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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황제와 미친 황제 한 끗 차이 네로의 재발견
신용경제 2017-09-06 09:33:54

네로는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사람들은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른 이유가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지만, 네로는 대도시에 불을 질러 영감을얻 을 만큼 예술적 광기가 넘쳤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예체능에 쓸데없이 욕심이 많았다.

 

 

미워할 수 없는 예체능계의 샛별, 네로
자칭 예체능계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네로는 AD 66년, 올림픽이 열리는 해도 아닌데 올림픽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해서 열린 네로제전에서 총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황제에서 올림픽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네로는 올림픽을 위해 치밀한 작전을 짰다. 그는 전에 없던 하프 연주와 비극 연기를 올림픽 종목에 넣어 금메달을 따는 데 성공했다. 이 여세를 몰아 수레 경기에 참가했으나 수레가 넘어져 망신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레 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함께 참가한 선수들이 그가 다시 일어서 달릴 수 있을 때까지 경기를 멈추고 친절하게 그의 뒤를 따라 달렸기 때문이다. 황제라서 봐주기식 경기를 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경주로 소식을 빨리 전하는 헤럴드 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것으로 보아 아주 재능이 없었던 것은 아닌듯하다. 어찌 되었든 네로는 4개의 금메달을 딴 당시 최고의 올림픽 꿈나무이자 금메달 유망주였다. 가뿐히 체육계를 점령한 네로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예술 분야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휘했다. 로마 사상 최대의 예술 공연을 열기로 하고 자신이 첫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으며 신에게 로마 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로마의 문화와 건축을 장려하기도 했다.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로마 제5대 황제로 원로원이 국가의 적이라고 부른 최초의 황제였다. 네로는 자신의 연설과 노래에 환호하는 대중들에게 거액의 돈을 뿌리며 이를 즐겼다고 한다. 네로의 연설이 형편없었고 대중은 그저 네로의 돈에 마지못해 응했다고 하지만 비평가들조차 네로가 공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만은 인정했다.


좋은 시각으로 보면 네로는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황제였으며 나쁘게 말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괴짜 황제였다. 분명 네로가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폭군이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어설픈 점이 많기에 그를 둘러싼 수많은 스캔들이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도대체 그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악성루머일까?

 

로마에 불을 지른 미친 황제, 네로?
AD 64년 여름, 로마의 원형경기장 주변의 목조건물에서 불이 났다. 7일 동안 이어진 화재에 로마의 절반에 가까운 지역이 피해를 보았다. 로마 시민들의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런데 이 흉흉한 민심들 사이로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대형 화재를 일으킨 방화범인 바로 황제, 네로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화제를 보며 하프를 켰다,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정작 소문의 주인공은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진짜 방화범이라고 주장하며 박해를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네로와 로마 화재 사건의 전말이다.
이즈음 되면 누구나 그것이 궁금해질 것이다. 정말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피고 기독교인에게 뒤집어씌운 것이 사실일까? 이에 대한 답을 말하자면 절반은 사실이지만 절반은 악성루머라는 것이다.

자, 생각해보자. 역사는 진실이기보다는 사실에 가깝고 어떤 사실은 진실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황제가 수도 로마에 불을 질렀다면 시민의 분노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네로가 미친 황제라고 해도 시민들의 손에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고작 영감을 얻기 위해 수도에 불을 질렀을 리가 없다. 대형 방화를 저질러서 그에게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럼 소문은 거짓이란 말인가?
네로가 로마 방화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소문은 거짓이었다.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네로에게는 결정적인 알리바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네로는 화재가 일어나던 그 시간에 로마에 있지 않았다. 당시 네로는 로마에서 50km 떨어진 해변 안치오(Anzio)의 별장에 있었으며 로마가 불타고 있다는 사실도 이틀 후에야 알았다.

 

네로와 아그리피나(네로의 모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숙부인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한 후 그를 독살하고 네로를 황제로 만든 어머니 아그리피나. 네로는 정치적인 권력 다툼 끝에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화재가 일어난 것을 알자마자 로마로 돌아와 화재진압에 앞장서며 신속히 이재민 대책을 지시했다. 그리고 화재 진압용 수로를 확장해 예방책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네로의 이런 지극정성을 알아주지 않았다.
소문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점점 사실로 굳어져 갔다.

 

 

네로의 네로에 의한 네로를 위한 변명?
네로가 친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내를 죽이고 친구이자 부하의 부인을 가로챈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네로에 얽힌 모든 죄를 묻고 따지면 촘촘한 그물망에 멸치 새끼까지 모조리 잡아 모으는 기분으로 날마다 만선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행동에 확실히 비인간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네로의 모든 악행이 대중에게 전해진 시점이 로마화재 사건과 맞물렸다는 것과 그 시점에 방화범으로 지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항상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어떤 이의 기회가 된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네로를 제거하고 싶은 정적들이 아닐까? 심지어 루머의 진실 여부를 가릴 만큼의 여유도 없이 흉흉해진 민심은 누군가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네로 역시 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면 새로운 방화범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네로가 방화범으로 기독교인들을 꼭 집어 지목한 것은 아니었다. 민심을 수습하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위해 근위병을 포함한 온갖 인사들이 유대인 청년들을 범인으로 몰아 네로에게 처형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네로의 의중과 상관없이 한번 시작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탄압은 사도 성 바울을 비롯해 수많은 성직자와 신도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네로의 기독교 박해 사건은 후에 기독교 역사가들에 의해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네로가 폭군으로 찍히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한번 굳어진 이미지를 쇄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죽은 자가 역사의 심판을 뒤엎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네로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나쁜 황제는 아니었다. 네로가 재위한 8년 동안 로마에서는 경기장에서 살육하는 시합이 금지됐고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예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만큼 민주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네로는 자신을 향한 비판 여론에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반역죄로 몰아 죄인을 함부로 처벌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네로 - Nero’s Torches (Christian Candlesticks) 1876년 작품
많은 역사가 네로의 기독교 박해를 인정하고 있지만, 네로가 재위하던 시절 기독교는 대규모 박해를 받을 만큼 대규모의 신도가 있는 종교가 아니었고 광적인 신자에 대한 처벌기록은 있으나 이것도 로마 시내에 거주하는 신자에게만 국한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소문처럼 네로가 폭군이라면 정적들의 공격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무자비하게 숙적을 제거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가장 포악했기 때문에 역사에 악당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만큼 약했기 때문에 악당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황수정 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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