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토양을 누릴 권리가 있다
신용경제 2018-04-09 10:47:44

고문현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듯이 농업은 그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가 60년대부터 산업화가 되면서 농업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지금 필자가 자란 고향에 가보면 폐가가 즐비하고 옛날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정도이다. 그래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는 옛말이 더이상 맞지 아니하여 매우 안타깝다.

농업의 출발은 농지로부터 시작되고, 농지가 있어야 농업인이 존재하며, 농업인이 있어야 농촌문화도 존재할 수 있다. 식량안보, 인구분산정책, 지역균형개발, 자연환경보전 등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기능(다원적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급변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등 공익적 기능을 제고할 수 있다.

이에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 농업 관련 조항을 헌법 규범화 하게 되면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본 후에 농업 관련 규정의 제10차 헌법개정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농업 관련 규정의 헌법 규범화의 의의
농업은 수렵채취를 하던 우리 인간종(호모 사피엔스)의 활동이 좀 더 발달된 형태로 드러난 것인데, 수렵에서 축산과 어업이, 채취에서 원예와 임업이 발전하였고, 그것이 주거와 의생활, 식생활과 상호 융복합되면서 나타난 건 축, 에너지, 섬유, 식품, 의약, 치유, 교육,문화, 관광 산업까지 포괄하였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농업이 제1차 산업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농업은 제1차 산업(원재료의 생산), 제2차 산업(제조, 가공), 제3차 산업(서비스제공)이 함께 들어있던 복잡계 (complex system)와 같은 성질을 띤 산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의 정의를 제1차 산업에 국한하여 그것도 열거주의 방식으로 하고 있지만, 농업을 중시하고 농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다른 나라들은 결코 그렇지 아니한다.

농경사회에서도 농업은 중요했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도 그 중요성은 나날이 커져갔다. 산업혁명의 성과도 농업 부분에서 가장 먼저 적용되었고, 과학기술의 발달도 농업의 필요에맞추어 시작되었다. 예컨대, 자동차의 왕 포드(Ford)는 농기계회사에서 출발하였다. 오늘날 제4차산업혁명의 주요기술인 인공지능(AI), 무인자동차, 드론, 빅데이터, 로봇, 스마트시설 등은 농업부문에서 먼저 상용화되었다. 따라서 제4차 산업혁명시대인 오늘날에도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여전히 진리임을 더욱더 절감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 농업을 헌법에 규정하게 되면 헌법을 구체화한 하위법규(위임입법; 시행령, 시행규칙 등)에서 헌법을 근거로 이를 구체화하여 규정하게 된다.
예컨대 국회의원들이 자기가 속한 지방의회의원들이 선거에서 당선되고 나면 자기 말을듣지 않는다며 지방의회를 폐지하려고 몇 번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실패하였는다. 그 주된 이유는 지방의회가 현행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 단 2개의 조문(제117조와 제118조)밖에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제118조 제1항)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지방의회’의 폐지는 법률개정 사항이 아니라 ‘헌법개정’ 사항이다.

 

허식(앞줄 왼쪽 다섯번째) 농협중앙회 부회장과 임직원들이 지난달 18일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농가소득 5천만원 달성과 농업가치 헌법반영 의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헌법에 농업 관련 규정을 두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현재 정부 각 부처나기관에서 헌법 기관화 하거나 헌법에 부처의 역할 등을 더 구체적으로 표기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농업 관련 규정의 헌법 규범화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그런데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자 기본법이므로 모든 것을 여기에 담으려고 해서는 법체계가 맞지 않는다. 헌법은 헌법사항을 간결하면서도 추상적이고 개괄적으로 표현하여야이를 기초로 헌법 해석이 이루어지게 되고 하위법규(농업 관련법령)를 제정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농업 관련 규정의 헌법개정안
헌법상 농업과 관련된 주된 규정은 다음과 같다.

 

제121조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 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과할 수 있다.
제123조
①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③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
④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⑤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
제124조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
여기에서 이번 제10차 헌법 개정 시 개정이 필요한 조문은 헌법 제121조와 제123조이다. 1)
제121조에서
제2항의 “농업 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를 “농업 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 규정에 따라 인정된다”
라고 표현을 간결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조문은 가능한 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제123조에서
다음과 같이 제1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안전한 국민 식생활의 기초가 되는 농어업과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 및 공익적 기능을 보장한다”
제2항부터 6항은 기존의 조문을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 타당하다.
②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한다.”
③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④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
⑤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⑥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
더 나아가 오늘날 귀촌 농부를 지원하는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포르투갈 헌법 규정(제97조 제1항)처럼 중소 가족농, 중소 협동조합에 우선적 지원 등과 같은 전폭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법체계상 헌법에 자세히 규정할 필요는 없고 하위법규에 이를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더 나아가 헝가리 헌법의 “농지산림 및 식수 생물학적 다양성은 국가의 공동유산을 구성하고 국가와 각 개인은 이를보호 및 유지하고 미래세대를 위하여 보전할 의무가 있다”
(P조 제1항)라든가 멕시코 헌법의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식량보장을 포함한 적절한 지역개발 등을 위한 규정(제27조 제8항) 등도 향후 헌법개정 시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국가들은 실행 가능할 정도로 농업기본법을 갖추고있고 개별 법률로 세심하게 농업육성을 위한 원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자세하게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비교법적 사례에 비추어 보건대, 헌법이 국가의 최고법이자 기본법이므로 헌법 속에 너무 자세한 규정을 담지는 말고 중요한 근거만 제시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것이 전체법질서의 통일성과 체계성에 더욱 더 부합된다 하겠다.
이상에서 헌법상 농업 관련 조항의 헌법 규범화의 의의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반영한 제10차 헌법개정안을 살펴보았다. 위에서 살펴본 국가들의 헌법상 농업조항과 유사한 규정의 도입 이외에도 농업의 근본인 토양이 비옥하지 못하여 발생하게 되는 토양난민(Soil Refugee)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토양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규정을 헌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1) 여기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사동천, “농업관련 헌법 제121조 및 제123조의 개정 시안”, 2017년 한국농업법학회 추계학술대회(미래의 농업농촌과 헌법적과제) 발표문 8-34면 참조.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법학 박사 / 前 대법원 판례심사위원회 조사위원, 헌법재판소헌법연구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現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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