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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기업의 이름 속에 나를 묻는다
신용경제 2018-05-03 13:22:04

박병호
감정평가사 (coreits14@gmail.com) 캐나다 인베스터스그룹 재정자문, 30대부터 시작하는 부동산노테크 저자

 

영원히 남을 전문 이름을 창조하다
1998년 창업 후 매출액 20억 달러를 돌파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전 세계 360여 개 매장을 갖춘 특정스포츠 의류전문기업 ‘룰루레몬 애슬레티카(Lullemon Athletica)’이야기다. 1979년 창업해 100만 캐나다 달러에 처분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스노우보딩, 서핑 등 특수 의류 전문 판매 소매 기업 ‘웨스트비치(Westbeach)’ 이야기다. 이 두 이야기는 돈보다 이름을 귀하게 여긴 한 사람의 이름과 함께 펼쳐진다. 이 두 전문 기업의 창업자, 칩 윌슨(Chip Wilson)은 오늘날 요가복의 대명사, 밴쿠버 제2의 부자, 캐나다 전국 10대 부호가 되어 있다.
칩 윌슨이 만든 위 기업 중 하나의 이름이 길이 남게 된 것은 그 이름이 그를 상위 부자 중 하나로 만들어서만은 아니다. 요가복 단일 품목의 매출액이 20억 달러가 넘어서만도 아니다. 유한한 인간 생명, 언젠가 사라질 몸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전문 이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칩 윌슨이라는 이름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갈지라도 ‘룰루레몬’이라는 브랜드는 캐나다 스포츠 의류시장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가 앨버타주 캘거리대학을 졸업하던 1979년 사회 첫발을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 것은 자신이 만든 기업의 이름을 갖고 출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해 그는 스노우보딩과 서핑, 스케이팅을 위한 특수 의류 판매업체 웨스트비치를 창업한다.
칩 윌슨이 자신을 보니 가장 관심 깊은 분야는 스포츠였다. 그중에서 3개 종목을 특정했다. 관심 분야를 전체 스포츠에서 몇 개로 좁히면 좀 더 쉽게 당해 스포츠 마니아의 깊은 욕구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어려움이나 부침 없이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달을 수 있었다. 빠른 시일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가 만든 기업의 이름이 세상에 잘 뿌리내기기를 바랐다. 빨리 정상에 다다르면 마찬가지로 빨리 내려와야 한다. 서두르지 않았다. 1997년 웨스트비치를 100만 달러에 처분해 백만장자가 되기까지 18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이 흘렀다. 백만장자가 목표는 아니었지만, 목표를 다 이룬 것 같았다.

 

키칠라노의 룰루레몬
돈은 있으나 일이 없게 되었다. 돈보다 일, 게다가 은퇴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나이였다. 나이 들수록 움직임이 느린 정적인 스포츠가 마음을 끈다. 백수가 된 그는 고향, 밴쿠버 키칠라노에서 요가수업에 참석하게 된다. 참석하자마자 하나가 눈에 띈다. 요가수업에 함께하는 많은 여성이 면 팬츠를 착용한 것이다. 면은 부드럽고 피부 친화적이지만 빨리 땀에 젖는다. 보기와 다르게 고무로 만든 옷보다 공기가 잘 통하지도 않다. 게다가 당시 캐나다에서 요가라는 새로운 스포츠가 초창기지만 앞으로 대중 속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 같았다. 서부 밴쿠버처럼 부유한 지역에서는 상업적으로도 큰 붐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미 의류업체 경력이 풍부했던 그는 이 신 스포츠 의류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놀고먹는 것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더는의 생산이 중단된 상태하에서 처마 밑에 꽉 차게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는다는 것은 희망의 시작이 아닌 희망의 끝에 가깝다. 외부환경은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 업종에 하나의 새로운 종목이 탄생하고 있었다. 스포츠 의류 전문가인 그를 위해 예비해 놓은 창조주의 작품 같았다. 요가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늘고 부유층 여성들은 기능성 요가복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윌슨은 좀 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기능성 요가복을 만들기로 한다. 결국, 1998년 그가 요가수업을 들었던 키칠라노에 그의 두 번째 기업이름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룰루레몬 애슬레티카’다.

 

 

키칠라노의 룰루레몬, 돈과 바꿀 수 없는 이름이 되어 간다. 요가가 커뮤니티, 지역사회에 기반한 스포츠가 된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스포츠는 함께 하는 이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해 스포츠뿐 아니라 다른 정보들까지도 공유한다. 입소문이 빠르다. 다른 마케팅이 필요 없다. 윌슨은 일찍이 요가가 개인보다 지역사회 단위로 움직인다는 것에 착안해 매장별 자율성을 높인다. 지역은 사람만큼 다양하고 개별적이다. 매장 관리자를 당해 지역 출신으로 채용해 자율경영을 유도했다. 지역 매니저는 진열이나 색상 조합 등을 결정하고 커뮤니티 활동에도 적극 관여하게 된다.
‘칩 윌슨, 룰루레몬, 지역사회 마케팅’, 이름 세 개가 합쳐지니 소문은 빠르게 세계로 뻗어 나간다. 이런 이름의 기업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더는 가만히 지켜보지 않는다. 승승장구하는 룰루레몬이라는 이름에 끌린 미국의 한 사모투자펀드 회사가 2005년 룰루레몬의 주식 48%를 사들인다. 적은 돈을 큰돈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투자집단의 큰 그림이 더해진다.
2년 후, 회사의 주식은 캐나다와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된다. 상장 후 직접금융에 대한 자신감 보다 주가상승에 대한 자신감이 더 커보였다. 기업공개, IPO를 통해 윌슨은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이름과 돈이 결합하니 기업의 성장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룰루레몬의 기업가치가 80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

 

돈과 바꿀 수 없는 이름의 가치
삶, 승차보다 하차가 힘들다. 주식거래 시 매수타이밍보다 매도타이밍 잡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팔지 않았는데 주가가 떨어지는 것 보다, 팔고 난 후 계속 올라가는 주가를 마음 편히 지켜볼 투자자는 없기 때문이다. 꽃은 감상자에게 자신이 활짝 피기 바로 직전의 상태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윌슨도 대중에게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 정상에 다다르기 바로 전의 상태로 기억되고 싶었다. 행동보다 상상이 앞서는 인간은 활짝 핀 꽃을 보고 행복감에 젖는 것은 한순간에 불과하다. 곧이어 그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빠르게 행복감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윌슨도 룰루레몬의 가치가 100억 달러에 이르기 직전의 상태를 하차할 때라고 생각했다.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하는 모습이 아닌 정상을 향해 오르다 정상 바로 밑에서 정상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상 바로 전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보다가 곧이어 상상으로 정상에 서 있는 행복한 그림을 그린다. 윌슨은 바로 이 ‘절정 앞 은퇴’를 실행에 옮긴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행동이 기억을 오래 붙든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2015년 돌연 룰루레몬 은퇴를 발표한다. 기업의 대주주로 남을 뿐 경영에서 물러난다. 이미 첫 기업의 이름으로 백만장자, 두 번째 기업 이름으로 억만장자가 된 윌슨은 돈과 바꿀 수 없는 이름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룰루레몬이라는 이름을 통해 삶의 재미를 배가시킨 윌슨이 말한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돈을 위해서 한 일은 없다. 기업가는 하루 18시간 이상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돈만을 생각하며 사는 건 재미없다. 그저 재미있게 살고 싶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 또한 재미있게 살게 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어둡다고 다 같은 어둠이 아니다
생존 욕구단계를 벗어나면 돈의 의미는 달라진다. 돈으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윌슨도 돈이 그를 차별화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돈이 없을 때는 통장잔액을 인식하지만 억만장자가 된 후에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가 룰루레몬 경영에서 물러난 것은 지금까지 못 느낀 삶의 마지막 재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가족을 돕는 것이 세상을 돕는 첫 단계다.
2014년 아내와 아들이 시작한 남녀 공용 의류브랜드 ‘Kit and Ace’를 돕는 일을 시작한다. 인간은 천국에 살아도 미래의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잘 돼도 못 돼도 어차피 물러난다. 그때의 마지막 보루,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음식을 놓고 형제끼리 싸우지 않는 가면 올빼미가 아니라 해도 가족은 더 이상의 실험이 필요 없는 안전지대다.
세상은 지금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 빨리 전파되는 사이버 천국이다. 공매도 세상이다.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거짓과 왜곡된 정보가 난무한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빠르게 전파된 거짓 소문에 낙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영원한 자리는 없다. 가족 구성원도 불완전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항상 행복할 수는 없지만 어둡다고 다 같은 어둠이 아니다. 암흑 속에서도 곧 황홀해질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곳은 그래도 가정밖에 없다. 개인의 이름과 달리 자자손손 계속될 기업의 이름은 가족과 함께하는 재미의 참여공간이 풍부하다.
칩 윌슨이 기업의 이름으로 승부를 건 것은 기업의 영원성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사라지는 이름보다 계속 진행될 기업의 이름 속에 나를 묻으면 영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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