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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공인된 최대 음모는 과연 무엇일까?
신용경제 2017-08-04 09:44:32

 

인위적인 국경선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이 뉴스 보도나 정치 성명 같은 공식발표보다도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음모론을 더욱 신빙성 있게 느낀다는 점에서 하나가 된다. 그들은 가난과 기아, 전쟁 같은 세상의 악에 대하여 관료주의가 내놓은 설명보다 더욱 그럴듯한 이유를 음모론이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사우스 웰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中

 

 

1932년 이상한 음모론 하나가 미국 전역을 술렁이게 했다. 미 정부가 매독을 연구하면서 터스키기(Tuskegee)에 사는 흑인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생체 실험을 한 공중 보건국이 실험한 흑인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은 물론 그 가족에게 병을 옮기는 것을 방치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민심은 극도로 악화됐다. 물론 이 이야기를 처음들은 사람들은 공인된 정부 기관이 그런 일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며 부정했다.
그런데 공중 보건국에서 성병 조사 임무를 맡고 있던 피터벅스턴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실을 폭로하면서 믿고 싶지않았던 “~카더라” 소문이 진실로 밝혀졌다. 1973년 이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생존자와 유족들이 소송을 통해 9백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지만, 비난은 계속됐다. 결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나서서 의학실험 생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물론 ‘터스키기 매독 생체 실험’의 사건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모든 음모를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음모론들 중 상당 부분이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진실과 음모사이에서 이토록 갈등하게 만드는 것일까?

 

터스키기(Tuskegee) 매독 생체 실험
1932년 터스키기의 매독에 걸린 흑인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국 공중 보건국이 매독 연구를 위해 이들에게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약이라고 주며 방치하고 관찰했다. 공중 보건국은 40여 년 동안 이 지역 실험자들에게 검사를 받으러 올 때 타고 올 버스와 식사, 매독 치료와 관련 없는 의약품을 제공했다.

 

 

시간이 흘러도 식지 않은 뜨거운 음모론이 있다?
세상에 영원히 덮을 수 없는 비밀은 없다지만 왠지 이 사건만은 예외일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이 레전드격 음모론은 바로 대통령 암살에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존 F.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암살 사건이다.
케네디 암살사건은 미 국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진상조사가 철저히(?) 진행되었지만, 결과가 공식 발표된 후 너무 많은 의혹과 예상치 못한 정황들이 나오는 바람에 석연치 않은 음모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 되어버린 특이한 케이스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범으로 댈러스에서 체포된 리 하비오스왈드는 케네디의 매장 전날 잭 루비에 의해 살해당했다. 오스왈드의 죽음에 음모가 있으며 체포된 남자 역시 진짜 오스왈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된 지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미 국민중 대다수가 이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미 하원의 암살소위원회 보고서에도 음모론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을 만큼 냄새(?)가 나는 사건이다.
사람들은 이제 아예 음모가 있음을 확신하고 그 배후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암살사건을 담은 필름과 관련 문서 일부만 공개됐을 뿐 정밀 판명을 위한 결정적인 필름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케네디 암살 사건의 진상 조사를 맡은 워런 위원회(Warren Commission)는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라는 단 한 명의 범인이 대통령을 암살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을 여러 명이 암살했느냐 단 한명이 암살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워런 위원회와 정부가밝힌 암살 진상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되던 날 3발의 총성이 울렸다. 워런 위원회는 그 중 한발이 대통령의 등을 뚫고 들어가 목으로 빠져나왔고 탄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리무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존 코널리(John B. Connally) 주지사가 일곱 군데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당연히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발의 총알이 방향을 바꿔 여기저기 구멍을 내고 다녔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1년이나 조사한 워런 위원회는 위협적인 단 한발의 총알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사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단 한 발의 총알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이 앞에서 날아온 총알에 목을 맞아 두 손으로 목을 감싸는 장면과 뒤에서 날아온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는 장면이 찍힌 8mm 필름이 공개된 것이다. 만약 암살범이 한사람이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연달아 쏜 3발의 총알이 하나는 앞에서 하나는 뒤에서 날아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속 시원히 밝힐 수 없다. 왜냐하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사망원인을 밝힐 결정적인 증거인 뇌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뇌까지 사라졌지만, 암살사건을 밝히기 위한 노력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1968년 이 암살 사건의 관련자 중 한 사람을 기소, 재판한 뉴올리언스(New Orleans)의 한 지방검사 짐 개리슨(JimGarrison)은 워런 보고서 및 관련 문서에 대한 공개를 주장했지만 아쉽게도 2029년까지 비밀에 부쳐진 문건은 단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취재 중이던 도로시 킬갈렌 기자의 죽음은 암살 사건에 음모가 있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만든 계기가 됐다. 경찰은 그녀가 약물 중독에 의한 쇼크사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석연치 않은 그녀의 죽음에 계속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를 믿지 않았다.>

 

 

결국, 1974년 하원 암살 진상 조사위원회가 다시 조사에 착수하게 되고 오스왈드 단독범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케네디 암살 관련 비밀문서 일부를 볼 기회를 잡게 되었지만, 문서 대부분은 지워졌거나 중요한 단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는 것만 확인했다.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면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는다?
어쩌면 별다른 사건이 더 일어나지 않았다면 존 F.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음모도 다른 음모들처럼 이쯤에서 수그러들었지 모르겠다. 하지만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을 둘러싼 석연치 않은 여기자의 죽음은 대통령 암살에 분명 뭔가가 있다는 확신만 더해주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을 조사하던 도로시 킬갈렌(Dorothy Kilgallen)이란 여기자가 특종을 발표하기 직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녀는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오스왈드를 죽인 잭 루비(Jack Leon Ruby)라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더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뉴올리언스에서 정보를 수집 중이었다. 당시 잭 루비의 인터뷰 내용은 1급 비밀에 해당하는 것들이었고 그녀가 수집한 정보들이 꽤 대단한 것이었는 지 FBI까지 그녀의 행보를 예의주시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당시 그녀는 화장도 지우지 않은 상태에 서 독서용 안경을 쓰지도 않고 이미 다 읽은 책을 다시 읽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그녀가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경찰의 발표로 그대로 믿지
않았다.
세간에 핫한 음모론을 뒤쫓던 폭로 전문 여기자가 특종 발표를 얼마 앞두고 자살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 방법이 약물이라는 사실도 석연치 않았다. 경찰은 시신에 저항의 흔적이 없고 혈액에서 신경 안정제 성분과 알코올이 동시에 채취된 것을 근거로 자살로 판정했다고 발표했지만 2년 뒤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킬갈렌은 자살이 아니라 FBI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사건은 급격히 음모론에 휩싸이고 말았다. 사람들은 FBI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깊은 침묵뿐이었다. 진실은 2038년 해당 사건 파일이 세상에 공개되면 밝혀질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If everything is secret, nothing is safe!”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면 아무것도 지켜지는 것은 없다!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에서 대통령 국가 안보 보좌관을 지낸 맥조지 번(McGeorge Bundy)는 미국이 잠금장치를 풀지 않는 수많은 비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미 행정부가 비밀에 부친 문서들은 수십만 건에 이른다. 10년 이상 비밀로 부쳐진 것 또한 23만2502건이나 된다. 언론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대신해 진실을 파헤쳐줄 것 같지만 실상 우리에게 전달되는 알찬(?) 정보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진범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진범을 궁금해하는 것은 사실 그 사건의 진실이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음모론에 눈을 돌리는 것, 그리고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정보보다 일정 음모론을 더 믿는 것은 세상에 널려진 진실이 모두 100% 진짜가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황수정 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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