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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얼굴, 겉과 속
임진우 2018-10-02 08:38:32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추석은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곡식을 추수하는 시간이며,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귀한 시간입니다. 태양의 변함없는 에너지 공급과 토양의 촉촉함이 힘을 모으지 않았다면, 결코 풍년의 기쁨을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태양과 물, 그리고 농부의 성실함이 일체가 된 결정체는 한 해의 식량이 되고, 생명의 근간이 되며, 하루의 삶을 추진하게 하는 기름진 연료가 됩니다.
잘 익은 벼가 고개 숙임으로 완성되는 이 순간은 또한 알맹이와 껍데기가 분리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가 오기 전에는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진짜 알곡만!!!’ 을 아무리 외쳐도 오늘이 될 때까지는 함부로 구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껍질을 미리 까려 하다가 자칫 알맹이를 잃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 손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 톨의 알맹이라도 잃을 수 없기에 마지막 추수 때까지 ‘껍알일체’의 모습으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날이 오면 아무리 화려한 껍질이라 하더라도 추수에서 살아남는 녀석은 알곡뿐입니다. 껍데기가 알곡이 아님을 알게 되는 이 시기는 화장을 지워야 하는 저녁과 같습니다.
간혹 좋은 회사로 알려졌던 회사가 분식회계 한 것이 들통 나 사회적으로 실망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식, 화장한 듯 번듯하게 회계를 조작한 것, 스스로의 민낯을 드러내지 못하고 포장할 수 있지만, 끝까지 숨기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화려한 화장을 해서 멋지게보여도 반드시 지워야 하는 화장처럼, 껍질은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안과 밖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내 몸의 안과 밖을 의미하기도 하며, 내 몸내에서도 좀 더 안쪽에 위치한 곳과 상대적으로 겉면에 있으면서 보호에 힘을 쏟는 곳으로 나누어 집니다. 자연스럽게 한자로는 ‘표리’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리, 즉 안의 기운이 좋으면 얼굴의 안색이나 입술의 색, 혀와 눈빛이 건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이용하여 안색과 혀의 색, 혀를 이끼처럼 뒤덮고 있는 태의 형상과 색은 아주 중요한 진단의 요소가 됩니다. 진맥할 때의 맥 또한 인체 내부의 기운과 혈액순환의 좋음과 그렇지 않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의 안과 밖은 굉장히 밀접하며 떨어질 수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니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진짜 몸의 내부는 열이 넘치는데, 차갑다고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젊은 여성환자가 피부에 트러블도 많고, 한 번씩 열감이 훅하니 얼굴로 올라오며, 가슴도 답답하고불안한데 손발이 차갑다고 무조건 몸이 차가운 것이 아닌지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겉, 특히 손발이 차갑다고 몸이 찬사람으로 오해하고 더운 약재로 구성된 약을 복용한다면 일시적으로는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있지만, 지나치면 가슴이 답답한 등의 증상이악화되거나 불면증이 생긴다는 등 속의 열이 더욱 심해짐으로 다양한 증상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차가운 증상 하나 “손발이 차가워요”로 인해 실수하기 좋은 경우인데, 안과 밖의 열기와 한기를 잘 진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표리를 잘 분석하고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분리시켜서 몸의 알맹이 증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치료의 첫 과정으로 겉 증상,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먼저 치료해서 증상의 껍질을 치료한 이후에는 알맹이 증상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혹 겉으로 드러난증상이 처음의 치료로 좋아진 덕분에 이 처방,이 한약, 이 식물이 잘 맞기에 앞으로도 계속 이 처방만을 활용한다면 어떨까요.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개선될 때의 1단계의 치료에서는 아주 좋았고, 만족했지만, 거기서 중단하지 않고 변화된 몸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계속 같은 방향의 처방을 쓰게 되는 경우패 증, 오히려 좋지 않은 쪽으로 갈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즈음같이 한약재를 원료로 하는 식품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정확한 진단에 근거한 치료의 방향설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몸이 냉하고 기운과 기분이 떨어져 있지만, 입 냄새가 많이 나고 속에서 열이 올라오는 현상을 가진 분의 경우 ‘위장의 열’로 진단하게 됩니다. 위장이 정말열을 받아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위장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음식을 소화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위장 또는 몸 전체가 더욱 피로해 과로가 가짜 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또한 겉으로는 열의 현상으로 표현되지만,진짜는 허약함, 기운 없음, 온기가 부족함 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겉과 속의 증상을잘 분석하여 적절한 처방을 하여야 하며, 단지 입 냄새 위장의 열로만 이해한다면 좋은 치료일지언정 훌륭한 치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겉과 속은 대부분의 경우 같이 갑니다. 속이 건강한 사람이 겉도 건강하며, 겉으로 빛이나는 사람의 경우 내부도 건강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겉과 속을 구분해야 하는 시기에는 농부가 알맹이와 껍질을 분리하듯, 안과 밖을 세심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증상, 표리부동한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몸이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더웠다 추웠다 하는 가을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속은 더욱 옹골차서 겨울을 준비해야 하고, 겉의 헛된 열은 시원하게 날려서 여름의 피로를 회복하여,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건강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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