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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원, 대습지, 그리고 살아 있는 하늘
신용경제 2017-06-05 16:12:26

 

그곳은 살아있는 하늘이다.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머나먼 동쪽 위니펙호로 흘러드는 대평원의 젖줄, 서스캐처원(saskatchewan) 강 때문이 아니다. 사람의 손으로 흙을 파내고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를 심어 자연호 천국에 만든 인공호수, 리자이나 와스카나(Regina Wascana) 호수 때문도 아니다. 겨울호수에 바람이 쌓아놓은 엄청난 흰 눈 때문만도 아니다. 순결을 넘어 명랑한 사랑을 안겨줄 것 같은 지천으로 펼쳐진 주황백합도, 밀, 귀리, 보리등 세계의 곡물창고, 석유, 코발트, 니켈, 우라늄, 포타쉬 등 광대한 천연자원 때문도 아니다. 자로 재서 하늘과 땅을 갈라놓은 듯한 프레리 대평원 하나 때문에 서스캐처원이 살아있는 하늘로 불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신의 창조물, 대평원과 대습지, 그리고 구름을 타고 날으는 꿈 많은 사람들의 작품 때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가리지 않고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창의성과 감수성과 꿈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프레더릭 그로브(Frederick Philip Grove)도 살아있는 하늘 아래서 죽는 날까지 꿈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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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캐처원(saskatche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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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그로브(Frederick Philip Grove)

 

프레리, 보들레르,
그리고 생보니파스의 사제프레더릭 그로브(Frederick Philip Grove)에게 서스캐처원이 살아있는 하늘인 이유는 또 있다. 폭풍, 일출, 석양, 그리고 구름, 그 구름은 해가 뜨고 지는 프레리 북쪽, 북부 서스캐처원의 드넓은 저습지대에서 발아된 씨앗이 공중에서 습기를 머금고 태어난다. 무럭무럭 커진 솜뭉치 같은 흰 구름은 폭풍이 불 때까지 연중 매우 인상적인 모양의 그림들을 파란 하늘에 수놓는다. 서스캐처원 남부 전체가 편평한 대평원 초원지대, 캐나다의 곡창지대인 반면에 북부 전체는 광대한 규모의 강과 호수, 침엽수로 이루어진 저습지대다. 습기를 머금은 채 펼쳐진 약간 저지대인 이곳에서 하얀 구름 씨앗들이 발아되는 것이다. 서스캐처원은 주 전체에 걸쳐 많은 자연공원이 있다. 그중 상당수는 십만 개가 넘는 호수와 강을 따라 자리한다. 오늘날에 세계적인 카누잉, 카야킹, 보트 낚시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프레더릭 그로브가 살던 시절에는 대습지, 대평원, 파란 하늘, 흰 구름이 구름 아래 사람들을 글을 쓰지 않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하늘과 교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구름을 품은 하늘이 만든 수많은 순상지 자연호수와 대지의 사람들이 만든 인공호수의 조화, 대 자연이 길러낸 프레더릭 그로브 같은 순수한 작가들의 창작물, 사스카툰과 리자이나 같은 크지 않은 도시들의 자연을 모방한 도시문화, 추울수록 더 따뜻하게 맞이하는 선한 사람들, 습지 위쪽 툰드라지대와 북극 해안을 넘나드는 북극곰. 온화하고 낮이 긴 짧은 여름은 겨우 참을 수 있을 정도의 강추위와 짧은 낮의 겨울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게 한다. 서스캐처원과 마니토바의 남부 대평원과 북부 대습지를 무대로 자연주의적
작품을 만들어낸 프레더릭 그로브도 대평원의 혹독한 겨울을 그렇게 이겨냈다.
폴란드 바르샤바 북서쪽 발트 해 방향 먼 거리에 위치하는 라돔노(Radomno)에서 태어난 프레더릭 그로브는 당시 영국계 서 프러시아 사람이었다. 함부르크에서 자라고 학교 공부하고 활동하다 미국으로 오고… 다시 3년 후마니토바로 와서 자리 잡았다. 증조부가 영국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해 목재상을 해서 경제는 풍족했고 1남 8녀 형제들 속에서 태
어났으나 그가 태어난 이후 부모가 헤어지게 된다. 그로브는 살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기도 하고 농촌에서 막노동을 하며 미국과 캐나다를 떠돌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겨울이 오면 방에 박혀 책을읽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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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캐처원(saskatchewan)

 

어느 날 그로브는 위니펙 남쪽 먼 거리 미국 땅 파고(Fargo)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보고 있었다.
글 쓰는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한 책, 순간순간 사라지는 인생무상의 삶과 새록새록 살아나는 권태는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보들레르의 시집이었다. 죽지않기위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며 긴장시키는 불멸의 무기가 필요했던 그 순간 우연히도 위니펙, 생보니파스의 젊은 사제가 그를 보게 된다. 불어 시를 읽고 있는 그와 이야기를 누게 되고 그로브의 지식이 상당 수준임을 알게 된다. 그로브의 선조가 옛 독일사람인것을 알게 된 사제는 노스다코타 접경 Haskett의 메노나이트 학교를 소개해 주었고 그로브는 안정된 직업, 교사가 된다. 그러나 그로브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교사라는 직업보다 마니토바와 서스캐처원이라는 공간이었다.
대습지와 대평원에서 글을 맘껏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지의 보수(Fruits of the Earth)
마침내 그로브의 꿈이 이루어져 글을 쓰며 가르치고 대평원과 대습지를 관찰하며 지냈다. 그러는 사이 해스켓 북쪽, 윙클러(Winkler)에 있는 큰 학교교장이 되고 나이 40이 넘어 초등학교 교사를 부인으로 만나고 딸이 태어난다. 늦게 알게 된 가정의 따뜻함으로 학교가 끝나는 매 주말, 부인과 아이가 있는 집을 향해 마차를 몰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삶에 감사하며 살아있는 하늘을 가슴에 품었다. 파고-Grand Forks-펨비나-위니펙으로 달렸던 첫 마차를 가슴에 품었다. 미국에서 위니펙으로 오기 위해 남에서 정북향으로 달렸던 꿈 가득한 첫 북행마차를 떠올리면 매서운 눈보라 폭풍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어떤 기상 악화도 온화한 아내와 딸을 향한 북행마차를 멈출 수 없었다.
프레더릭 그로브는 대평원을 배경으로 마음에 품어둔 아름다운 자연을 펼치고 싶었다. 그 위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대자연에 어울리는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그 결과 ‘늪지의 정착민들(Settlers of theMarsh)’이 책으로 나왔다. 영화 배경에 나올법한 대평원이 그림처럼 묘사된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고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라져 가는 정든 얼굴들이 삶의 무상함을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게다가 불륜을 일으키는 아내의 스캔들이 겹쳐진다. 책
이 처음 나오자 교회에서는 금서목록에 올렸다. 당시 외설로 치부된 모든작품이 그러했듯이 작품이 편향된 사회에 맞부딪히게 되면 세대가 한번 바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인정을 받게 된다.
넓은 땅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는 캐나다 대평원, 대자연 속에서의 고립과 고독, 가족과 욕망, 타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로브의 작품을 통해 보게된다. 인간의 무지, 울타리를 칠 수 없는 넓은 땅에 대한 두려움에 상관없이 각자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본다. 가난을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스웨덴계 이민 니엘스 린드스텟(Niels Lindstedt)은 대평원을 새 터전으로 잡는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가장 멋있는 집을 짓는다. 하지만 드넓은 대평원, 바람 잘 날 없는 겨울 저지대에서 결혼한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알고 있던 그녀는 니엘스의 청혼을 거절하며 독신의 삶을 선택한다. 얼떨결에 그는 다른 여인과 결혼한다. 하지만 미망인, 매춘부와 결혼했다고 야유하며 주위 사람들이 발길을 끊는다. 고통의 삶은 설상가상으로 다가와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다. 니엘스는 결국 자기 아내를 죽이고 감옥살이를 한다.
세월이 흘러서 출감되고 다시 돌아온 대평원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 하늘 아래 평원이 아니다.
번창하는 평원의 모습은 오래전 자연과 싸우던 이들은 사라지고 없다. 문명에 길들여진 새로운 세대가 자리를 잡았다. 변화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니엘스는 이미 자신을 밀려난 구세대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농장에 자동차가 있고 마차는 사라졌다. 자동차는 그가 혐오하던 것이었다. 오랫동안 보아왔던 숲도 사라졌다. 숲은 항상 구름의 씨앗이 발아하도록 습기를 머금고 있던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평원은 젊은 세대들 방식대로 뻗어 나갔다. 플랜테이션 기업농이 일직선으로 들어섰다. 이제 대평원은 더 이상 꿈을 키워주던 그 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살아있었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니 뭉게구름은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대습지는 여전히 구름의 씨앗이었다. ‘대지의 보수(Fruits of theEarth)’를 떠올렸다. 일정 기간에 걸쳐 한사건을 다루고 싶지 않았다. 장기간에 걸쳐 방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몇천 쪽의 방대한 소설 ‘The Seasons’를 집필할 구상을 마쳤다. 글에 대한 과욕이었을까? 구상을 실행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하늘이 그의 꿈이 아닌 몸 자체를 구름 위로 올렸기 때문이다. 완성을 보지 못한 채 그는 하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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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감정평가사무소장,
30대부터시작하는부동산노테크 저자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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