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아니한가
신용경제 2018-03-05 14:17:50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이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각자의 인생에 서로가 주인공이듯 그들 역시 개인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것뿐.
소외계층이라 불리며 남다른 시선과 차별을 받아야만 했지만, 이젠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우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유행가가 귓가를 맴돈다.
“쇼! 끝은 없는 거야 지금 순간만 있는 거야. 난 주인공인 거야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쇼! 룰은 없는 거야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난 할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Merry Everybody”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연극, 공감을 확장하는 영화제, 편견을 없애는 콘서트, 변화를 추구하는 문화예술 교육을 행하는 명랑캠페인. 명랑캠페인의 지지가 있었기에 소외계층은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
“영화 <말아톤>을 기획하던 때만 해도 발달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면서 무지했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됐고 그들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죠. 더 놀라운 점은 당시 영화가 약 4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다른 사람들 또한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겼다는 거예요.”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사회로부터 발달 장애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 영화 <말아톤>을 계기로 문화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명랑캠페인 오호진 대표. 그녀는 오랜 시간 영화와 공연 기획자로 활동해온 지난날을 내려놓고 2013년 8월, 새로운 시작을 감행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행위로만 끝나지 않고 이로 인해 관객들의 인식과 태도가 변화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생겼어요, 마침 영화 기획 일은 질리도록 했다는 생각도 들었을 때였죠. 직장을 뛰쳐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수 ‘션’씨와의 프로젝트였어요.”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만원의 기적 콘서트가 그의 첫걸음이었다. 유명인과의 협업 덕분인지 홍보부터 공연까지 전과정에서 관객들의 기대와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에 더해 어린이 재활병원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 전달까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처음 맡은 일이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일과 연결되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자신도 있었어요. 거기다 참여자들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콘서트 후인 2015년 1월에 곧바로 법인을 설립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명랑캠페인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서울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이들도, 또 그걸 즐기는 관람자들도 모두 명랑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름 지어진 명랑캠페인은 여러 프로젝트 중 특히,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극 ‘미모되니깐’을 통해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회사 설립 후 제일 처음 진행된 캠페인 ‘미모되니깐’은 미혼모 당사자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얘기하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연극이었어요. 진정성이 전해졌는지 첫 회부터 관객 반응이 좋았죠. 관객 수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그보다도 공연을 통한 인식 변화가 중요했는데 연극 후 설문조사를 해보니 관람객 대부분이 미혼모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법적인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성원에 힘입어 ‘미모되니깐’은 법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6년 입법연극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동시에 연극 외에도 미혼모 단체와 함께 국회의원을 찾아가며 법안 개정활동을 시작했다. 긴 노력 끝에 2017년 12월 29일,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쾌거를 이뤘다.

 

 

“먼저, 5월 10일을 한부모의 날로 지정하게 됐어요. 그리고 지자체별로 한부모를 지원하는 부서가 생겼고 한부모 가족 상담전화가 설치됐죠. 또 이혼 또는 미혼의 임산부도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어요. 한부모가족지원법 내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이렇게 4가지 정도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법안을 더 발의했어요. 양육비이행법인데 현재 부처 통과까진 됐는데 아직 최종 발표가 나지 않은 상황이죠. 올해 안에는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하고 있어요.”
대한민국 최초로 입법 활동을 한 공연단체가 된 명랑캠페인은 지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기점으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지속 중이다.

 

 

나비, 날다
“작년엔 50대 독거남들을 위한 ‘나비男영화제’를 진행했습니다. 나비男 영화제의 나비(非)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지녔죠.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높은데 그중 특히 50대의 비중이 가장 커요. 그래서 저희가 생활이 어려우신 50대 독거남 분들을 찾아뵙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만드는 교육을 진행했죠. 그리고 그 영상을 토대로 영화제를 열었어요.”
처음 영화제 참가신청을 받기 위해 홈페이지에 모집 글을 올렸지만, 고작 두세 명만이 지원했다고. 이에 함께 영화제를 준비하던 양천구의 도움을 받아 먼저 양천구 내 독거남들과 모임을 갖고 운동회를 열었다.
“인터넷을 통한 모집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독거남 분들과 같이 몸으로 뛰는 운동회를 진행하면서 친근감을 쌓았죠. 그 후 영화제에 대해 설명한 뒤 직접 참가신청을 받았어요.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영화제 당일 지역 곳곳에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와 관람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뿌듯했습니다.”
많은 이의 격려 덕분일까. 직접 촬영한 영상을 통해 본인의 생활을 공개하며 약 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독거남들은 영화를 찍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면서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됐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공공근로와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자립하게 되었고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에 앞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당사자분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내 얘기를 함으로써 전하는 이도, 보는 이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외칠 수 있도록 미혼모, 독거남을 비롯해 저소득층 아동들, 필리핀 성매매 여성들, 그리고 환경미화원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는 오호진 대표. 하지만 이처럼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많다고.
“사실 제가 약속에 바람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미리 만남을 정하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는데 그때부터 연락이 안 되는 거죠. 그럼 저는 늦게나마 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거예요. 혹시 오는 길에 무슨 사고가 났나? 핸드폰을 잃어버렸나? 온갖 상상을 다 하죠.”
듣는 사람도 힘 빠지고 기막힌 상황이지만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힘든 건 잠깐이고 오래 기억하지도 않아요. 당사자들의 변화를 눈으로 볼 때면 안 좋은 기억들은 씻은 듯이 사라지죠. 몇 년간 바깥출입을 안 하셨던 분들이 매일매일 밖에나가게 되고 편견 속에 움츠러들어 소심했던 성격이 변화하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이런 변화들은 제가 이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어주죠.”

 

 

즐거움엔 끝이 없다
마지막으로 명랑캠페인이 사회변화 캠페인 제작사가 되길 바란다는 오호진 대표. 사람들이 명랑캠페인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고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일단 칼을 뽑았으니 양육비이행법 또한 올해 안에 꼭 통과될 수 있도록 계속 활동할 겁니다. 또 올해부턴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다가가기 위해 현재 희망지로 선정된 홍제 1동 주민들과 커뮤니티를 꾸려 마을의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중이죠. 주민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 그들이 진짜 바라는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지금처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지할 것이며 이와 동시에 주변의 사회 구성원들 역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그녀의 얼굴엔 명랑함이 가득하다 .
“명랑캠페인의 롤모델은 ‘태양의 서커스’예요. 사양 산업인 서커스를 전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해낼 수 있었는지 정말 대단하죠. 저희도 열심히 하다 보면 소외계층 당사자가 출연하는 연극이나 영화가 대중적으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캠페인에 출연하시는 분들께 출연료를 지급해 드리거든요. 그래서 이분들이 계속 저희와 함께 활동하시면서 더 자립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움 속에서 새롭고 따뜻한 문화 콘텐츠로 문화계에도, 사람들 마음속에도 자리 잡길 소망하는 오 대표. 캠페인을 꾸려나가고 참여하는 이들이 이름 그대로 즐겁게 임하니 어찌 이를 관람하는 이들도 즐겁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니 앞으로도 명랑하고 또 명랑하리라.

 

진유정 기자 jin_yj@mcred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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