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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기운을 요리합니다
신용경제 2018-01-05 13:27:43

“갓 수확한 채소를 그 자리에서 한입 물면 땅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음식을 추구한다.”
-르네 레드제피(Red sepi), 노마(Noma)의 총주방장
르네 레드제피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이라는 노마(Noma)의 총주방장이다. 한데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총주방장의 말에 시골에 계신 우리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생각난다. 밭에 나가 직접 기른 채소를 따오고 손질해 별 조미료 없이 투박하게 내놓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요즘 맛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할머니가 해준 요리는 따라가지를 못한다. 이렇게 할머니의 음식이 생각나게 하는 신선하고 자연이 담긴 요리는 왜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까.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smhan@skku.edu

 

이 답을 에토스(Ethos)에서 찾는다. 믿을만한 사람이며 물건도 없고, 빛 좋은 개살구처럼 포장만 번지르르해 보여 무엇 하나 믿기 힘든 요즘이다. 그래서 자꾸만 더 의심스럽고 믿을 만한것을 더 찾고 싶지만, 진정, 정신, 철학이 담긴 것이 없다.

 

 

거짓이 만연하고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기에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토스(Ethos)의 추구야말로 내가 찾는 해답인 것 같다. 화자의 인격과 신뢰감을 말하는 에토스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가치와 철학의 진정성을 전하는데 필수적이다. 안에 담긴 영성이라 이해해도 좋다. 노마의 요리에는 이 영성이 담긴 것이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서 느끼는 행복을 굳이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 행복에 삶의 큰 의미를 두고 찬사를 보내는 미식가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년 기다리는 순위가 바로 노마(Noma)를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유명 요리 월간지 ‘레스토랑(Restau-rant)’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레스로탕 베스트 50’이다. 잡지 레스토랑이 발표하는 이 순위는 미식가, 요리평론가, 요리사 등 요리전문가 800여 명이 참여해 선정하는 만큼 그 공정성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미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요리가 하나의 예술로써 극찬받는 요즘인 만큼 최고의 맛이라 자부하는 레스토랑들의 경쟁 또한 엄청나다. 그런 그들 가운데 최고로 인정받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말이 세계 최고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레스토랑이다. 아찔할 만큼 맛있고 대단해 보인다.

 

에토스는 결코 눈에 확 띌 만큼 화려하고 풍성한 것이 아니며 그저 본질이다. 그렇기에 근원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며 남들과 다르기 위해 서로 견주며 부수적인 것에 치중하고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면 그 근원과 정체성을 잃어 에토스가 산으로 가기에 십상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노마(Noma)는 2010~2012년, 2014년에 1위를 차지한 레스토랑이다. 가문의 영광을 넘어 국가의 영광이라 해도 넘치지 않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오른곳이 요리하면 떠오르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핫(hot)하다는 뉴욕도 아닌,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다니 다시 한번 놀랄 일이다.
앞서 말했듯 노마의 저력은 그들이 위치한 덴마크에서 자란 제철 재료만 엄선해 신선한 자연 그대로를 식탁 위에서 전한다. 이러한 노마의 철학을 음식에 담아내고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받게 한 대표 메뉴가 바로 ‘식용 가능한 흙에 묻힌 래디시(radish in edible soil)’이다. 요리 이름부터 남다르다. 그릇으로 사용되는 화분에 허브를 깔고 그 위에 흙의 질감과 색을 띠는 헤이즐넛, 호밀빵 가루를 뿌린다. 여기에 래디시(radish, 홍당무의 일종인 동그랗고 빨간 무)가 반쯤 묻힌 상태로 나온다. 밭에서 캐기 전의 래디시를 그대로 보는 듯하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라기엔 너무 소박해 보이며 언뜻 보면 장난인가 싶을 정도이다.
세계 최고라는데 심지어 대표 메뉴라는데 적어도 최고급 상어 지느러미 위에 금가루 정도는 뿌려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베란다에서 기르는 무를 화분 채 내놓은 것 같은 요리라니. 더군다나 이 요리에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요리전문가들이 최고 점수를 주다니.

에토스는 추구하고 전하려는 고유한 철학과 진정성에 바탕을 두어야만 가능하다. 믿을만한 사람이 믿을만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설득할 수 있다. 즉, 메시지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모두가 동의할만한 근원적 철학과 진정성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노마의 음식은 모두 그들이 재료로 사용하는 각종 채소와 고기가 자라는 자연을 그대로 전하는 데 집중한다. ‘식용 가능한 흙에 묻힌 래디시’만 해도 그렇다. 자연이라는 근원적 에토스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화분을 그릇으로 사용해 그렇게 소박하게 올린다는 생각이 가능이나 했을까 싶다.
또한, 진심 없이 얼토당토않게 에토스라고 하며 사람들에게 요리를 내놓았다면 관심은커녕 부정적 인상만 남기고 외면받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데는 ‘자연’이 요리와 인간의 근원이라는 근원적 에토스를 담아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에토스는 결코 눈에 확 띌 만큼 화려하고 풍성한 것이 아니며 그저 본질이다. 그렇기에 근원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며 남들과 다르기 위해 서로 견주며 부수적인 것에 치중하고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면 그 근원과 정체성을 잃어 에토스가 산으로 가기에 십상이다.
정체성을 잃어 껍데기만 남은 제품과 서비스가 아닌, 그 자체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기초적이고도 근원적으로 집중해 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에토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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