은 헝가리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1960년 4·19혁명이 시발점이 되어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그 이후 1987년 6·29 선언으로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게 되는 정치발전을 이루어왔다.
헝가리 유대인의 삶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넋을 기리고자 페스트 지구 안에 있는 시너고그(synagogue)를 찾아 나섰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너고그이자 유럽에서는 가장 큰 시너고그로, 약 3,000여 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1859년에 완공된 이 회당은 남녀 좌석이 구분되어 있고 정통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은 두 개의 양파 돔이 특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가 유대인 수용소로 사용하였다. 부다페스트 케토에서 학살당한 2,000여 명의 시신이 이곳 좁은 안뜰 정원에 묻혀있다. 그 당시 희생된 유대인을 넋을 기리기 위하여 정원에는 은으로 만든 버드나무가 서 있는데, 잎사귀 하나하나에 당시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많은 이름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 다시는 유대인 학살 같은 잔인한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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