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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력한 유럽의 심장 벨기에 브뤼셀
임진우 2018-07-02 14:11:34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에 속하는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본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위치에 있는 유럽의 수도이기도 하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나라의 한복판에자리 잡고 있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다. 17세기에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평했던 이곳은 파리와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작은 파리’라고도 불렸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브뤼셀은 유럽 열강들이 즐비한 심장부에 있는 국제도시다. 실제로 영국 런던에서 316km,프랑스 파리에서 308k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02km, 룩셈부르크에서 213km 거리에위치에 있다. 도로, 철도, 항공 등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도시 전체에 활력이 넘쳐흐른다. 이러한 현대 문명과 함께 중세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유서 깊은 건축물도 즐비하다. 이처럼 현재와 과거의 공존이 브뤼셀만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지 2시간 30분 후, 벨기에 수도 브뤼셀 중앙역 부근에 도착하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네덜란드와 거의 비슷하였다. 버스에 내려다본 건물 역시 유사했지만, 미세하게나마 색감은 브뤼셀이 단조로워 보였다.
브뤼셀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동쪽은 국회, 왕궁, 박물관, 재판소 등의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정치 행정지역이고, 서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그랑플라스를 중심으로 한 상업 지역이다. 브뤼셀 관광에서는 주로 그랑플라스 중심으로 한 서쪽지역을 둘러보게 된다.

 

브뤼셀의 가장 중심이 되는 광장 ‘그랑플라스’
필자는 일행들과 함께 상업 지역인 서쪽만 둘러보기로 하고 그랑플라스 광장을 찾아가기위해 10여 분 걸었다. 거리는 낯섦과 동시에 서울의 명동과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유럽 거리 특유의사각돌 바닥이 아닌 아스팔트가 깔려있었고, 상점들로 꽉 찬 현대식 건물과 북적거리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랑플라스에 도착하자 모두의 입에서 “우와!” 하는 함성이 나왔다. 역시 다시 중세로 돌아간 듯 광장을 둘러싼 옛 건물들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여 줬기때문이다.
이곳은 벨기에의 상징적 장소다. 15세기에 가로 70m, 세로 110m넓이로 조성된 광장 주변을 시청사와 길드하우스, 왕의 집 등 고딕양식의 중세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광장 그자체가 건축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이 건축물들과 광장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종로에는 광화문, 경복궁이나 창경궁은 옛 조선 시대의 상징적 건물이 있다. 궁궐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과거와 미래를 잇는 살아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불현듯 고려 말의 충신 길재(吉再)가 나라가 망한 후 탄식했던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길재는 인품과 학식으로도 추앙받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영화로웠던 옛 서울 송도(松都)에 와서 인재들이 흩어져 없어진 것을 보고인생무상의 허무함을 시로 표현하였다. 나라를 잃어 인간사가 바뀐 상황을 변함없는 산천과 비교하여 서글픔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사 역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삶이 극에 달하면인생의 덧없음을 새삼스럽게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북해 건너 영국 사이에 있는 나라이다. 오래전부터 유럽의 전쟁터가 되어왔음에도, 이 광장의 건물들을 산천과 같이 지켰다. 그 결과 송도와 같이 당시 인걸은 간 곳 없지만, 그들의 작품인 건물들은 남아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을 찾아오게 하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듯,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외침의 흔적이 묻어 있는 벨기에 그랑플라스 광장을 찾아오고 있다. 광장에 들어서면 옛 향수를 달래듯 여행자들은 바닥에 앉거나 눕거나 돌아다니면서 옛 선인들의 냄새를 맡는다.
우리나라는 외침으로 역사를 상징하는 가치 있는 사찰이나 고궁, 문화재가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린 곳이 많다. 하지만 벨기에는 전쟁을 겪었음에도 옛 건축물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전쟁의 상흔을 남긴 역사에는 피비린내 나는 죽음이란 비극이 현실이 된다. 우리나라 역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잦은 외침으로 수많은 민초들이 짓밟히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풀같이 여린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오늘날 독립 국가로 존재하게 만들었다. 민중들이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어왔다. 전 세계 유럽이든 아시아든전쟁의 역사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극히 드물다. 지금도 여러 나라에는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그랑플라스를 대표하는 건물들
광장에 들어서면 건축물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시청사다. 고딕 양식의 시청사는 당시 브라반트 공작의 막대한 권력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지어졌다. 1695년에 프랑스의 대규모 공격을 피한 유일한 건물이다. 공격의 타깃이 바로 이 건물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시청사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재건되어지금도 여전히 그랑플라스를 대표하는 건물이자 브뤼셀의 시청사 역할을 하고 있다.
1449년에 세운 96m 높이의 탑 꼭대기에는 금빛으로 칠한 브뤼셀의 수호성 미카엘 대천사(St. Michael)상이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브뤼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시청사와 마주 보고 있는 ‘왕의 집’은 1515년 건축된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이름대로라면왕이 사는 곳 같지만, 이름과 달리 왕이 거주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샤를 5세 때 브라반트주청사로 16세기에 사용된 이래 법원 감옥으로 쓰였다. 현재는 시립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며, 각국에서 기증받은 오줌싸개 동상의 옷 750벌이 전시돼 있는데 한복을 입은 오줌싸개인형도 볼 수 있다.
그랑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 중 시청사와 왕의 집을 뺀 나머지 70%가 대부분 길드하우스다. 이 길드 하우스는 15~16세기 상공업이 발달하던 시절에 생겼던 상인 조합으로, 당시에는 왕성했던 해외무역의 결과로 길드는 동업 성격에 따라 잡화, 빵, 염색, 목공 등다양하게 형성됐다.
아직도 그랑플라스 주변엔 각 길드 본부로 사용되던 길드하우스가 많이 남아 있다. 제과업자 길드, 가구제조업자 길드, 제화업자와 직물업자 길드, 그리고 정육점주인 길드 등 다양한 길드 건물을 볼 수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물은 9번지와 10번지로 불리는 건물이다.
정육점주인 길드 본부였던 9번지는 백조의 집이라 부르는 건물로, 칼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썼던 곳이다.
1885년 벨기에 노동당이 출범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마르크스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과거‘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모든사람이 부의 분배를 골고루 차지하면서, 함께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이념에 매료되었던 적도 있었다. 과거 백 년 간 지식층에 바이블같은 책이기도 했다. 지금은 전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념으로 퇴색되어 멀어져갔지만,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굵게 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가끔은 자본주의와 마르크스 공산자의 사상인 두 축을 저울질하기도 한다. 또 10번지는 황금나무의 집이라고도 부르는데, 처음엔 제화업자와 직물업자 길드 본부였다가 현재는 맥주박물관으로 사용하고있다.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주 제조 과정을 충실하게 재현한 전시장이 있으며, 화려하게 치장한 건물로 유명하다.

 

 

‘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스토리텔링의 승리
브뤼셀의 가장 나이 많은 시민이라 불리는 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벨기에 관광에서 빠지지않는 코스다.
연못에 오줌을 누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은 청동상이다. 너무나 작고 낯선 골목 안 구석에 있었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수십, 수백 단위로 운집한세계 각국 방문자들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서 심심하게 느껴질 무렵, 스토리텔링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해서일까? 체코 프라하의 구시청사 옆 천문시계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뤘던 것이 생각난다 .
이 동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는데, 프랑스 루이 15세가 브뤼셀을 침략했을때, 이 동상을 탐내 프랑스로 가져갔다가 이후에 사과의 의미로 화려한 후작 옷을 입혀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때부터 국빈들이 방문할 때마다 오줌싸개 동상의 의상을선물로 가져오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한다.
동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곳이 한때 오줌 시장이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다. 당시에 가죽 제품을 연하게 하려고 오줌이 사용됐다는 설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조그만 동상 하나를 세계에서 해마다수십, 수백만 명이 찾아드는 명소로 만든 벨기에 사람들의 창의적 두뇌는 실로 대단하다.
어른이 아닌 어린 소년이 오줌을 싸는 장면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랑플라스 광장 밤에 취해 낭만적인 하루를 마치고, 다음날 영국에 가기 위해 저녁 늦게공항 부근 브뤼셀 호텔 캄파닐 에어포트에 도착하였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3층까지 계단으로 짐을 갖고 오르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하늘로 뚫린 창문이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유럽 대륙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한 마지막 밤이다.

이튿날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출발 1시간 전 브뤼셀 미디역에 도착하였다. 브뤼셀에서 영국으로 출발하기 전 입국 심사 절차를 밟기 위하여 서둘렀다.
유로스타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해저터널(도버 해협)을 오가는 시속 300km의 고속열차다. 열차 종류는 우리 KTX와 같은 기술인 프랑스의 테제베(TGV)로 운행되고 있다. 도버터널을 통하여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 벨기에의 브뤼셀을 연결하고 있다. 50km 길이의 도버해협 터널은 1994년 개통됐으며 38km가 해저구간이다.

유로스타는 양국 간 49.94km를 2시간 15분 만에 주파하며 하루 3만 명을 실어 나르고 있다.
브뤼셀 미디역에서 엄격한 입국 심사를 거친 후 탑승하였다. 7시 56분 정시에 출발해 2시간 남짓 만에 배가 아닌 고속열차를 타고 드디어 옛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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