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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 몸이 아니다
신용경제 2017-01-03 09: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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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주는 나이테처럼, 공기와 음식의 찌꺼기가 혈관 속을 유영하다가 심장이나 뇌처럼 몸 전체의 존망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장부에 턱 하니 붙어버렸다. 포스트잇처럼 잠시 붙었다가 떨어지는 행운 때문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일시적인 허혈 상황으로 인해 몸은 짧은 시간 동안의 죽음, 아니 죽음의 공포를 연상시킬 혼돈을 경험한다. 어지럽기도 하고, 팔다리가 저리거나 힘 빠지기도 하며, 심하면 기절하기도한다.

 

이러한 충격은 꽤 여러 날 여진을 남긴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던 남의 것 같은 질병이 내게도 올 수 있다는 생각, 나이 들면서 아픔에 대해 늘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언어에 대한 이해력, 그동안의 작은 경고를 무시했던 내 무심함에 대한 반성, 1~2년에 한 번씩 하는 검진기록에 나온 숫자 앞에 다시 떠오른 수학에 대한 공포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의 데자뷔 등으로 인한 경험들이 여진과 쓰나미로 우리 가슴에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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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라는 그림이 있다.<이미지의 반역>으로 불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 작품은 당연히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만, ‘실제로 피울 수 있는 파이프는 아니다’는 의미가 담긴 흥미로운 그림이다. 작가의 시선엔 당연히 파이프가 있지만, 그것을 그린 그림은 이미 파이프는 아닌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 파이프를 연상케 하지만 파이프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그림을 보면서, 갑자기 나이 들고 아파지는 몸은 내 몸이지만 이것은 “내가 아니다”또는 “내가 원하는 몸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이 연상되었다. 분명 내 몸이지만, 병들고 약해져서 내가 바라는 몸과는 다른 모습임을 자각했을 때 당황하는 환자의 상황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한 상황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스트레스예요”, “나이 들어 그런거예요”혹은 “체질이죠, 뭐” 등의 쉬운 언어로 그들을 규정짓고 있는 건 아닐까?

 

한 사람에 대한 규정을 경제적 잣대로 매기는 것이 보편화 된 현재, ‘수저론’이나 계층을 표현하는 ‘저소득층’과 같은 표현으로 한 사람의 소중한가치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처럼, 건강에 대한 평가를 할 사람들이 환자들을 그렇게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병들고 힘이 좀 빠진 삶이지만, 이 또한 멋진 삶의 한 과정임을 환자가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정서적으로 조금은 더 풍성히 살아가야 하는 환자의삶을 배려하는 진료시간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의 진료는 기계적이고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행해지기 쉽다. 또한, 그런 결심을 하고 진료에 임했다가도 예의 없고 소통이 안 되며 빠른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환자로 인해 지치기도 하여, 이상적인 생각을 유지하며 진료하기가 썩 쉽지는 않다.

 

하지만 르네 마그리트가 내 진료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이것은 진료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분명 내 진료를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내 진료는 아니야”라는 철학적인 측면 말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진료, 의사와 환자가 만나 조금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꿈같은 진료는 아니라고 평가받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잘 좀 그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말이다.

 

요즘 참 많이 듣는 말이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의 의미인 “이게 나라냐?”이며, 또한 타인을 지칭하며 “그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의 의미의 말이많이 들린다. 분명히 나라이며 사람이지만, 우리가 정확히 꿈꾸는, 아니 어느 정도 동의할만한 정도의 나라와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지전능한 작가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그려내도 나라이며, 어떻게 살아도 사람이겠지만, 보는 독자, 감상하는 자의 시선에서는 나라라고 여기기도, 사람으로 인정하기에도 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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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월간 신용경제 2017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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