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축제, 마을영화 이야기
신용경제 2018-03-05 13:50:39

 

레디 액션! 7살 하늬와 하륵이의 우렁찬 목소리로 오늘의 영화촬영이 시작됐다. 마을회관에는 카메라가 쉼 없이 돌아가고, 마을 주민의 구수한 연기에 박장대소와 NG가 반복되며 촬영장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오른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마을영화를 만드는, 여기 이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는 내금강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금강산 가는 길. 적들의 진격을 막기 위한 방어벽이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는 걸 보니 비로소 전방에 와 있음이 실감 난다. 도서관과 목욕탕, 주민대피소까지 번듯하게 들어선 이곳은 강원도 인제군 서하면의 복지타운이다. 이곳엔 수개월째 서하면 주민과 영화 촬영이 한창인 신지승 감독·이은경 PD 부부와 쌍둥이 남매 하늬·하륵, 그리고 8살 난 풍산개 복실이까지 다섯 가족의 생활 터전인 5톤 트럭이 자리 잡고 있다. 이차량은 24년 된 촬영차라 잔고장이 많지만 신 감독이 직접 설계하여 리모델링해 만든 만큼 견고함이 느껴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바닥은 온돌처럼 따뜻하고, 창 밖 풍경은 대자연 그대로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영화촬영은 오는 3월 말까지로 예상하고 있으니 유독 추웠던 올겨울을 가장 추운 지역에서 난 셈. 촬영은 짧게는 한두 달, 길면 6개월까지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면 단위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단다.
“밤이면 크진 않아도 북한 선전 방송이 들려오기도 하고 사격훈련 소리도 나요. 삐라(북한의 대남 선전 전단)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요. 그런 마을이에요. 평화로운 시기지만 어떤 땐 금방이라도 전쟁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무섭기도 하죠. 그래도 아이들이 지내긴 이곳만큼 좋은 데가 없어요. 수도권은 미세먼지가 문제지만, 여기엔 그런 게 전혀 없거든요. 놀 거리, 볼거리도 많아 애들이 무척 좋아하죠.”

 

모두의 축제, 마을영화제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신지승 감독과 방송 연출가였던 이은경 PD는 영화 제작사에서 함께 일하다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후 1999년도에 경기도 양평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 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그때부터 주민들을 참여시키면서 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올해로 19년째인 영화작업은 작품만 대략 80여 편에 이른다.
영화는 신 감독이 총괄하고, 이 PD가 섭외와 진행, 편집 등을 맡고 있다. 그리고 올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귀염둥이 쌍둥이 남매 하늬와 하륵이는 주로 연기를 담당한다.
“아이들이 4~5살 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했는데 이젠 좀 컸다고 안 하려고 해요. 용돈이나 조금씩 준다고 하면 모를까…(웃음).
그래도 보고 배운 게 있고, 영화촬영장을 놀이터 삼아 자라서 인지 곧잘 카메라를 들고 촬영장을 누비죠.”
대부분 영화는 극장이나 TV, 혹은 영화제에서 출구를 찾고 있지만 신 감독과 이 PD는 그걸 포기한 대신 마을에서 영화를 만들어 그 마을에서 축제를 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굳이 남이 가지 않는 길,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번듯한 영화감독으로, 방송국 연출자로 얼마든지 능력을 인정받아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슬아슬하고 힘든 이 작업을 20년 가까이 해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신 감독의 답은 확고했다.
“저희가 마을영화를 시작하던 99년도에도 영화는 번창했지만, 이러한 문화에 소외된 사람들도 분명 있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원통 터미널에서 20분이나 차를타고 들어 온 이곳 서하면을 예로 들어볼까요. 터미널이 있는 원통에조차 극장이 없어 이곳 사람들은 영화를 보려면 속초나 춘천으로 가야 해요. 어르신들이 영화를 보겠다고 지역을 벗어나기 쉽지 않으니 영화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거죠. 오래전, 우리나라에 처음 영화가 왔을 때 시골에는 ‘천막극장’이라는 게 있었어요. 천막을 치고 영사기 돌려 영화를 상영했죠. 이런 천막극장도 원통 정도는 나가야 볼 수 있었어요. 이렇게 작은 마을 구석구석까지는 들어오지 못하는 겁니다. 영화라는 것이 도시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가까웠지만, 영화와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던 거예요. 안보다 보면 더 멀어지고, 그러다 보니 정서도 다르죠.”
사람들이 웃고 떠들면서 만드는 영화, 한국 고유의 장르가 소외된 마을에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에서 시작된 이들의 작업은 우리나라 약 100여 군데의 시·군을 넘게 다니며 진행됐다.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영화를 만들어 왔기에 그 어떤 방송보다 구체적인 만남도 가능했다.
“사람들은 영웅이나 성공한 사람, 특별한 그 누군가의 메시지만 들으려고 해요. 이야기의 역사 자체가 그랬어요. 전했을 때 솔깃해야 하고,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어야 했죠. 그러다 보니 추상의 이야기들이 점점 더 많이 개입되어 구상과 구체적 인물은 다 빠져 버려요. 이 모순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마을 영화입니다. 우리는 직접 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마을 주민이 되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영화는 ‘모두의 영화’이길 바란다. 함께 찍고 즐기는 축제로서의 영화다. 작은 마을을 선택한 것은 바로 모두의 영화를 하기 위함이다.
“영화를 보고 가장 힐링을 느껴야 할 사람은 도시에 있는 소비자가 아니라, 바로 이 영화 속 주인공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에너지를 받고 문화를 향유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영화인들은 이들의 삶을 재연해 다른 사람들을 힐링 시키고자 했던 거예요.
영화라는 것을 그렇게 쓰지 말자는 겁니다. 영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일
다시 마을회관 영화 촬영장. 촬영에 나서는 어르신들의 연기는 깜짝 놀랄 만큼 자연스럽다. 구수한 사투리와 제스처가 직업배우 못지않다. 그들의 자연스러움을 끌어내 주는 건 역시 연출자의 몫. 즐겁게 연기할 수 있도록 신 감독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촬영 전반을 책임진다.
그런데 이들이 영화를 촬영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일반적인 영화촬영 기법에서 벗어나 촬영을 진행하며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구성이다. 직업 연기자가 이미 짜인 틀 안에서 이야기를 재연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영화제작이라면 작업의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이들은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찍지 않는다.
“별자리는 별과 별을 연결해 그 이어진 선으로 이미지를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잖아요. 우리가 만드는 영화도 그래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이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 구상과 추상이, 다큐 성과 드라마 성이 함께 하는 겁니다. 공간에 가서, 그 속에 파묻혀있는 주제를 발굴하는 측면이 강하죠. 강원도라고 해서 옛이야기, 전쟁 이야기를 담는 건 우리가 경계할 만한 전형성이에요. 방송이나 상품으로서의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우리가 작품에 임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다르거든요.”
전국을 떠돌면서 만나는 개 이야기부터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 이야기까지, 모든 게 영화의 소재이고 여기에 나오는 모두는 그대로 주연 배우다.
“이 이야기들은 미리 작가들이 짜놓은 게 아니에요. 이 동네에서 생활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고, 그 모태가 바로 그들의 삶이기 때문에 이분들은 이야기에 얹혀져 연기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원작자가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영화촬영장엔 직업 연기자나 인위적으로 만든 세트장이 필요 없다. 연기로서의 연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것을 원하는 신 감독의 고집이다. 실제 농사지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굳은살이나 살아있는 그들만의 느낌은 흉내 내려 치장하고 세트화 시켜도, 결국 가짜의 연기에 불과하다는 철학에서다.
“남·북한 접경지역에 30년을 산 사람의 연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분들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농촌 사람은 직업연기자이고 실감난 연기를 펼치지만, 막상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면 영화에서 봤던 그 가공된 매력의 소유자가 아니거든요.
아무리 그럴듯한 농촌영화가 나와도 우리는 평범한 사람의 매력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소비하게 될 것이고, 결국 공감이나 힐링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기 충전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죠.”
이들이 만드는 영화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것이 모두가 주인공이요, 모두의 영화인 이유이다. 원하는 모두가 연기하고, 모든 사람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영화가 안 된다면, 추상의 영화, 상품의 영화가 될 뿐이라 것이 신 감독의 생각이다.
“영화를 잘 만들겠다고 하면 동네 사람 약 2,000명 중에서 2~3명이면 충분해요. 그런데 우리는 왜 계속 많은 사람을 다 넣으려고 하느냐. 잘 만들겠다는 목적도 포기할 수 없지만, ‘모두의 영화’이길 원하기 때문이에요. 잘 걷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을 또다시 영화촬영장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작디 작은 마을영화는 사람, 저마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지문을 남기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연기하는 과정도 좋아야 하고, 영화도 재밌어야 한다.
“‘나’라는 존재가 작품 속에 있다는 그 경험은 되게 중요한 거예요. 대사를 외워 연기하지 않아도 말 못하는 사람은 말 못하는 개성으로, 잘 웃는 사람은 그 맑은 웃음으로 기록되는 거니까, 이게 한국적 드라마로서 의미가 크다고 믿죠.”

 

왜 우리가 마을영화를 남겨야 하는가
20년 가까운 세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독립영화 감독으로 한 길을 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럼에도 확고한 신념을 지닌 신 감독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우리한테는 이게 좋아요. 작가적 태도로서 고민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요즘은 풍족하지 않다고 해서 손가락질하지 않아요.
앞으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있거든요.이제는 다른 걸 가져야 해요. 자기만의 드라마, 자기만의 콘텐츠,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
신 감독과 이은경 PD는 올해 좀 더 특별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해왔던 작업, 바로 그 기록들을 다큐와 결합해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 현재 작품을 편집 중이다.영화 개봉 이후에도 갈 길은 멀다. 이들의 시선은 소외된 더 넓은 공간의 사람들을 향해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영화에 제3의 장르를 만들고자 하는 게 멀지 않은 계획이다.
“가난한 나라 민초들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20년 가까이해온 작업이니 극영화에 대해서는 그만큼 노하우가 있거든요. 전 지구에 250개 나라가 있지만, 이 중 영화를 못 만드는 나라가 반이 넘습니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의 경우 영화는 커녕 다큐멘터리도 못 만들어내는 나라가 정말 많아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면서 자기들끼리 즐기는 영화문화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꼭 필요하죠.”
영화에는 그 나라만의 문화가 나타나야 하는데 모두 똑같아져버려 안타깝다는 신 감독은, 사람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소비하는 단계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삶을 원시축제처럼 즐길 수 있도록 방법론을 공유하고 싶단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영화 생산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제3세계청소년, 이주여성 자녀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 아이들이 다시 엄마 나라에 가서 그 지역 마을영화를 만들어 축제를 여는 거죠.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창작에 어떤 영토를 발견했고, 너무 많은 걸 누리고 있거든요. 이제 그걸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차가운 겨울에 시작한 서하면에서의 촬영이 벌써 막바지다. 담장 밑 볕 잘 드는 곳에는 어느새 봄을 알리는 초록빛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늘밭이 초록으로 덮일 즈음엔 서하면 마을영화제가 열릴 것이다. 수많은 주인공이 참석하는 축제의 장. 영화 속 자신들의 모습에 신나 할 주연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봄과 같은 생기가 느껴진다. 이 가족의 작업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지길, 그래서 더 많은 주연이 탄생하길 소망해 본다.

 

 

권성희 기자 song@mcred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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