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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 술 하는 역사가 있다? ②
신용경제 2018-09-03 17:55:25

술의 역사를 우리가 스타트하지 못했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음주문화가 있다. 어디 문화뿐인가!
정확한 비율과 김연아의 점프나 회전을 능가할 내공이 있어야만 제조가 가능하다는 국보급 알코올, 폭탄주가 있지 않은가! 심지어 정확한 안배와 디테일한 손놀림이 필요하다는 이 분야에 나름의 제조법을 자랑하는 기술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처럼 폭탄주는 애주가들의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과 독보적인 음주문화 구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황수정 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원조를 가리자. 누가 폭탄주를 마셨나!
일단 포도주의 축복을 곳곳에 기록한 성경에도 폭탄주를 경계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잠언 23장 29절~30절

 

잠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금언집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지해야 할 지혜와 교훈이 담겨있지만, 내용은 성경을 읽는 모든 이가 알아두어야 할 지혜를담은 책이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해도 귀동냥으로 잠언의 한두 구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이 인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잠언에 언급된 혼합주는 오늘날의 폭탄주다. 성경 한 귀퉁이에도 언급될 정도면 당시에도 폭탄주가 꽤 유행했던 모양이다. 그럼 계속해서 성경이 경고한 폭탄주의 위력을 살펴보자.
잠언 23장 30절부터는 폭탄주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나와있는데 마신 이는 뱀 같이 물고독사같이 쏘며 눈에 괴이한 것이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 만취한 이들은 구부러진 말을 하면서 때려도 아프지 않고 상하게 해도 감각이 없다고 적혀있다. 예나 지금이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 대방출과 모든 길바닥이 내 집 안방 침대인 양대자로 뻗을 수 있는 용기는 폭탄주를 마신 자들의 특권인 모양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폭탄주를 마신다고 길바닥을 제집 안방인양 드러눕지는 않는다. 드물기는 해도 폭탄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탄주가 가장위험한 주류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리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상당히 얌전히 술을 마셨다. 나름대로 거친 사내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스파르타에서조차 ‘원샷’하는 사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그대로 마시지않았다. 대부분 물과 섞어 희석해서 마셨는데 폭탄주는 아니지만, 여기에도 배율이 존재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작가 호메로스는 물 20에 포도주 1을 타서 마시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물론 섞어 마시는 비율은 폭탄주처럼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한희곡에는 3 대 2로 마시는 것이 좋은지 3 대 1로 섞어 마시는 게 좋은지를 토론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 시인은 3 대 1의 비율을 옹호하며 3 대 1로 혼합한 네 번째 잔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각각의 비율을 극작가인 헤시오드(Hesiod), 시인 알렉시스(Alexis) 같은 인물들의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전통은 로마로 이어져 식수 대신 물에 희석한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이처럼 포도주조차 물과 희석해서 마시던 그리스인들이 제대로 된 폭탄주를 만나게 된 건스키타이인들을 용병으로 기용하면서부터다. 용병으로 그리스에 거주하고 있던 스키타이인들은 늘 하던 대로 자신들만의 음주문화를 아주 편하게 즐겼다. 스키타이인들이 보기에 그리스인들이 마시는 건 술이 아니었다. 취하려고 마시는 술에 물을 타다니….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그들은 폭탄주의 올바른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포도주에 독주를타 한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그리스에 제대로 된 폭탄주를 소개한 그들은 그렇게 단숨에술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야만인이 되고 만 것이다.

 

술에 대해 일가견이 있던 이집트인들의 폭탄주
알딸딸한 음주문화의 개척자인 이집트인들은 폭탄주를 제조하고 즐기는 데에도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다. 일상 속의 음주문화를 몸소 실천했던 이집트인들에게 취한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그러니 만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만취해 구토하는 것마저 신의 축복으로 여겼으니 고대 이집트야말로 애주가들이 꿈꾸는 지상 낙원인 셈이다.
이집트인들은 만취의 축복을 한방에 누리기 위해 폭탄주를 제조했다. 맥주와 포도주 원액으로 만든 폭탄주를 마시고 취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집트에선 많이 취해 비틀거릴수록신분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번 술판이 벌어지면 밤이 새도록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자세로 술을 퍼마셨으니 동이틀 무렵 정신 줄을 온전히 잡은 이가 없어 하인들에게실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기까지 읽고 이집트의 관대한 술 문화에 반해 이집트로 음주 원정을 계획한 이가 있다면 신중하게 말리고 싶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맥주와 와인을 만드는 법을 로마에 전수하고 폭탄주를 제조해 즐겼지만 지금 이집트에선 입에 술을 대는 건 고사하고 술을 사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음주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이슬람 영향을 받은 이집트에선 맥주를 구매하는 것 자체가 첩보 활동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사업상 이집트를 방문했다면 금주의 자세를 보이면 급호감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과거 화려한 음주문화를 꽃피웠던 이집트에서 금주라니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또 있을까.
하지만 술의 원래 목적이 이성을 무디게 하여 아이러니한 상황을 즐기는 것이니 술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술이 과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쾌락을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자제력이 문제를 만든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된 일이니 말이다.

 

술이 아니다? 술이다? 술은 역사다!
20세기의 지성, 알베르 까뮈는 술은 인간을 쫓아내고 짐승을 드러낸다고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일상생활의 소소한 실수라면 어찌어찌 만회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러 만회할 수 없는 실수도 일어나는 법이다.
어지럽던 전국시대의 흥망사를 군주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 유향의 <전국책>에는 술로 망한 전설의 중국 고대 왕조 하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작은 어느 날 하나라 우왕의 딸 의적이 향기로운 술을 빚어 임금께 바치면서 시작된다.
술맛을 본 왕은 후세에 필히 이 술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의적과술을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400여 년이 흐른 뒤 17대 왕 걸은 선대의 가르침을 새겨듣지 않았다. 본래 현명하고 유능해 신하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던 걸왕은 소국 유시씨(有施氏) 토벌 과정에서 항복의 대가로 많은 진상품을 받았다고 한다. 그 중 유시씨의 딸 말희(末喜, 매희)도 끼어 있었는데 걸왕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왕은 그녀만을 총애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여색에 빠진 걸왕은 말희가 궁이 초라하다고 불평하자 옥실과 옥누대, 옥침대를 만들어주고 회랑을 상아로 장식했으며 궁녀가 적다는 말에 3000여 명의 궁녀를바로 뽑아주었다. 여자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던 착한 남자 걸왕은 드디어 그들만의 유토피아 공사에 착수했다.
중국의 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의하면 커다란 연못에 술을 채우고 고기로 산을 만들고 포(脯)로 숲을 만들어 그 못에 배를 띄워 놀았으니 술지게미가 쌓여 만든 둑이 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연회는 음주가무를 벗어나 풍기문란에 가까웠다. 북이 울리면 삼천 명이 달려들어 물 마시듯 술을 마셨고 곳곳에 옷을 벗은 남녀들이 춤을 추었으니 이 난장판에 간혹 만취한 궁인이 실수로 연못에 빠지면 이를 보고 매우 즐거워하는 이가 바로 시대의 악녀 말희였던 것이다. 이 길고 긴 연회의 밤이 장작 120일이나 계속됐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다. ‘술이 연못과 같고 고기가 숲과 같이 많이 있다’라는 뜻으로 한바탕 질탕스럽게 치러지는 잔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중국의 왕이라 하나 연못에 술을 채우고 고기로 산을 만들어 삼천 명씩 마시게 하다 보니 국고가 바닥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충언을 한 신하들이 줄초상을 면하면 심한 매질을 당하다 보니 왕의 곁엔 누구 하나 바른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폭군의 말로가 늘 그러하듯 걸 걸왕의 말로도 좋지 않았다.
400여 년을 지켜온 하나라는 은나라 탕왕(湯王)의 공격으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처럼 술은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수많은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희로애락의 순간을 같이 했다. 마치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苦生)을 같이해온 조강지처처럼,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죽마고우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은 술의 역사를 안주 삼아, 마시고 죽어 보자가 아니라 노닥노닥 담소를 나누듯이 한 잔 한 잔 음미하며 마셔봄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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