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미, 배상문, 류현우, 최진호, 김병준, 조민근, 나다예 등 국내외 특급 프로들 ‘맞춤 지도’한 숨은 실력자 아론 김 프로 Aaron Kim
한은혜 2018-01-04 18:21:56

아론 김(33). 그는 미국 동부 버지니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여러 스포츠에 재질이 있었던 그는 열 살 때 골프에 입문해 주니어 시절 전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프로로 전 향한 직후 아버지(김동회·62)가 대장암으로 투병하자 선수의 길을 접고 스윙코치로 나섰다. 세계적인 골프교 습가인 마이크 벤더(Mike Bender)의 수석코치로 10년간 함께 했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인 션 폴 리(Sean Foley)와 두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2010년 한국에 와 인천 영종도 SKY72골프장 ‘마이크 벤더 골 프아카데미’에서 헤드코치로 처음 스윙을 지도했다. 이후 수원C.C.와 파라다이스골프랜드, 용인JJ골프연습장 ‘AK골프아카데미’에서 마스터 인스트럭터로 9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이보미, 배상문, 류현우, 최진호,김병준, 조민근, 나다예 등 국내외에서 뛰고 있는 특급 프로들을 지도해 그들이 우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취재 김대진 편집국장 사진 조도현 기자 일부 아론 김 제공

 

 

선수 특성 살려 제각각 원하는 것을 채 워 줄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크 벤더와 필 리츤 등 세계적인 골프 코치들로부터 다 양한 골프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에 가능

 

아론 김은 “우승을 많이 시켰는데 저를 잘 모르더라. 아쉬웠다. 이민 왔으니 아는 분이 없다. 선수들만 알고 있다.”고 했다. 그의 표정엔 섭섭함이 역력하다. 하긴 그 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선수들을 지도 했다니 사실 기자도 놀랐다.

 

그는 “선수들마다 필요한 부분이 다르다. 선수와 상의해 본인한테 맞는 동작을 찾 아준다.”고 했다. 말 그대로 ‘맞춤 지도’다. 그는 “이보미는 감(感)이 아주 예민하다.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하게 파악 해  조언하고 지도한다.”고 했다. 그가 선 수마다 특성을 살려 제각각 원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골프 기술 적인 면을 섭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다는 게 그의 아버지 김동회(62) 씨의 주장이다. 아론 김은 ‘드로’의 대가인 마이 크 벤더와 ‘페이드’의 대가인 필 리츤(Phil Ritson)에게서 드로와 페이드 기술을 익 혔다. 필 리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게리 플레이어의 스승이며 최경주의 코치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이외에도 그 랜트 웨이트(Grant Osten Waite), 데이 비드 오르(David Orr), 밥 원터스 박사 (Dr. Robert Winters) 등 세계적인 코치 와 함께 하며 지도를 받았다. 그랜트 웨이 트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미국 PGA 투어 를 거쳐 현재 시니어 PGA 투어 선수로 뛰 고 있다. 현재 아론 김의 스승이며 트랙맨 (Track Man) 분석의 대가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오르는 PGA, 유러피언, LPGA 투어 선수 600명 이상을 가르친 미국 PGA 최고의 쇼트게임과 퍼팅 코치다. 윈 터스 박사는 세계적인 멘탈 코치로 알려 져 있다. 아론 김이 지도한 프로들은 이밖 에도 많다. 박은신, 조병민, 유송규, 이지 훈, 김지우, 강예린, 이선화2, 최승리, 천 상범, 김민규 등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동생인 저스틴 김도 물론 그가 가르쳤다. 저스틴 김은 KPGA 프로 자격증을 따 국 내 투어에서 뛰다 지금은 중국에서 선수 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엔 어려웠죠, 한달 수입이 1백만원 조금 넘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6개월을 살 고 동생이 국내 투어 카드를 땄어요. 그 무렵 박은신 프로를 가르쳤는데 그 때문 에 프로들이 많이 왔어요.” 그의 회고다.

 

 

벨몬트대학교 2학년 마치고 프로로 전 향, 그 이후 마이크 벤더 만나 지도 받고 잭 존슨 등 유명 선수들과 교류하면서 골프의 신세계 경험. 아버지 암에 걸려 코치로 나서 한국행

 

그는 벨몬트대학교(BELMONT UNIVERSITY)에 골프장학생으로 다니 던 중 프로로 전향했다.

 

“대개 대학 2,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합니 다. 프로로 나설지 아니면 그대로 졸업할 지를 결정하지요. 저는 2학년을 마치고 프로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아예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프로로 가는 추세이지만 당시는 대학에 진학하면 모든 것을 지원받았어요. 잘 치면 스폰서를 받 기도 더 쉬웠습니다.” 그의 얘기다.

 

그 이후 그는 마이크 벤더를 만나 지도를 받았다. 마이크는 잭 존슨 등을 지도하는 세계적인 코치였다.

 

“난 아직 멀었다. 더 해야 된다고 생각했 어요. 그래서 스윙을 더 정확하게 알아갔 던 거죠. 필링(Feeling: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테크니컬(Technical: 기술적인)한 정확성을 습득하게 된 겁니다.”

 

그는 이 무렵 골프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PGA 투어에서 뛰는 유명선수들과 어울 리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죠. 어머니 께서 역할을 많이 하셨죠.

 

어머니는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연습이나 라운드도 하자고 제의하셨어요. 그래서 그들과 친 해지면서 같이 밥도 먹고 연습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 샷을 할 때 어떻게 쳐?’ 등 궁금한 부분을 서로 물어볼 수 있었 죠.” 아론 김은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부 모님이 해줘서 골프를 잘 배울 수 있었다.” 고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 그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죠. 시합도 잘 안되고... 슬럼프에 빠졌어요.” 그때 마이 크가 그에게 티칭 프로 제의를 했다. 한국 에 있는 SKY72골프장 마이크 벤더 골프아카데미에서 일해 보라는 것이었다. “처 음엔 ‘안한다’고 했죠. 그러자 마이크가 ‘너를 도와주려고 한 건데, 너 그곳에서 가르치면서 연습하면 된다’고 설득했어 요. 그땐 시합에 나가면 돈이 들었죠. 아 빠는 돈을 못벌고... 동생은 고등학생이라 대학 진학도 해야 하는 데. 그래서 결국 승낙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그는 코치의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1년간 코치로 일했다. 1년 뒤 아카데미가 문을 닫자 그는 수원C.C.로 옮겼다.

 

 

선수들 고민 듣고 함께 해결, 모르는 것 있으면 배워가면서 가르쳐. 감(感)과 기 술적 지도방식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

 

“저는 선수들한테 늘 얘기하죠. ‘솔직하게 말하라. 그러면 문제점을 더 빨리 찾아내 해결할 수 있다.’고요.”

 

그의 아버지가 곁에서 거들었다. “코치도 선생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요.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모른다는것 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모르는 것이 있으 면 배워서 가르치면 된다’고 저는 늘 (아들 한테)얘기합니다.”

 

아론 김도 맞장구를 쳤다. “저를 가르친 선생님도 아직 배우는데 저는 당연히 배 워야죠. 선생님께서 ‘내 나이 때보다 너가 훨씬 더 많은 알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 죠. 어떻든 코치는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가 성적이 좋아야 계속 일할 수 있잖아 요.” 그는 “선수들이 감(感)이 없어질 때가 많다. 스윙을 몸에 익혔으니까. 그때가 위 험하다. 안 좋을 수가 있다. 그때 여러 도 구를 쓴다. 그러면 스윙을 더 빨리 고칠 수 있다. 그게 미국식 코치법이고 ‘과학적’ 으로 지도하는 방식이다. 물론 감(感)과 과학적 지도방식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 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초보자들은 일 단 연습량이 많아야 한다. 또 주니어 선수 들은 맨날 새로운 느낌이다. 감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주니어 선수들은 기본기 다 중요하다. 기본이 잘 돼 있어야 한다. 안 좋은 게 몸에 박히면 힘들어진다. 셋업 이나 볼 포지션이 그래서 중요하다. “투어 프로들이 ‘어렸을 때 프로님한테 왔으면 (배웠으면) 잘 했을텐데’라고 얘기한다. 그 만큼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것이 다. 투어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보면 모두 편하게 친다. 스윙이 자연스러우니까 편 할 수 밖에 없다.”

 

골프에선  ‘타점, 구질, 탄도’가 가장 중 요, 이것만 일정하면 점수를 잘 낼 수 있 어. 이 세 가지를 일정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 해

 

아론 김은 골프에서 ‘타점, 구질, 탄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세 가지만 일정하면 점수를 잘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 세 가지를 일정하게 만 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타점은 우선 공이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 ‘임팩트’가 가장 중 요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스윙폼이 좋아 도 임팩트가 정확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 불이다. 스윙폼이 별로여도 임팩트가 좋으 면 공은 잘 나갈 수 있다. 그게 다 임팩트 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골프공은 거짓말 을 못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그는 정 확한 임팩트를 점검하기 위해 ‘트랙맨 (Track Man)’을 사용한다. “슬로모션을 보면서 스윙을 교정합니다. 헤드 페이스가 열리고 닫힌 것을 파악할 수 있죠.” 구 질은 드로든 페이드든 한 가지에 익숙하 도록 만든다. 그는 “한 쪽은 완전히 없앤 다.”고 표현했다. 그래야 페어웨이를 더 넓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비교 적 똑바로 치는 직선 구질을 가진 골퍼는 페어웨이 중앙을 보고 쳐야 한다. 그래야 공이 페어웨이에 떨어질 확률이 높다. 좌측이나 우측으로 공이 날아갈 확률이 거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사 용할 수 있는 페어웨이는 좌든 우든 절 반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드로나 페이드 구질을 확실하게 칠 수 있다면 페 어웨이 전체를 넓게 쓸 수 있다. 공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날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드로를 칠 것이냐, 혹은 페이드를 칠 것이냐는 자신의 구질에 따라 달라진 다. 일반적으로 페이드보다는 드로 구질 이 거리가 많이 나 유리하다. “‘드로’든 ‘페이드’든 확실하게 하나를 쳐라. 둘 다 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하나를 완 벽하게 치되 다른 것도 칠 수 있는 정도 가 돼야 한다. 한 구질로 가야 편하다.” 아론 김의 얘기다.

 

그의 아버지는 “(구질에 관한 한) 자신의 샷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고 했다. 탄도는 일단 높이 뜨야 한다. 그 는 “많이 뜨고 스핀이 없으면 공이 멀리 날아간다. 축구공도 마찬가지.”라고 했 다. 드로와 페이드 구질 중 스핀량이 같 을 때 드로가 거리가 더 많이 나가는 이 유도 바로 탄도 때문이라고 한다. 아론 김은 “드로 구질은 임팩트 때 헤드 페이 스가 열려 있어 공이 많이 뜨는 반면 페 이드 구질은 임팩트 때 헤드 페이스가 닫혀 있어 탄도가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 로 공이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드라이버 샷 최장타 대회 때도 출전 선 수들이 티를 높게 꽂는 이유는 탄도를 높여 공을 멀리 날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 이라는 설명이다.

 

아론 김은 어릴 때부터 여러 운동에 소 질 있어, 아버지가 싱글 핸디캡 골퍼여 서 자연스럽게 골프 접해 초등학교 4학 년 때 골프 시작. 주니어 대회에 여러 차 례 우승하고 대학에 장학금 받고 입학

 

아론 김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 었다. 특히 팀 스포츠를 좋아했다고 한 다. “미식축구도 좋아했는데 덩치가 안돼 못하고 하키도 좋아했지만 어머니께서 다 친다고 못하게 했죠. 태권도도 시작했지 만 미래가 없다고 만류하셨죠. 그 외 수영 이나 다이빙, 테니스 등 안해 본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싱글 핸디캡 골퍼였 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접한 게 골프였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는 “동생 인 저스틴 김과 같이 배우게 됐다.”고 했 다. 아버지 김동회 씨는 “미친듯이 했지 요. 2, 3개월이 지나니까 동네 프로가 ‘재 능이 있어 보인다. 더 좋은 선생을 소개시 켜 줄테니 가보라’고 했다. PGA 2부 투어 (네이션와이드 투어, 지금의 웹닷컴)에서 뛰던 현역 선수를 소개해 줬다. 버지니아 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160㎞ 안팎) 인 리치몬드까지 가서 배웠다.”고 했다. 그 후 아론 김은 토너먼트 대회에 나갔다. “엄청 격차(실력차)를 느꼈어요. 미국인들 한테 무시도 많이 당했죠. 주니어 넘버 원 이었던 백인 선수는 ‘왜 팀을 같이 붙여 놓았느냐?’고 공공연하게 시비를 걸기고 했어요. 그게 저한테 자극제가 됐어요. 분발하는 계기가 된 거죠. ‘나도 잘해야 되겠다.’고 다짐했죠. 2년 후 그 백인 선수를 큰 시합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때 제가 우승하면서 친해졌죠.” 오후 4시께 초등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는 곧장 골프연습 에 매달렸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제가 골 프연습하는 것을 지켜봤지요. 정해진 볼 수량(박스)을 다 칠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러니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어요.” 당 시엔 박세리나 타이거 우즈가 한창 뜨고 있을 때였다. “박세리 프로의 아버지께서 ‘세리가 하루에 공을 천 개씩 친다’고 했어 요. 그러니 제 아버지도 따라 하라고 하셨 어요.” 김동회 씨는 “당시엔 얘들을 데리 고 다니는 게 행복했어요. 시합은 주로 주 말에 있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바로 나갔 죠. (대회장이) 열 다섯 시간 이상 거리면 비행기로 가고 그 이내면 자동차를 몰고 가자고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 놓고 있었 어요. 일년 52주 가운데 서른여섯번을 대 회에 참가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아론 김 은 “집에서 보충수업을 다 했어요. 친구 들은 노는데 저는 바빴어요. 친구 생일파 티에도 초대를 못 받았어요. 그러나 대회 에 나가 우승하고 나면 그것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그는 주니어 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우승했다. 2002년 엔 ‘B.B. 내셔널 매치플레이 챔피언십’과 ‘인터내셔널 주니어 골프투어 챔피언십’에 서 각각 우승했고 ‘올해의 AAA 플레이어’ 에도 올랐다. 2003년엔 주니어 최우수선 수상(Best Golfer Award of School)을 받기도 했다. 그해 센트레빌 고등학교 골 프팀을 졸업하고 벨몬트 대학교에 골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아버지(김동회)와 어머니(김명희)는 두 아들 위해 헌신, 아들 최고 자리에 오 르게 하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 아들 성공 위해 아주 강하게 키워

 

아론 김의 부모는 아주 열성적이었다. 아 버지 김동회, 어머니 김명희(59. 본명은 최명희, 미국 시민권자라 결혼 후 김명희 로 고침) 씨는 두 아들 아론 김과 저스틴 김을 위해 헌신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한국인 부모 특유의 스 타일 그대로였다. 아론 김은 “부모님께서 ‘자식이 유명해지려면 가장 유명한 사람 에게 배워야 한다’며 부문별로 세계적 대 가들에게 지도를 받게 해주셨다. 부모님 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동회 씨는 “최 고의 자리에 가려면 그만큼 ‘투자’를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어머니 김명희 씨는 아들에게 엄격했다. 아론 김은 “어머니는 엄청 터프하다. 아 들이 성공하려면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고 했다. 두 아들이 골프를 하게 시킨 것도 어머니였다. 아론김은 “저희 형제가 골프를 하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었죠. 어머니는 아들들이 안좋은 길로 가지 못하게 골프를 시켰 다.”고 했다. 김동회 씨는 “‘아이들 때문 에 부모가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집사람 도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아들 골프를 가 르칠 때는 아주 달라졌다. 아이들을 강 하게 키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동회 씨는 서울 동자동에서 나서 충무로에서 살다가 1978년 스무네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 먼저 가 있던 누님 을 믿고 건너 간 터였다. 그곳에서 그는 대학을 나와 미국 공무원으로 30년을 근무하고 3년 전 은퇴했다. “누님 도움으 로 미국에서 물리치료 사업도 해 경제적 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공무원 월 급만으로는 두 아들 골프시키기가 어렵 죠.” 그러다 그가 대장암으로 2년간 투병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당시 아론 김은 한국으로 와 수원C.C.에 서 ‘AK골프아카데미’를 열고 코치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준비가 덜 돼 있었죠. 배우고 준비해 가면서 차차 적응하게 됐어요.”

 

아론 김의 얘기에 김동회 씨는 “김(아들) 이 수원C.C.에서 고생했던 얘기를 안해 서 몰랐다. 뒤늦게 그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 당시엔 아들이 한국말도 서투르 고 아는 사람도 없을 때라 무척 힘들었 을 것이다. 만약 그때 바로 알았다면 (미 국에) 들어오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회 씨는 “미국에 가서 골프를 배웠 다. 요즘은 아론 김이 없을 때 (초보자들 을) 봐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골프 구 력이 30년이다. 한때는 싱글 핸디캡 골퍼 였다. “74타를 기록하기도 했지요. 한때 는 신나게 다녔지만 얘들(아들)한테 신 경 쓰느라

골프를 칠 기회가 없었다.” 김 동회 씨 얘기다.

 

 

한국 골프 강한 이유 한국 와서 보고 알아, 한국 선수들 정신적으로 훨씬 강 하고 부모님 열정 대단해. 한국 남자선 수들도 앞으로 해외 진출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아론 김은 한국에 와서 한국 골프가 왜 강한지 알았다고 했다. “한국에 와보니 주니어 선수들이 학교에 안 가요. 종일 연습에 매달리는 것을 봤죠. 아! 이게 바 로 한국을 골프 최강국으로 만든 요인(시 스템)이구나 생각했어요. 굉장히 부럽기 도 했고요.” 그는 한국 선수들이 정신적 으로 훨씬 강하다고 했다. “선수 중에는 대출을 받아서 운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 죠. 네가 우리 가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거죠. 네가 못하면 우리 집안은 못 먹고 산다는 강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됩니다. 반면 미국 선수들은 헝그리 정신 이 없어요. 미국인은 취미로 하지만 한국 인은 먹고 살려고 한다는 거죠. 그러니 한국 선수들은 눈빛이 반짝 반짝 해요. 눈에서 불이 나요.연습량부터가 달라요. 정말 새로운 세 상을 보는 것 같다.”

 

김동회 씨는 “지난 번 트럼프 미국 대 통령이 방한해 국회 연설에서 골프 얘 기를 꺼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한국 선수 이름까지 거명할 정도로 한 국 골프의 위상이 대단하다.”면서 “한 국의 부모님들 열정을 보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런 시스템이 (한국을) 골프강국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인한테 들은 얘기인데 애니카 소렌스탐이 ‘박세리 같은 식으로 골프 만 쳤다면 내가 올린 승수보다 더 올렸 을 것’이라고 했다더군요. 폴라 크리머 도 ‘골프를 배우려면 한국 가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잖아요. 한국의 골프 열정 과 시스템이 부럽다는 식으로 농반진 반으로 말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정유라 사건 이후 골프선수 들에 대해 너무 제재하면 경쟁력이 떨 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아론 김은 “미국이 골프기술이 발달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여자 선수들이 지금  골프를 가장 잘 쳐요. 한국 여자선수들이 미국 가면 우승을 합니다. 성적이 좋으니까 한국의 시스 템에 대해서 틀렸다고 얘기할 수가 없 어요. 한국에 9년째 살면서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국 선수들이 왜 대단한지는 한국에 와서 살아봐야 해 요. 직접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남자선수들도 강경남 김경 태 최진호 등 대단한 선수가 많다. 그 런데 남자 선수들은 군에 가야한다. 그게 장애다. 반면 여자선수들은 군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남자 선수들도 과 거 열세였던 체력이 많이 좋아졌고 그 래서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8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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