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신인팩, 환경과 위상 서명현 대표가 꿈꾸는 인쇄의 미래 인쇄 그 이상의 가치를 생각하는 태신인팩
김재호 2015-05-05 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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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인쇄사를 번듯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사례는 2세 3세 경영이 상당수인 인쇄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 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쇄업을 인쇄 그 자체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것에 있다.
태신인팩 역시 인쇄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주인공 중 하나다.
환경과 위상으로 대변되는 태신인팩 서명현 대표의 가치관은
인쇄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조금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었다.
취재 | 임성윤 기자(Printingtrend@gmail.com

 

태신인팩, 46년의 경험과 노하우

태신인팩의 역사는 1968년부터 시작된다.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에 설립된 유덕산업이 현재 태신인팩의 모체다. 서명현 대표의 부친인 고 서장배 옹(翁)이 설립한 당시 유덕산업은 패키지 인쇄라는 개념조차 없던 국내시장에 라벨인쇄기 하나로 한 획을 그었다.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포장재를 생산했고 용기레이블을 제작하는 등 선진 기술을 선보였다. 1960~70년대의 국내 인쇄시장은 제품을 포장할 박스의 생산량이 부족해 대다수를 수입에 의존해야 했고 이 조차 여의치 않으면 미군부대를 통한 밀매, 혹은 일본으로부터의 밀수로 수요를 충당해야했다. 박스조차 충분히 만들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라벨을 제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유덕산업은 이러한 틈새를 공략해 굳건한 입지를 다져나갔다.


하지만 유덕산업의 위기는 한순간에 닥쳐왔다. 서명현 대표의 부친이 1974년 갑자기 별세했기 때문. 당시 서 대표의 나이는 겨우 15살이었다.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을 패키지 인쇄와 함께 성장한 서명현 대표였지만 중학교 2학년의 까까머리 소년이 하나의 기업체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전도유망한 인쇄소를 매각하거나 공중 분해시켜야 할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 국내 사업체들은 가족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일가족이 장사에 매달리면서 다양한 사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유덕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서명현 대표의 외삼촌들이 사업체를 꾸려 나가면서 명맥을 유지했고 이는 서명현 대표가 정식으로 입사할 때까지 지속됐다.


서명현 대표는 1984년 입사 이후 대표이사에 취임하기 전까지 해외 선진 인쇄기술을 국내에 적용시키려 노력했고, 인쇄 환경을 바꾸기 위한 아이디어를 꾸준하게 관철시켰다. 1.5kw 독일제 톰슨기기의 국내 최초 도입이나 최근에는 흔한 밴딩기를 국내 최초로 구비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연탄난방에 의존하던 인쇄 현장을 냉온풍기로 변경해 인쇄 제작환경의 개선을 꾀했고 공장 내에 습기 시스템을 갖춘 것도 국내에서는 초창기의 일이다. 이 같은 서명현 대표의 행보는 모두 태신인팩의 품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도이자 노력이었다. 국내 최대화장품 전문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수십년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태신인팩 및 서명현 대표의 남모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 엄연히 다른 문제


태신인팩은 지난 2012년 국내 언론들의 집중조명을 받은 일이 있다.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일감몰아주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태신인팩까지 여파에 휘말린 것.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과 태신인팩 서명현 대표가 친족관계라는 점이 알려졌고 2000년대 태신인팩의 매출 대부분이 아모레퍼시픽 계열사의 수주를 통해 이뤄진 사실이 공개됐다. 일부 시민단체나 언론사들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라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결론 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문제 없음’ 처분을 받은 사안이었으나 서명현 대표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과 제가 친족관계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일감 몰아주기와는 거리가 멀어요. 1968년부터 지속된 패키지 인쇄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태신인팩만의 기술력 때문에 아모레퍼시픽이 우리에게 주문을 하는 것이지 단순히 일감을 주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서명현 대표는 애써 돌려 말하거나 억지로 미화 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당당함을 유지했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이렇다. 서명현 대표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5촌 당숙뻘이다. 하지만 태평양 서성환 창업주와 서명현 대표의 부친은 엄연히 다른 사업체를 운영했다. 물론 사업 초반인 1960년대에는 가족이 함께 사업을 일궈나가는 일이 많았고 마땅한 인재나 업체가 없어 (구)태평양의 인쇄 업무를 유덕산업이 도맡아 처리하기도 했다. 이는 태평양의 규모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했을 당시이며 유덕산업 대표였던 서명현 대표 부친이 별세하자 유명무실 해졌다.
당시 유덕산업은 포장용기와 제련 등 패키징 종합사업에 진출해 있었으나 사장이라는 중심축을 잃자 각각의 사업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부분 매각 되거나 공중분해 됐고 겨우 남은 것이 서명현 대표의 외삼촌들이 관리하기로 한 인쇄소 단 한 개였다. 1975년 태신인쇄공업㈜로 상호를 변경한 것도 이러한 연유다. 이후 태신인쇄공업은 기존의 노하우와 더불어 꾸준한 기술개발과 철저한 품질관리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이는 서명현 대표가 태신인쇄에 정식으로 취업하게 되는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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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것은 서명현 대표가 태신인팩에 정식 사장으로 취임 한 이후다. 서명현 대표와 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이 친족이라는 특수 관계였기 때문. 하지만 태신인쇄공업은 자체적인 패키징 인쇄능력만으로도 아모레퍼시픽과 신뢰관계를 유지해 온 당사자다. 더구나 서명현 회장이 태신인팩을 인수한 2010년 당시 아모레퍼시픽 경영진과 8촌 이내의 친족이라는 이유로 자산 평가액에 27.5%를 기꺼이 가산세로 납부했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대비해 자산평가 기관에도 두 번이나 의뢰를 할 정도로 철저하게 태신인팩을 경영해 왔다.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도 “태신인팩은 (우리가) 요구하는 친환경, 향이 나는 인쇄가 가능하며 특히 금박 인쇄까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업체”라고 치켜세웠다. 또한 “요구사항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업체이기에 거래비중을 변화시킬 이유는 없다.”는 굳건함을 보였다. 실제 일감몰아주기 의도가 있었다면 할 수 없는 대응이다. 서명현 대표 역시 “수십년간 이어 온 기업간의 신뢰관계를 외면한 채 서류상 내역만을 보고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라는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리한 면이 있다.”며 “세계적인 화장품 업체의 포장재를 지속적으로 제작해 왔다는 것은 태신인팩의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표이사가 대기업 일가와 친족관계라는 이유 때문에 이 같은 경쟁력이 퇴색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즉, 태신인팩이 포장재 인쇄 기술력 면에서 확고한 경쟁력이 있었기에 협력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 뿐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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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태신인팩의 저력

 

서명현 대표의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신인팩이 걸어 온 길은 실제 문제시 되고 있는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행태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서 대표는 “당시 문제시 된 대기업들의 행태는 친인척들의 밥그릇을 챙겨주기 위해 혹은 일가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체를 급조했지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업체들이었기에 일감을 몰아주게 됐어요. 그 결과 중소기업들은 공정한 경쟁의 기회조차 박탈당했고 유통질서마저 무너져 버렸습니다. 자본을 이용한 대기업 오너일가의 배불리기에 국민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태신인팩은 다릅니다. 48년의 역사를 가진 태신인팩은 수 십년 동안 원가절감, 신기술 개발, 인쇄환경 개선, 친환경 잉크개발 등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해 왔어요. 지금의 위치는 이같은 노력의 반영이라 봅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의 행태와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속내며 이들과 비교 당한다는 것 자체에 불만스럽다는 반응이었다.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유감을 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태신인팩은 사회적 도마에 올랐을 당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 아니다.’라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필요 이상의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 봤고, 사실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더욱 커질 경우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퇴색 돼 본연의 업무에 차질이 빗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부담도 있었다. 오히려 그 같은 노력을 생산적인 면에 쏟아 붓는 것이 옳다는 판단으로 묵묵히 그 지탄의 시간을 버텼다. 외부적인 논란이 있어도 태신인팩은 포장재를 제작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인쇄를 넘어서는 가치 ‘환경’

태신인팩이 기술력 확보를 위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인쇄산업을 넘어선다. 단순히 인쇄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만 집중했다면 현재의 태신인팩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행보, 한 차원 더 앞선 시각이 있었기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중 서명현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분야는 환경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보호하며 보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며 태신인팩의 장기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키워드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인쇄가 선진국형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서명현 대표는 1990년, 선진 인쇄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으로 교육을 떠난바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 등지를 돌며 현지의 포장재 기술을 직접 확인했고 교육 커리큘럼에 참가해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했다. 여기서 확인 한 것이 환경적 측면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시장에서는 유기용제가 일반적으로 사용됐고 포장재에 적용되던 그라비아 인쇄에는 톨루엔, 메틸에틸케톤, 에틸아세테이드 등의 희석제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서명현 대표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립튼(Lipton)사의 제품에는 파라핀 코팅지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왜 한국에서 판매되는 립튼 제품은 그라비아인쇄로 포장하면서 유럽 현지의 제품은 파라핀 코팅지로 포장을 할까?” 이 것이 환경에 대해 눈을 뜨게 된 첫걸음이 됐다. 벤젠, 신나 등이 사용되는 그라비아 인쇄 포장재가 인체에 유해 할 것이라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대체품이 없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국내 시장의 상식이었다.

 

기름에 튀기는일반 과자류의 경우 그라비아 인쇄 제품을 포장지로 사용할 경우 제조기간이 오래 될수록 기름 쩐내가 배게 되지만 이 조차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서명현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한국으로 복귀하자마자 플렉소 인쇄를 활용한 파라핀 코팅 포장재를 선보였다. 변화에 대해 소극적인 업체들이 많았지만 건강을 내세운 ‘설록차’ 쪽에서 서 대표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설록차 개별포장지에 파라핀 코팅을 적용, 히트상품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 외에도 태신인팩은 대두유를 이용한 소이빈 잉크의 자체개발, 수성잉크를 사용하는 플렉소 인쇄, 수성코팅 도입, 태양광 발전시스템 적용, 생분해성 원료의 사용 등 현재까지 친환경 인쇄를 위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불합리한 선택일 수 있다. 아직까지 유기용제를 이용한 포장재들의 가격 경쟁력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며 태신인팩 역시 유기용재 포장재들을 환경 기준치에 적합하도록 만들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신인팩은 무리한 면이 있더라도 친환경 인쇄 환경을 만들어 가려 한다. 이것이 향후에 다가올 선진사회에는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판단이며 내일을 위한 진정한 투자라 여기기 때문이다.

 

인쇄업을 낮춰보는 문화 바꿔야

또 하나 서명현 대표가 원하는 것은 인쇄업 자체에 대한 위상제고다. 인쇄업은 우리나라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인쇄업 종사자들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영세업의 대표적인 분야로 인식 됐고 방송매체에서도 경기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소규모 인쇄소들을 찾아 내년 달력이 얼마나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잣대로 들이밀기도 했다. 인쇄업자들도 큰소리칠 입장은 되지 않았다.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서 작업을 진행하려면 복장조차 갖추기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 특히 여름에는 지저분한 인쇄소에서 속옷 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인쇄물을 확인하는 기장들도 적지 않았다. 인쇄소가 상대하는 분야는 언론, 패션, 출판 등 지식층이 대다수였기에 상대적으로 위상이 떨어지거나 무시를 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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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현 대표는 이러한 국내 인쇄시장의 인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인쇄업 종사자라면 기술력을 인정해주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불만이었다. 업무에 있어서도 의뢰업체와 인쇄업체가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품질과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쇄업계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태신인팩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1990년대 연탄과 선풍기에 의존하던 냉난방을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전기를 사용하는 냉온풍기 시스템으로 변환시켰다.
이를 통해 겨울철에는 일산화탄소 문제를 해결했고 여름철에는 제품의 끈적임을 방지해 품질의 안정을 도모했다. 직원들의 복장에도 신경을 썼다. 냉방시스템이 가동 됐기에 반바지 차림과 슬리퍼 착용을 금지할 수 있었고 회사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지급했다. 안전성을 올라간 것은 물론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고취됐다. 작업환경 깔끔해졌기에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 시킬 수 있었다.

 

인쇄소라는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고자 스튜디오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지난해 준공된 화성 신공장의 정식 명칭은 ‘태신인팩 화성 스튜디오’다. 가산동에 위치한 본사 역시 ‘서울 스튜디오’로 명명하고 있다. 이는 프린팅(Printig)과 프레스(Press)의 개념을 융합해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장소라는 의미이며 인쇄의 패러다임을 확장시키고자하는 의도다. 향후 인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창조경제의 선봉장이 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할 수 있다.

 

적자생존은 옛말, 꼴찌가 산다

서명현 대표는 불황이라는 인쇄업에 대해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쇄업이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쇄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하지만 살아보려는 노력과 치열한 경쟁은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너무 추상적이고 광범위할 수는 있지만 서명현 대표는 “가능성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라며 도전을 강조했다. 실패의 부담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대 생활이 적자생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생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며 “강자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강자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결국 생존하는 것은 꼴찌들이다. 결국에는 꼴지가 이긴다고 봐야 한다. 실패에 대한 부담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태신인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제까지의 태신인팩은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굳건한 거래처가 있었기에 치명적인 외부효과에도 흔들림 없이 사세를 유지해 왔다. 물론 이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태신인팩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하고 있다. 해외 시장공략, 신소재 및 신기술 개발, 스마트형 공장 도입 등 미래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B2B에서 B2C로의 확장도 고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 환경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
서명현 대표는 “가혹한 현실이라도 모험은 언제나 필요하다. 이를 대비해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도전을 실천해온 태신인팩이 준비하는 다음의 도전은 무엇이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출처 월간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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