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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선택을 위해,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가치 있는 선택의 존재다
신용경제 2017-09-06 18:36:23

 

 

인간은 누구나 삶의 추구 가치가 다르다. 행복도 다르다.
파리스가 트로이아의 사절로 스파르타에 파견되었을 때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와 눈이 맞아 그녀를 데리고 트로이아로 달아난 것도 그렇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배신과 모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가멤논과 함께 10만 그리스 연합군을 모아 트로이아를 공격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무모하게 보이는 짓을 감행한 것은 파리스에게는 어떤 권력이나 지혜보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해 나가는 존재이다. 선택이란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 아닌 것 중의 선택일 수도 있고, 내 의사나 의도와 관계없이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선택되기도 한다. 내가 선택한 집단의 선택에 의해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선택 속에 살아가야 할 인간은 매 순간 끊임없이 여러 길 앞에 놓인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현재, 오늘이 된다. 평생 행복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선택을 통해 삶의 기회를 잡고,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은 변화해가기 때문이다.
경제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미래 불확실성 하에서 모든 인간이 냉철하게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여러 대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사람들이 잘 분석할 것으로 믿었다. 확률 분포를 추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가장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기대효용 극대화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언제나 냉철히 판단해 선택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합리적이라 해도 제한적이다. 하기야 인간이 늘 합리적이었다면 누구나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건강하고 더 부유할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아니다. 기존 경제논리들이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반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투자행태를 성찰하는 행동경제학이 주목받게 된 이유다. 냉철한 이성이 지배할 것 같은 금융, 투자시장에서조차 사람들은 감성에 자신을 맡긴다.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이다. 게다가 계산이 서투르기까지 하다. 자기 확신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저지른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 세상은 여전히 똑똑한 선택을 요구한다.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의 길이다.
똑똑한 선택이 되려면 단순히 좋아서 택한 것만으로는 안된다. 왜 선택하고 싶은지, 왜 좋은 것인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확신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내 의도에 상관없이 선택되었을지라도 그렇다.
선택 안에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것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공부하면 선택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긍정적인 효과를 찾아야 한다. 부정 안에 긍정이 있고 긍정 안에 부정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애모스트벌스키(Amos Tversky)는 1979년 위험하의 선택 문제를 다룬 프로스펙트이론(Prospect Theory)으로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프로스펙트 이론의 출발은 손실을 싫어하는 인간 행태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실험이 사람들의 손실회피(Loss aversion)성향을 보여준다. “150불을 딸 확률이 50%, 100불을 잃을 확률이 50%인 내기에 참가하겠는가?” 기대이익이 25불(150x0.5 ? 100x0.5)이지만 사람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득이 적어도 손실의 두배는 되어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00불을 확실히 잃거나, 혹은 50불을 딸 확률이 50%이고 2백 불을 잃을 확률이 50%인 내기에 참여하겠는가?” 기대이익은 -75불 (50x0.5-200x0.5)이다. 사람들은 이 내기에는 참여한다.
1백 불을 확실히 잃는 것보다는 위험을 안아도 손실을 피할 수 있는 내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득을 위해서는 위험을 안으려 하지 않던 이들도 손실을 피할 수 있다면 기꺼이 위험을 받아들이려 한다. 인간은 이렇게 위험보다 손실을 더 싫어한다. 이득에 따라 가치가 커지는 것에 비해 손실에 따라 가치가 줄어드는 폭에 훨씬 민감하다. 인간의 일상과 투자결정을 보면 전통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형에 어울리지 않게 시간에 대해서도 비일관적(time-inconsistency)이다. 그런 행동이 어리석거나 잘 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오늘 100불을 받겠는가, 내일 105불을 받겠는가?” 라고 물으면 당장의 100불을 선호한다. 그러나 100일 후 100불과 101일 후 105불 중에서는 하루 더 기다려 5불을 더 받는 쪽으로 기운다.
인간은 이기심을 본능적 욕구로 완전히 갖고 있지도 않다. 5불짜리 지폐 100장을 주면서, 타인이 자기 몫이 너무 적다고 거부하면 본인도 역시 한 푼 가질 수 없다는 조건으로 타인과 나누어 가지라고 하면 전통 경제인과 다른 인간이 드러난다. 전통경제학은 본인이 95불을 갖고 타인에게 5불을 줄 것으로 보았다. 타인이 단돈 1장이라도 챙기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거의 절반 가까운 돈을 타인에게 나눠 줄 것으로 본다.
타인에게 지폐 1장만 줄 경우 그가 단돈 5불이라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양심 없게 나누어 주는 이를 응징해 지폐를 던져 버리는 쪽을 택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라고 한 것처럼 인간은 익숙한 것과 결별하기 싫어 꾸물거리다 뒤늦게 후회한다. 주가가 반 토막이 나도 버리지 못한다. 결별이 아쉬워 주가가 떨어질 때 오히려 물량을 늘리는 물타기 전략을 고집한다. 그러다 급전이 필요할때는 수익을 실현시키고 있던 다른 종목과 결별한다. 손실을 실현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전망이 더 밝아 보이는 종목을 판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얼마에 샀는지가 아닌 얼마가 될까를 따져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절매를 감행하지 못한다. 그 후 팔았던 종목은 날개를 달고 팔지 않은 종목은 계속 곤두박질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면 독백으로 대사를 외우듯 반복한다. “내 이리 될 줄 진작 알고 있었어.”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나서 ‘실은 진작 그런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고 있었다’고 확신하는 사후 확신편향(hindsight biased)증을 앓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자신의 실수경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사후확신편향이 심한 사람들에 경제학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들은 위기를 예측하기보다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데 열심이었다.
인간은 손실 앞에서 무모하고 이득 앞에서 겁이 많아진다. 또 위험회피적이다. 전염병에 맞선 두 전략 중, 예상 결과 A 안은 2백 명이 살고, B 안은 6백 명이 다 살 확률이 1/3, 아무도 살지 못할 확률이 2/3다. 이 경우 대부분은 A 안을 선택한다. 2백 명의 목숨을 확실히 구할 수 있는 A 안보다 결과가 불확실한 B 안을 꺼리기 때문이다. 똑같은 내용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A안; 4백 명이 죽는다. B안;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1/3. 다 죽을 확률이 2/3이다.” 이번에는 대부분이 B 안을 택한다, 4백 명이나 확실히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가능성은 낮지만 모두를 살릴 수도 있는 모험을 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로 위험회피적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위험추구 성향으로 바뀐다. 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간이었다면 첫 번째 2백 명을 확실히 살리는 A 안을 택했으면 두 번째 물음에서도 같은 A 안을 택해야 했다.
인간 심리를 파악하고 있으면 똑똑해진다. 거꾸로 악용할 필요는 없다. 선택과의 심리전하에서 인간행동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면 백전백승할 수 있다. 인간 심리가 어떻게 합리성을 지배하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을 한층 강화시킬 수 있다. 나도 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가 선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나의 심리도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이를 통해 나의 판단이 좀 더 합리적이 되고, 선택은 기회가 되며, 삶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지만 가치 있는 선택을 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박병호
감정평가사,
Canada Investors Group재정자문,
30대부터시작하는 부동산노테크 저자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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