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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3시 반
신용경제 2017-11-01 15:04:58

월화수목금 그리고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면, 낯선 퇴근시간으로 인해 저녁을 먹을 시간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닌 시간을 만나게 된다. 날은 밝으나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지쳐 보이는 태양 아래서 힘차게 걸어나 볼까 생각하니 매연과 미세먼지가 너무도 선명히 보이고, 자외선의 강렬함이 알러젠처럼 귀차니즘을 발동시키니 쉽게 귀찮아지는 증상에 맞서 싸울 것인가 회피하여 그냥 주저앉을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후천성 운동 결핍 환자에게 가벼운 운동을 하시라고 권했더니, ‘운동을 원래 잘 안 했는데, 큰 맘 먹고 시작했더니 바로 몸살이 나고 아파서 왔어요’라는 허무한 대답이 기억나서, ‘그래 피곤할 때는 쉬어야 해!’라는 결론에 귀차니즘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판단을 내리게도와주는 길잡이처럼 여긴다. 또한,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내원한 환자가 충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약속이 잡혀 있다고 빨리 골프채를 잡으려 하던 모습이 떠오르면 그 고통속에서도 운동하려는 열정을 나도 한번 가져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많이 아프시면 잡힌 약속이라도 놓아주라’는 실없는 아재개그가 OB나서 환자의 귀엔 더 들리지 않아 보이지만, ‘지나친 열정이 더 큰 뒤땅 후 통증을 낳는 법이야’라고 혼잣말하며, 부상 방지를 위해 미리 기권한 골퍼들의 선택을 지혜롭게 생각하곤 한다.

 

어떤 작가는 매 주 토요일 4시간씩 자기 계발이나 취미생활을 꾸준히 하여 4~5년 후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관한 책을 썼고, 많은 이들이 음악, 미술, 외국어 수업 등꿈꾸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점에 가면 책을 수면제로 이용할 것 같고, 음악을 듣자니 숙면의 오후로 밤잠을 설칠 것 같으며, 운동화 신고 나가면 내 몸이 만드는 중력에 지쳐 할탄천 옆길이 우려된다. 매년 추워지면 아스팔트 교체하는 이유가 나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도로의 피로누적을 막기 위해 자주 안 나가면, 올해 보도블록은 교체 안 하고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라는 아무도 듣지 않을 민원을 허공에 살짝 날려 보기도 한다.
주중 일상의 삶은 혼자서 모든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독주자보다는, 업무의 양과 동료와의 협업 등에 내 속도를 맞춰야 하기여 협주와 같다. 지휘자는 빠르게 리드하는데, 내 연주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당황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명연주자라면 어떤 속도, 어떤 주문에도 막힘없이 주변 악기와 조화를 이루며 연주하겠지만, 업무의 모든 순간을 허덕이지 않고 프로의 여유를 풍기며 살아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파김치! 그래서 하루의일과를 통해 생생하던 배추가 발효되듯 생기 넘치는 아침은 피로한 저녁으로 숙성되곤 한다. 퇴근 후에도 가정을 잘 돌보고, 건강을 위해 저녁을 땀으로 적시며 슈퍼맨처럼 사는 분들을 TV에서 소개하는 듯한데,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본다고 우리가 영웅으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듯 매일 그렇게 멋지게 살기에는 기력도 달리고, 기운도 부족하다. 지금 달리기를 한다고 올림픽에 나갈 수 없을 것이고, 지금 노래를 배운다고 성악가처럼 부르지는 못할 것이며, 지금 글을 쓴다고 훌륭한 작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느릿느릿 걷다가 한 걸음 뛸 때의 충격은 척추와 관절을 지지하는 근육을 깨어나게 할 것이고, 복식 호흡을 하며 한 곡조 뽑을 때는 스트레스를 이길 힘이 생길 것이며, 한 줄씩 힘겹게 써내려 간 글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하고 따뜻한 진료를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Never too late!
수영장에서 물개처럼 수영하던 어르신께, “어르신 어떻게 그렇게 수영을 잘하세요?” 여쭈니, “하도 아픈 데도 많고, 병이 많아서 40 넘어서 시작했는데, 지금 30년째야~” 라고 말씀하신다. 수경만 벗지 않으면 누가 70대로 볼까 싶을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30년간 수영하다 보니 처음 시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질병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진다며, 그때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진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말씀을 떠올려 본다.
맞아! 너무 단기간 내에 뭔가를 이루려 하다 보니, 취미활동이나 자기 계발을 하려고 해도 조급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꾸준히 한 걸음씩! 인생이 마라톤이듯 숨 쉬며 움직이며 노래하고 글 쓰며 살아가는 것은 멋진 인생일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른함만 선사했던 토요일 3시 반에
이런 건설적인 생각을 하다니,
나도 좀 지혜로워질 만큼 나이를 먹었나?
남자는 철들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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