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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의 길, 잃어버린 나에게로의 회귀
신용경제 2017-01-03 09: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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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ghty River

 

그냥 먼 길을 떠나고 싶다면 필시 나를 찾기 위함이다.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마음과 뇌가 견디지 못하면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를 잃은 상태에서는 땅 끝까지 대지를 두드리고 다녀도 아무것도 산란하지 못한다. 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욕하고 창조하는 것에 의해서만 나를 찾을 수 있다. 나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으면 나를 잃어간다. 나를 잃 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가꿀 수 없다. 타인을 유쾌하게 할 수도 없다.

 

타인에게 자신을 맡긴 삶은 거짓이 꽉 찬 세상에서 진실을 고를 의욕조차 없다. 어느 길이 정당한 길인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다행히 타인의 길을 걸을 땐 마음과 뇌가 먼저 조건반사를 일으킨다. 길잡이 길이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길이라 할지라도 나를 찾아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로 이끈다. 밴쿠버 동쪽 칠리왁과 호프 사이 전원 마을 아가씨즈에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수로가 있다. 프레이저 강 상류 위버크릭 수로는 산란을 앞둔 연어에게 자연하천을 뛰어넘는 인공하천이다. 연어의자연 산란을 유도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것인데도 자연하천에서보다 산란율이 뛰어나다. 도저히 살 수 없어 떠났던 곳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살 수 없어 떠난 강에 대한 강렬한 회귀본능

 

자연수로보다 위버크릭 인공수로의 산란율이 높은 것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수로 주변의 산책로 때문일 리는 없다. 아무리 캐나다 연어가 사람들을 피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구경하는 사람 숫자와 산란율에 상관관계가 있을 리도 없다. 맑은물이 흐르고 수로가 굽이굽이 놀이터처럼되어 있어서 기쁘게 회귀하다 보니 산란이 쉽게 이루어져서 일지 모른다. 또한,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공을 통한 인간의 노력이 연어의 강렬한 회귀본능에 전달되어서일 수도 있다. 강 옆에 만들어진 위버크릭 인공수로의 직선거리는 5백 미터도 안 되지만 매년 3만 마리 이상의 사카이 연어, 코호연어, 치누크연어 등이 그곳에서 자연 산란을 한다. 연어가 돌아올계절이 오면 강에 차단막이 세워지고 수로로 들어오도록 유도된다.

 

S자형 수로는 직선 길이에 비해 여섯 배나 길다. 하천 바닥에는 연어가 산란하기에 좋은 자갈을 인공적으로 깔아놓았고 강 상류의 맑은 호숫물을 끌어오면서도 물의 산소량을 높이기 위해 중간 중간에 여울을 설치했다. 폭 6m, 깊이 20㎝의 산란의 현장, 인공수로는 일반 자연하천보다 더좁고 얇지만 높은 부화율과 치어 성장률, 치어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가는 생존율이 자연하천에서보다 훨씬 높다. 살 수 없어 떠난 강으로의 회귀본능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위버크릭 일대 프레이저 강 변아름드리 온대우림의 수목이 산림개발로 잘려나갔다. 댐들이 생기면서 자연 산란장이 크게 훼손됐다. 도저히 살 수 없어 연어들이 떠나갔다.

 

정부는 인공적으로 산란장 되찾기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4년 만에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의 노력은 한시적이지 않았다. 연어가 돌아올 때는 수로 종사자들이 24시간 밤샘을 하며 암컷 두 마리와 수컷 한 마리로 짝을 맞춰 수로 안으로 들여보냈다. 수로 변에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었다. 어린 연어가 냉수를 좋아하기에 수온 상승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늘에 숨어 즐겁게 놀 수 있게 된 연어들은 살 수 없어 떠난 고향이 심어 놓은 삶에 대한 강렬한 의욕으로 충실한 알을 낳게 되었다.

 

살 수 없어 떠난 프레데릭 바크의 산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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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ho Planted Trees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끼어있는 알자스 로렌지방은 원래 철광석이 풍부하다. 농토가 비옥하다. 다른 독일 땅들에 비해 날씨도 좋다. 원래 프랑스땅이었으나 비스마르크가 나폴레옹 3세를 생포해 굴복시켜 프로이센 땅으로 만들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 승리한 연합군으로 인해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다. 수많은 전쟁 때마다 독일에서 피신해 온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러나 항상 곧이어 프랑스정부의 강제 분산정책이 행해지고 그들은 다시 다른 지방 외곽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곳은 그렇게 마음의 땅으로 남게된다. 명작 애니메이션 ‘위대한 강, 나무를 심은 사람’ 등으로 확실히 자신을 되찾은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대부, 프레데릭바크(Frédéric Back)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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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eric Back

 

알자스 로렌 동쪽 인접 자르브뤼켄에서 태어난 그는 알자스 로렌으로 들어와 살다가 알자스 로렌 서쪽 인접 프랑스 렌느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나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찾았다. 그곳은 고향이 아닌 그러나 고향을 닮은 먼 곳이었다. 자르브뤼켄은 프랑스와 독일이 오랫동안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 자르지방이 독일의 자를란트주가 되면서 주도가 된 곳으로 모젤 강의 지류인 자르 강이 흐른다.

 

그가 성장기를 보낸 프랑스 땅 라인 강 변스트라스부르는 알자스 로렌의 중심도시이고, 그가 공부한 에콜 데 보자르 국립미술학교가 있는 프랑스 렌느는 운하의 도시이다. 프랑스에서 학교를 마친 그는 자신이 산란할 곳을 찾았다. 그곳은 프랑스땅이 아니면서도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다운 몬트리올이었다.

 

“캐나다 서쪽에 영국풍 프레이저 강이 있다면 캐나다 동쪽에는 프랑스풍 세인트로렌스 강이 있다”고 할 정도로 세이트로렌스 강은 프랑스 문화가 주류인 동부 캐나다의 생존 젖줄이자 문화의 핏줄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퀘벡주는 많이도 닮았다.

 

프레데릭 바크에게 오타와와 킹스턴을 잇는 리도 운하는 규모가 커진 렌느의 운하이고 퀘벡주는 프랑스 땅 전체보다 더 넓은 광활한 프랑스 땅이다. 자르브뤼켄을닮은 퀘벡시티는 프랑스 본토보다 프랑스 전통을 더 잘 보존하는 사람들의 땅이고 몬트리올은 뉴요커와 파리지앵에 뒤지지 않는 세련된 사람들이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도시다. 두 문화의 융합이 힘든 독일이나 프랑스가 있는 유럽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창조의 본능을 일깨우는 신대륙, 세인트로렌스 강의 몬트리올로 회귀했다.

 

그의 대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위대한 강’은 이 세인트로렌스 강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강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를 고발한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 화가 마튀렝 메위(Mathurin Meheut)의 영향을 받아 자연의 존재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한관찰 및 예술적 표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가능했다. ‘크랙’과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그는 세인트로렌스 강의 태초부터 현대에 이르는 장대한 역사를시적인 아름다움과 다큐멘터리 적 사실성으로 재현한 서사시를 쓰고 싶었다. 철저한 취재와 고증에 입각한 4년간의 긴 시간을 투입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작품을 낳았다.

 

먼 길을 떠나 찾아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이전의 시간도 중요하다. 1948년부터 몬트리올에 정착한 그는 에콜데보자르 미술학교에서 강의하고 라디오 캐나다와 일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나를 찾아 나아갔다. 텔레비전의 교육, 과학, 음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수많은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모형세트를 만들었다. 급기야 1968년 라디오 캐나다 애니메이션 부에 초청되어 환경보존과 관련된 주제로 단편영화 여덟 편을 만들었다. 이 예고편과 같은 소중한 시간이 없었다면 본 세인트로렌스 강 4년
의 시간은 유유히 흐르는 강의 생명력을 타고 헛된 꿈만 낳았을지도 모른다.

 

“유용한 가치가 애니메이션에 깃들어 있으면 사람들은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라고 한 그의 말처럼 그는 항상 유용한 가치
를 찾아 이동했다. 그 가치를 찾은 후에는 한쪽 눈을 실명하면서까지 무한의 노력을 쏟고 지경을 넓혔다. 포기하지 않은 예술
노동과 작품 활동을 통해 인간과 환경에 대한 유용한 주제를 보여주게 되었다. 그결과 그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가이자
예술행동가로 불리게 된다. 창조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다. 무엇을 낳을지, 어디에 산란할지 모를 때
마음과 뇌가 견디지 못하고 나를 이끄는대로 따라나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 돌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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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감정평가사무소장,
30대부터시작하는부동산노테크 저자
(coreits14@gmail.com)

 


<월간 신용경제 2017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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