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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개장시간
신용경제 2017-09-06 10:20:18

 

유명한 폭포를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 기대감에 소풍을 앞둔 아이와 같은 설렘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도 몇 차례 봤지만, 실제로 거대한 물줄기의 장관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몇 시부터 이 폭포를 볼 수 있을까요?”, “폭포는 몇 시에 열지?”
그래서 검색해보니 관광을 위한 center는 9시 30분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폭포를 더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터널을 통과해 폭포의 속내를 느낄 수 있는 티켓도 판매하며, 배를 타고 떨어지는 폭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진행되었습니다.
“9시 30분!”
이 시간은 관광객의 편의를 돕는 센터가 개장하는 시간이지, 폭포가 개장하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저의 질문이 참 어이없는 질문임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흐르는 강물이 모여서 잠시 비상하듯 날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는 24시간, 365일 제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을 합니다. 늘 열려있는 폭포를 우리 시각으로, 우리가 보기좋게, 보기 편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의 시간에 맞춰서만 작동하는 놀이동산이 아닌데도, 순간 폭포의 개장시간을 떠올린 우문에 ‘나, 자연은 늘 변함없이 나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또는 ‘자연은 여닫는 시간이 없다?’와 같은 현답을 듣게 됩니다.

폭포의 힘은 너무 셉니다.
하나의 물방울이 모여서 작은 강물을 이루고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물들과 함께 더 큰 강을 이루었습니다. 더 많은 물방울이 모이고, 좀 더 큰 소리가 들리면서, 지금까지 흘러온 강물 같은 인생과는 다른 국면이 전개될 것 같은 두려움 앞에 멈춰 섭니다. 하지만 아무리 멈춰 서려 해도 폭포를 향한 여정에서 낙하할 방법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스핑크스의 난해한 질문처럼 손과 발로 앙증맞게 기어가던 아기가 일어서서 걷는 기적을 경험하는 인간은 시간의 강물에서 헤엄치듯 살아갑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교만하게 살던 청년기를 지나면서, 보통의 사람처럼 성인병도 걸리고, 종양도 생기면서, ‘나에게만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라고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이내 주변의 사람들도 다 한두 군데씩 좋지 않아 병원 신세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되지는 않습니다.
질병과 나이 듦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철없이 지내던 시절에 대한 반성과, 깊고 고요한 수면에 위치해 있어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세월의 강물을 이기지 못할 때, 내 삶의 길이 더 없을 수 있다는 자각이 들 때 즈음, 물방울은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폭포는 시끄럽습니다.
졸졸졸 흐르던 시냇물의 앙증맞음은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손에 손잡고 함께 가는 강물의 다정함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물방울이 하나로 모여 일렬종대로, 인해전술처럼 끝없이 흘러오는 물방울의 행렬에 놀라서 폭포가 거대한 함성을 지르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담담히 삶을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과 달리 생의 마지막 국면에 만나게 되는 두려움과 놀람의 절규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이제라도 역행하려는 물방울의 마지막 몸부림일까요? 폭포의 정직성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과 나이에 대한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합니다. 진시황의 불로초 찾기도 실패했고, 울트라 연어라도 이 거대한 폭포의 흐름을 역행하여 뛰어오르긴 불가능합니다. “나 돌아갈래!”라고 소리쳐도 추억 속, 기억 속 메아리에 그치고 맙니다.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작아지면서 나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아무 노력하지 않았는데, 가을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가을도 매년 찾아오니 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내 준 가을의 시원한 바람에 고마워한다거나, 변함없이 찾아준 신뢰감에 경의를 표하기 보다는 늘 당연시 여기게 됩니다. 또한, 무상으로 쓸 수 있게 제공된 자연을 마음껏 파괴해도 된다는 소수의 잘못된 판단이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음에도, 자연은 인간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합니다.
당장의 난개발로 자연을 제공해준 그 자연과의 공존 약속을 팽개쳐도,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숨 쉴 수 있는 선물로 받은 공기를 더럽혀도, 깨끗한 물을 공급해주는 강에게 오염으로 반응한 인간의 폭력에도 자연은 묵묵히 견뎌주는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가축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고, 생산성 위주로 여기다가 질병에 취약해져 살처분하기도 하며, 늘 먹는 먹거리에 좋지 않은 약품이 남아서 우리의 건강을 도리어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아주고 견뎌주는 자연의 배려심!
이를 역이용하는 인간의 탐욕!
견디다 못해 폭포 줄기 같은 분노를 쏟아낼까 문득 두려움이 다가옵니다.
우리 삶의 시간 동안 숨 쉬고 물 마시며 먹게 도와준 자연과의 관계의 문이 닫히지 않길 바라봅니다. 대자연 앞에 겸허해진 마음일 때 창공을 향해 힘껏 날아오르는 독수리같은 가벼운 몸일 것이며, 탐욕이 족쇄가 되어있다면 폭포수와 함께 낙하하는 비극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늘 열려있는 자연의 시간 동안,
우리가 먹고, 마시며, 숨 쉬는 이 시간,
자연과 함께 즐거워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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