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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게 하지 않는다?!
신용경제 2017-01-03 09:21:33

갑자야화엔 울지 않는 두견새를 대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필요가 없기에 죽이는 냉혈한과 울지 않는 두견새를 어떻게 해서든 울게 하는 전략가, 그리고 두견새가 스스로 울기를 기다리는 끈기남. 과연 이들 중 영웅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鳴かぬなら殺してしまえほととぎす。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
鳴かぬなら鳴かしてみせようほととぎす。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
鳴かぬなら鳴くまで待とうほととぎす。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갑자야화 - 마츠우라 세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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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년 5월~1582년 6월)
군웅할거 시대를 끝내고 천하 통일을 꿈꾸었던 호걸 오다
노부나가는 평소 즐겨 부르던 “인생 오십 년, 하천(下天)의 하루에
비교하면 꿈과 같구나”의 노래 가사처럼 통일을 목전에 두고
총애하던 부하의 배신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먼저,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는 냉혈한이 누구인지부터 살펴보자. 갑자야화의 두견새 이야기에 등장하는 첫 번째 남자, ‘오다 노부나가’는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 목표를 향해 주저 없이 달리는 용의주도함, 끈기, 뛰어난 지략 외에도 인물을 알아보고 신분에 상관없이 등용하는 과감함과 지혜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직업 군인 제도를 도입하고 총과 포로 군대를 무장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던 승부사였던 노부나가는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장수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만한 결정적인 정보를 빼오는 장수에게 더 큰 상을 내릴 정도로 리더십의 귀재이기도 했다. 만일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도쿠가와 가문의 영광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결국 울지 않는 두견새를 죽이는 잔인한 성격 때문에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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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1598년 8월)
미천한 신분으로 천하제일의 자리까지 앉은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 스타일의 영웅이다.
현대식 토지 조사와 병농 분리 등의 정책을 통해 통일된 일본의 기틀을 닦았다

 

반면 울지 않는 두견새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며 유혹해 기필코 울게한 전략가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잡아 천하 통일을 이룬 영웅 중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오다 노부나가를 만난 히데요시는노부나가의 신발이나 챙기던 역할에서 당대 최고의 지략가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미천한 신분, 인생을 뒤바꿀 극적인 만남,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이라는 영웅의 기본 조건을 모두 충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적절한 때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신의 한 수를 둘 줄 알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군사를 지휘 해 본 적이 없었는데도 병사를 부리고 전략을 내는데 거침없었다. 전쟁에 50리 행군의 한계를 뛰어넘어 200리를 행군시키면서 승리를 거두고, 함락해야 하는 성 주변의 모든 병량(군대의 양식)을 사들여 성안을 일대 혼란에 빠트려 항복을 받아내는 전략을 세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병법으로 전쟁을 승리를 이끌며 오다 노부나가가 이루지 못한 천하 통일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의 영웅담은 조선과의 두 차례 전쟁(임진왜란)을 끝으로 서서히 시들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지략을 넘어선 야망 때문에 영웅으로 남지못했던 것이다.

 

영웅은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 자다?

 

이제, 한 사내만 남았다. 울지 않는 두견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그는 거침없는 승부욕과 뛰어난 지략은 없었지만,두견새의 진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그는 두견새를 죽이지도 울리지도 않고 그 앞에서 두견새가 노래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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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년~1616년)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으로 평소 가신들조차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할 만큼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전국시대와 통일을 두고 일본 사람들은 “오다가 쌀을 찧어 도요토미가 반죽한 천하라는 떡을 도쿠가와가 힘 안 들이고 먹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절묘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처럼 기회를 먼저 빼앗지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기회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침착히 모든 것을 인내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 점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성공적인 처세술의 모범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권력을 쟁취하려 하지 않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민심’이었기 때문이다.

 

“듣는 것은 천하의 귀, 보는 것은 천하의 눈, 도리는 천하의마음.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시비를 가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올바른 도리를 행하는 것이 선정이니 이것이야말로 태평성세의 근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도몬 후유지)

 

무엇보다 세간의 민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꿈은 당연히 태평천하였다. 그는 비록 자신은 무력으로 천하를 얻어도 평화는 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피를 부르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겐나엔부 선언’을 발표하며 민심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겐나엔부 선언 이후 260여 년 동안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자신을 의심한 노부나가가 처자식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도 순순히 따랐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온갖 핍박의 세월을 견디고 참아내 마침내 노부나가가와 히데요시가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천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손들에게 물려주며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다.

 

온갖 약초와 의학에 해박해 자신의 약을 스스로 지어 먹을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 권력을 가진 신하에겐 급여를 적게 주고급여가 많은 자에겐 권력을 주지 않는 관리 경영, 노부나가가 패해 적진에 도쿠가와를 남겨두고 떠났을 때도 노부나가를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동맹을 지켰던 굳건한 신의, 그리고 무엇보다 여론의 힘을 알고 항상 그에 따르는 행동을 했던 현명함,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내며 목표를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인내심은 도쿠가와가 가진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울지 않는 두견새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던 세 남자는 각자 다른방식으로 자신의 역사를 후세에 남겼다. 자, 만약 우리 앞에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다면 당신은 그 두견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설사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해도, 기다린다 해도 우리의 결과는 그들의 역사와는 다를 것이다. 역사는 쉼 없이 되풀이되지만, 매 순간 우리의 선택은 조금씩 다른 역사를 만들어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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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월간 신용경제 2017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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