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한은혜 2018-05-01 16:53:03

한경환 편집장(printingtrend@gmail.com)

 

지난 4월 27일 오전에 펼쳐진 한편의 영화와 같았던 장면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남북의 정 상이 만나 손을 잡고, 서로의 지역으로 옮겨 다니면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말이다. 마치 수십 년이 지나도 결코 보지 못했을 장면이라는 생각에 꿈인지 생시인지 감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지하철에서 Youtube로 중계를 보고 있자니 더욱 현실감이 떨어진 탓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런 장면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2번 비슷한 장면을 우리는 보았고, 그에 따른 진전 을 기대했다. 따라서 헛된 꿈이 될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평양을 지나 중국을 지 나고 러시아를 관통해 유럽에 닿는 꿈을 말이다. 비행기를 타면 될 걸 왜 기차를 타느냐고 물을 수 도 있다. 그럴 때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원치 않았지만, 반도가 아닌 섬나라에서 살았던 기억 을 되살려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은 아니었던 지 궁금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20년 전 밀라노에서 로마로 가던 야간열차에서의 흥분이 아직도 머리에 남는다. 거의 8시간을 밤이 샐 동안 달리던 기차 안의 이국적 풍경, 처음 봤지만 금방 친해졌던 사람들. 그럼 에도 물건을 잃어버릴까 조바심을 내던 속 좁았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그런 기억이 조금 더 길 어진다면 하는 생각에 이른다. 물론 극동 러시아 횡단 기차를 타고 비슷한 경험을 할 수는 있을 것이 다. 다만 서울역 전광판에 최종목적지가 부산이나 목포가 아닌 베를린이나 파리가 뜬다면 그리 나 쁜 경험은 아닐 것 같다.

 

장거리 열차를 타고 떠나면서 어떤 예쁜 마을이 보였을 때 무작정 내리고 잠시 쉬어가는 나는 또 어 떤 경험을 하게 될까도 궁금하다. 물론 나는 기차를 놓치겠지만, 처음 본 이국적 풍경의 마을에서 나 는 무엇을 얻게 될지 상상도 못할 것 같다. 해빙 무드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다. 부지불식간에 섬나 라가 되어 버린 나의 조국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출발지이자 창이 된다면 무형으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을까 한다.

 

<월간 PT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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