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골프’는 골프 산업에 얼마큼 이바지했는가.
한은혜 2018-01-03 18:06:27

골프를 즐기지 않는 이들은 분명 스포츠나 게임, 혹 다른 무언가에서 내기를 해 본적이 있을 것 이다. 골퍼들도 마찬가지다 내기 없는 골프는 ‘속 빈 강정’과 같이 배는 불러도 영 맛이 없다. 주 말 골퍼들이 돈을 잃더라도 꼭 내기를 하며 골프를 즐기는 이유다. 특히, 유독 한국 골프 문화에 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내기’인데, 이는 투전이나, 화투와 같이 놀이의 변형인 ‘노름’ 혹 내기를 즐 기는 한국민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특유의 내기 문화는 골프의 대중화와 산업에도 기여한 측면이 있다. 또한 ‘도박’이나 ‘노름’이 아닌 내기는 스포츠를 넘어 삶 을 즐기는 하나의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선의의 경쟁과 소소한 혹은 소소하지 않은 내기, 특히 골프에서의 ‘내기’가 짜릿한 것은 한 홀 한 홀을 홀컵에 들어가는 ‘쨍그랑’소리마냥 승리의 기쁨 과 그에 따라 따라오는 전리품을 쟁취하는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editor 방제일

 

 

모든 게임에는 룰이 있다. 그리고 그 룰의 변형으로 ‘내기’가 따라다닌다. 내기는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게임 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참가자들에게 경쟁심을 유발시켜 경기 내용을 흥미 진진하게 만들고 승부욕을 불어넣는 다. 내기의 규모의 크기가 보다는 ‘내 기’자체가 긴장감을 유발한다. 따라 서 내기에 걸린 판돈의 많고 적음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기는 게임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내기의 목표가 내기에 걸린 돈이나 상품이 아니라 순수한 게임에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기에서 승 리가 목적이 아닌 돈이나 상품이 목 적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내기가 아 닌 도박의 단계다. 그래서 내기는 감 칠맛을 내는 조미료로만 이용되어야 한다.

 

내기에 승부가 걸리면서보다 즐거운 게임이 되지만, ‘돈’이 목적이 되면 ‘내 기’가 아닌 도박이 된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골퍼들은 내기 골프를 즐긴다. 푼돈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 람들까지 내기골프에 열광하는 걸 보 면 내기는 분명 골프에 맛을 더해주 는 양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골 프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아 마도 남과 경쟁하는 가운데 희로애 락을 느낀다는 점에서 둘을 닮은꼴 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골프는 자기와 의 싸움’이라는 격언의 속뜻은 알겠 지만,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아래 홀로 카트를 끌고 가는 모습은 어딘 가 처량하지 않은가.

 

그래서 4인 1조로 완생을 이뤄즐기는 내기는 영원히 미생일 수밖에 없는 골퍼들의 삶을 보다 즐겁게 만 들어준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골프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내기’ 골프는 어딘가 나쁘게 들리지 만, 사실 골프의 기원과 역사 자체도 ‘내기’와 함께 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 기원론 중 가장 지지를 받는 스코틀랜드 기원설에 따르면 골 프는 심심했던 목동들이 삼삼오오 쌈짓돈을 모아서 골프를 치고, 승리 한 이가 그 쌈짓돈을 챙기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이는 골프 클럽의 사 교 모임으로 발전했고, 여기서 각 클 럽들이 자신들이 실력을 증명하기 위 해 프로 선수를 고용하고 클럽이나 국가의 명예를 걸고 대전을 펼친 것 이 발전해 오늘 날의 투어 형태의 대회가 된 것이다. 투어도 어떻게 보면 ‘내기’의 보다 큰 확장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내기’가 그 순수성을 잃고 목적이 변질되면서부 터 ‘내기’는 더 이상 유희의 연장이 아 닌 도박판이 되기도 한다.

 

 

내기 골프 잘 끝마치는 법

 

내기 골프를 잘 치러면 결코 ‘돈’에 연 연해서는 안 된다. 이는 결코 돈을 고 의로 잃어주거나, 승부에 최선을 다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집착을 버 리라는 뜻이다. 아무리 부담 없는 내 기 골프라도 자꾸 지면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분노나 의심으로 내기 골프에 임하면 ‘돈’이나 ‘자존심’보다 더 큰 신뢰와 함께 라운드할 수 있는 친구들을 잃게 된다. 함께 라운드하 던 골퍼들이 점차 자신의 연락을 받 지 않고, 필드에 나가지 않는다면 분 명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화를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 나아가 당연한 말이겠 지만, 내기 골프를 할 때도 골프의 룰 을 철저하게 서로 지키면 보다 공정하 고 즐거운 게임이 될 수 있다. 만약 내기 골프에서 골프 룰을 제대로 숙 지하지 않고 임했다가는 서로 어색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공이 해저드 에 빠졌을 때 평소처럼 적당히 치기 좋은 곳에 드롭하다가 동반자가 “공 이 물에 빠진 지점에서 홀에 가깝지 않게 두 클럽 이내에서 드롭해야 한 다”고 정색하고 어필하면 어떻게 하 겠는가. 그렇잖아도 공이 물에 빠져 열 받아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어 필을 받으면 심리상태가 엉망이 돼 미스 샷을 할 수밖에 없다.

 

슬라이스나 훅이 생겨 나무 밑으로 들어간 공을 툭 쳐서 옆으로 옮겨놓 는 매너 없는 동반자에겐 그냥 “그러 면 안 되는데…”라고 하면 된다. 말을 더 이을 필요도 없다. 당사자는 도둑 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며 다음 샷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두들 내기 골프를 할 때에는 무엇보다 철저하게 골프의 룰을 준수 하는 신사의 품격을 갖춰야 한다.

 

내기 골프의 방식과 묘미

 

'라스베이거스'는 일정 금액의 판돈을 홀별로 배분해놓고 홀마다 이긴 사람 이 빼내가는 '스킨스게임' 방식의 일 종이다. '스킨스게임'은 홀마다 가장 낮은 타수를 친 사람이 상금을 가지 는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2명이 팀을 이뤄 타수를 합쳐 이긴 쪽이 상금을 차지한다. 그런데 전홀 타수 1위와 4 위가 한 팀이 되고 2위와 3위가 또 다 른 팀이 되기 때문에 홀마다 팀 파트 너가 바뀌기 일쑤다. 예컨대 총상금 이 36만원이라면 홀마다 승리팀이 2 만원씩 가져가 1인당 1만원을 챙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킨스게임'이기 때문에 양 팀이 비기면 그 홀에 걸린 상금은 다음 홀로 이월된다. 정하기 나름이지 만 이렇게 비기는 홀이 이어지다 보면 누적 상금이 꽤 많아진다. 이로 인해 실력이 좀 떨어지는 골퍼도 우연히 1 개 홀에서만 좋은 샷이 나오면 제법 짭잘한 수입을 올릴 수 있고 파트너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작용해 주말 골퍼들이 애용하는 내기 방식이다. 특히 동반자들끼리 홀 마다 팀원을 바꿔가며 호흡을 맞추다 보면 교분을 쌓는데도 유리해 접대 골 프나 사교 골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수 백만원을 갹출해 홀마다 십 수만원씩 가져가는 대형 '스킨스게 임'도 있고 더 질이 나쁜 것은 접대를 받는 쪽에 돈을 몰아주거나 아예 갹 출에서 제외해주는 등 ''뇌물성 내기' 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또 동반자들 이 일부러 계속 비기는 홀을 이어가면 서 상금을 마지막홀로 이월해놓고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조폭 스킨스'방식 도 종종 동원된다. 이와 함께 내기 골 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는 타수차 에 따라 미리 정해진 금액을 주고 받 는 '스트로크' 방식이다.

 

타당 1천원에서 1만원 정도가 일반적 인 금액이지만 종종 타당 10만원에 서 수 천만원에 이르는 거액의 내기 골프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일도 있 다. 수도권에 골프장을 소유한 중견 건설업체 오너도 수천만원 짜리 내기 골프를 일삼다 영어의 몸이 된 일이 있다. 실력이 뛰어난 골퍼가 '하수'를 꼬드겨 판돈을 키운 뒤 수천만원에 서 수억원을 가로채는 이른바 '사기 골프'도 이 방식의 내기로 이뤄진다. 자신과 비슷한 실력인줄 알고 타당 1 만원짜리 내기 골프를 치다 일부러 잃어주는 상대들에게 넘어가 1개월 만에 8억원을 잃은 중소기업 사장의 사연도 골퍼들 사이에 회자된 일이었 다. '스트로크' 방식은 동반자들의 실 력이 엇비슷하지 않으면 분란의 소지 가 있어 접대나 사교 골프에서는 일 정한 금액을 갹출한 뒤 홀마다 승자 가 일정 금액을 빼내가는 '스킨스게 임'이 선호된다. 이 밖에 내기 골프는 1명이 3명을 상대로 게임을 펼치는 후세인이나 미리 자신의 예상 타수 를 선언한 뒤 모자라거나 넘치게 치 면 벌금을 내는 어니스트존 등 다양하다. 한편 프로 선수들은 내기가 원 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연습 라운 드 때는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내 기를 하기도 한다. 선수들끼리 하는 내기는 그러나 일반 골퍼들에 비해 판돈이 아주 적다. 고작해야 타당 1 천원에서 5천원 사이. 그렇지만 대회 에 나가서 상금 수입을 올릴 수 없는 하위랭커나 레슨 프로 등은 종종 아 마추어 고수들과 제법 큰 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쳐 수입을 올리기도 하 는데 이는 아마추어들이 지불하는 ' 현장 레슨비' 정도로 받아들인다. 세 계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과 골프인구 를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내기 골프 는 낯설지 않지만 타당 1달러를 넘어 가는 내기를 하는 골퍼는 거의 없다.

 

내기와 도박의 차이, 그리고 내기 골프가 도박이 될 때

 

내기 골프 사건에서 대법원은 "골프 는 당사자의 기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기의 일종이지만 경기자의 기 량이 일정한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 여도 매 홀 내지 매 경기의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골프가 진행되는 경기장은 자연상 태에 가까워서 선수가 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나 거리가 달 라짐에 따라 공이 멈춘 자리의 상황이 상당히 달라지기 쉽고 이는 경기 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단히 우수한 선수라고 하더 라도 자신이 치는 공의 방향이나 거 리를 자신이 원하는 최적의 조건으 로 또는 경기결과에 영향이 없을 정 도로 통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도박죄에서 필요한 우연성이 내 기 골프에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설 명이다. 이제까지 판례의 경향에 따 르면 도박이란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 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어떤 행위가 도박죄로 인정되려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먼저 도박의 대상으로 '재 물'이 있어야 한다. 또 당사자가 확실 히 예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정을 의미하는 우연성이 필요하다. 승패가 우연에 의해 갈려야 도박으로 볼 수 있으며 객관적으로 불확실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혼자서 내기를 할 수는 없으므로 도 박의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다만 도 박죄는 관련 법 조항에 명시돼 있듯 내기를 했더라도 일시적 오락으로 인 정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준도 구체적이지 않아 문제가 된 다. 판돈이 적거나 일회성인 경우 주 로 일시적 오락으로 인정되지만 일관 적인 기준을 설정하기는 힘들다. 따 라서 내기 골프를 칠 때에는 도박으 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임해야 한다.

 

바비 존스의 일화를 통해 본 ‘내기 골프’

 

흔히 당구에서 자신의 실력을 의미하 는 점수는 자신의 잃은 비용만큼을 만 원 단위로 환산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령 자신의 당구 점수가 150 점이면 지금까지 150만 원 가량의 ‘내 기 당구’에서 게임비를 냈다는 뜻이 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내기’ 에서 돈을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실력 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의 즐 거움을 위해서 자연스럽 게 ‘내기 골프’에 임하지만, 적은 액수라도 돈 을 잃는 것이 싫으면 고수한테 골 프교습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경기 에 임하면 된다. 돈이 아까워서 내 기에 참가하지 않으면 잃는 돈보다 더한 자존심, 그리고 함께 필드를 찾을 친구를 잃게 된다. 그리고 어 느 정도 내기 골프에서 절대로 잃 지 않는 ‘고수’가 된다면 그때부터 는 바비 존스의 일화를 마음에 새 겨놓고 골프에 임해야 한다.  바비 존스가 일본의 한 프로 골퍼와 우 연히 라운드를 하다 심심하다고 5 달러 짜리 내기를 했다. 그런데 바 비 존스가 지고 말았다. 바비 존스 는 아무 생각이 없이 5달러 지폐 를 그에게 건넸다. 이 일본 골퍼는 재빨리 그 돈에 바비 존스의 사인 을 받았다.

 

이 지폐는 결국 일본 골프협회 박 물관에 전시돼 일본의 무명 골퍼 가 미국의 골프영웅을 이겼다는 역사적 증거물이 된다. 무심코 한 내기골프에서 진 바비 존스가 건 네준 5달러짜리 지폐가 이런 역사 적인 증거물이 될 줄 바비 존스는 알고 있었을까. 이 일화와 같이 승 부에 ‘절대’란 말은 없다. 내기도 마 찬가지다. 무조건 이기고 따는 것 은 이미 ‘내기’가 아니다. 특히 골 프와 같이 의외성이 있는 스포츠 에서 실력이 뛰어난 이가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날씨와 운, 노력 정도에 따라 언제든 ‘내기’와 승부의 승자는 뒤바뀔 여지가 있 다. 특히, 한 홀 한 홀마다 새로운 위기와 기회가 함께 찾아오는 골 프를, 그리고 내기를 즐거운 마음 으로 즐기는 골퍼가 되어 보자.

 

 

<월간 골프가이드 2018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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