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소통(疏通)과 인쇄(印刷) 그리고 메르스 소통(疏通)과 인쇄(印刷) 그리고 메르스
김재호 2015-07-07 17:16:31

소통(疏通),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한다’는 뜻이며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개인간의 대화나 조직간의 협상, 국가간의 조약들은 이러한 소통을 토대로 혹은 소통을 위해 이뤄집니다. 개인과 집단간의 소통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나 조직은 멸망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 정책은 국민들 혹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고, 자신만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모습은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절대군주시대나 종교국가 시대에도 소통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CoV·이하 메르스)이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기던 정부가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국내에 퍼졌고,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정부의 방역정책이 부재함을 드러낸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단상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문제시 된 것은 소통의 부재였습니다. 누가 감염됐는지 어디를 피해야 하는지 조심해야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원했던 국민들에게 정부는 ‘괜찮다. 문제없다’등의 안일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오히려 ‘혼란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보를 차단하고 유언비어에 강경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소통과 공유보다는 안정과 통제를 택했고 문제해결보다는 모르쇠로 일관한 성격이 짙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사회는 치르지 않아도 될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가장 큰피해자는 역시 국민들입니다. 벌써 32명이 사망했고 확진자는 180명을 넘었습니다. (6월 28일 현재)격리경험자도 1만4,000여명에 이릅니다. 지역감염에 속하는 4차 감염자가 발생하자 이제 방역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퍼져있습니다. 겪지 않아도 됐을 만한 불안을 매일 같이 느끼고 살아가는 겁니다. 방역과 확산방지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물론 국민의 피같은 세금입니다. 초기 대응의 부실과 소통의 부재가 낳은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소통에 강한 나라입니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유생들이 올리는 상소를 반드시 들어야 했으며, 태종 때는 억울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1401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 역시 세종대왕이 백성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창제하신 산물입니다. 더욱이 글자를 전달하는 인쇄는 전통적으로 계층간 국가간 소통을 전담하는 매개체였습니다. 특정 분야의 소식이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인쇄가 담당해온 역할은 역사적으로도 지대합니다. 우리나라는 인쇄 종주국으로서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은 물론 세계최고(古)의 금속활자인쇄본인 직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소통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던 국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암흑기라 평가되는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와 민중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종교개혁이라는 급진적인 사건을 겪어야 했고, 프랑스에서는 브르봉왕가와 귀족 승려 등 기득권층이 민중들이 제기하는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아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습니다. 이 외에도 소통의 부재로 혼란을 겪은 사례는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합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획일적인 사고, 이해와 배려 없는 정책,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자세 등은 비판의 기능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소통을 배척함으로써 고인물로 썩어간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메르스 사태를 보면 현재의 정부와 일반국민들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고 느껴집니다. 오랜 기간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해오던 인쇄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에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월간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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