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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을 모으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임진우 2018-10-02 14:59:32

우리는 지갑 속에 있는 만원과 통장 속 만원을 전혀 다르게 대한다. 일해서 번 돈과 우연히 얻게 된 돈에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현금 만원과 상품권 만원 역시 금전적으로는 동일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즉, 우리는 동일한 금액일지라도 전혀 다른 가치를 투여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돈을 지출하는 행태도 달리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심적회계에 따른 지출 변화
이러한 행태를 확인해 주는 사례가 있다. 한국시리즈 결승전 티켓을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경기장 입구에서 10만 원짜리 티켓을 잃어버렸다. 이때 당신은 경기를 보기 위해 다시 10만 원을 주고 티켓을 구입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잃어버린 것이 10만 원짜리 티켓인지 아니면 티켓을 구매하기 위한 현금 10만 원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잃어버린 것이 이미 구매한 티켓인 경우, 티켓을 다시 사지 않겠다고 답변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읽어버린 것이 티켓을 구매할 현금 10만 원인 경우, 티켓을 다시 사겠다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앞선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렇게 선택이 달라지는 이유는, 첫 번째 사례의 경우 문화 활동비로 총 20만 원을 지불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즉, 앞서 구매한 티켓 가격 10만 원과 다시 티켓을 사기 위해 지불한 10만원 모두 경기 관람이라는 문화 활동비로 지출한 금액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결국 야구 경기 한번 보는데 20만 원을 지불하는 것이 과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티켓을 재구매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현금 10만 원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현금 10만 원은 현금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 활동비는 아직 지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야구 관람을 위해 티켓을 구입할 경우 티켓 구매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은 여전히 10만 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문에 현금 10만 원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티켓을 구매하겠다고 답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이처럼 금전적으로는 분명 동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이 상황에 따라 전혀 달라지고,이로 인해 우리의지출 행태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로 설명한다. 회사는 체계적으로 돈을 관리하기 위해 회계장부를 작성한다. 급여에 쓰일 돈인지, 장비 구매에 쓰일 돈인지, 이자를 갚는 데 쓰일 돈인지를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이를 각각 별도의 회계처리를 거쳐 관리한다. 이처럼 개인도 심적 회계라고 해서 돈에 대해 마음속으로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관리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돈에 대한 태도는 정기적인 수익과 우연한 기회로 얻게된 돈에 따라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돈의 형태가 현금인지 상품권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즉 우리는 돈의 출처, 형태, 크기, 사용처 등에 따라 별도의 심적 공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상이한 태도를 보인다.

 

적은 금액도 신중하게
앞서 소개한 프로야구 티켓 사례처럼 직면한 상황에 따라 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하지만 돈의 크기 역시 심적회계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된 해외 사례연구가 하나 있다. 이스라엘 출신 마이클 랜즈버거(Michael Landsberger)라는 경제학자가 수행한 연구이다. 당시 이스라엘 국민 중에는 2차 세계대전 후 서독 정부로부터 정기적으로 배상금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치의 만행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해 서독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한 것이다. 당시 배상금 규모는 개인과 가족이 입은 피해정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배상금의 규모에 따라서 배상금의 사용처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한 랜즈버거 교수는 배상금 규모에 따라 저축률과 지출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사하였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고액의 배상금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지출률이 0.3을 기록하였다. 즉, 1달러를 받으면 이 중에서 30%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출하고 나머지는 저축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배상금의 액수가 적은 사람들의 지출률은 무려 2를 기록하였다. 즉, 1달러의 배상금을 받으면 2달러를 써버리는 것이다.
즉, 고액의 배상금을 받은 사람들은 아마 배상금을 적절히 관리하여 목돈을 만들어 나중에 이를 유용하게 활용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배상금 액수가 모아서 관리할 만한 금액으로 여긴것이다. 이에 반해 소액의 배상금을 받은 사람들은 배상금을 모아서 관리할 만한 충분한 유인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문에 소액 배상금을 받은 사람들은 배상금을 그때그때 바로 소비했고, 심지어 소비 과정에서 배상금이 부족할 경우 자기돈까지 얹어서 소비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효과적인 자금 관리를 위해서는 큰 지출 못지않게 소소한 지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현금이 아닌 상품권과 기프트카드는 더욱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 자금 관리에 심적 회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자기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할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교육비로 분류한 돈으로 휴가비를 쓰거나 옷을 사는 어머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점을 활용하여 수입이 생기면 이를 미리 교육비, 일상생활비, 문화생활비, 노후준비를 위한 계좌 등으로 구분하여 각 목적에 따라 관리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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