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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_초원의 길, 숨은 별 찾기
신용경제 2017-10-10 13:15:00

해외에서 의료봉사를 하게 될 때는 언어의 문제로 통역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과, 외과, 소아과, 치과와 같은 경우는 어느 나라이건 정확히 진료과목을 알고 있기에 접수를 하고 진료를 받게 안내하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한방진료 ’‘,한의학’ 진료는 무엇이며, 어떤 환자들을 안내하면 되는지 현지인 안내자에게 설명하는 일과, 진료 시에 환자에게 질문할 내용, 환자들의 질문에 대한 응대, 한방진료에 대한 설명을 통역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늘 쉽지는 않다.

 

 

당일 아침에 만나 언어 소통이 완벽하지 않은 현지통역 분께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이러한 것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초보자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능숙하게 저와 환자 사이를 소통하게 도와줘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는 분도 있다.
주사 맞을까 피해서 왔는데 침을 맞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려는 건장한 청년을 돌려세워서 “별로 아프지 않아” 라며 달래기도 하고, 가족 중 누군가가 들려준 침 맞은 무용담을 기억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쉼 없이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말상대를 해주며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대화에 끼지 못하는 내가 불쌍하게 여겨졌는지 실시간 동시통역 수준으로 나에게 설명하는 역할까지 감당하기도 한다. 한국어에 능숙한 통역자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은데, 금년 여름에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을 통역자로 만나게 되었다. 최근의 한국 농담과 드라마까지 섭렵하여 한국분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고, 통역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진료를 할 때도 더욱 유쾌한 마음이었다. ‘허준’와 ‘대장금’ 같은 드라마를 통해 현지인들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맥을 봐 줄 수 있는지,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고, 현지에 어떤 환자가 많고 그들이 공장이란 환경에 적응하며 생긴 최신 질병에 대해 설명을 해 주어 짧은 시간 많은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고 한국에서 이러저러한 진료를 할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현지에서는 그분들의 언어와 설명의 폭과 깊이에 따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언어의 중재자이자 침과 한의학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통역분의 역할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중재자, 연결자, 홍보대사.
이러한 일은 꼭 통역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진료를 받는 환자는 담당 주치의를 통해 의료 및 한의학과 소통하고, 학생들은 담당 선생님을 통해 그 과목을 이해하며,자녀는 부모를 통해 사랑을 배우게 된다.
더 넓은 초원에서 달리고, 밤하늘에 가득 펼쳐진 별들을 바라보며 살았던 선조와는 달리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심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구가 늘고,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려 집과 게르가 혼재된 복잡한 도시는 반듯한 길보다는 좁고 구부러진 형태다. 노쇠한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 속에서 지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우리 또한 그들처럼 도시의노곤한 삶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푸른 하늘과 별빛이 주는 자연의 이야기는 잘 못 듣고, 앞차의 붉은 후미등과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 듣는 좁아진 스펙트럼. 눈의 환상적인 조리개를 가까운 곳을 보는 것에만 사용하다보니, 멀리 바라보면서 좁아진 시야와 눈 근육의 피로가 개선된다는 몸의 작은 속삭임, 몸의 피로와 자연의 자연스러운 치료법 사이를 중재하는 통역의 소리는 잘 못 듣고, 경마장의 말처럼 앞만 보며 달리며, 컴퓨터 모니터만 보며 일하고, 스마트 폰만 보며 눈과 목, 척추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크고 장식적인 유럽의 말은 갑옷 입은 기사를 등에 실을 뿐 아니라 자신도 갑옷을 입어 말그대로 럭셔리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초원의 말은 가볍고 날렵했으며, 타인의 보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4~5마리의 말을 이끄는 민첩함은 크고 멋진 궁성의 보호를 받던 유럽을 떨게 만들었다. 머무르지 않고 달려간 그들의 정신처럼 우리 몸의 기운과 혈액은 경쾌하게 심장에서 출발해 손끝 발끝 피부와 뇌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초롱거리는 눈망울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과 양손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게 기능하기까지 날렵한 순환의기운, 혈, 그리고 정신.
도시의 빛 공해와 Galaxy라고 쓰인 스마트 폰에 집중하느라 밤하늘의 진짜 은하수(galaxy)는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바라볼 때 주는 평안함의 처방과 눈을 다시금 청명하게해 줄 비방을 다시 한 번 사용해보자. 그 아름다운 치료는 잠시 눈을 감을 때, 라이터를 끌 때, 스마트 폰을 내려놓을 때에만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이나 과학의 발전이 아무리 빨라도, 변치 않고 특허도 없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치료법의 실체를 잘 홍보하고 통역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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