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수있다는 것에 감사를 책을 읽을 수있다는 것에 감사를
김재호 2014-11-03 09:22:52

현대의 종이는 각종 정보 전달과 소통 기능을 디지털 기계에 뺏긴 지 오래다. 최후 보루라고 여겼던 책마저 단말기를 통해 유통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종이에 대한 작별은 어느 날 글쓰기를 익혔다는 이유로 말하기를 멈추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종이는 예술가들의 오랜 파트너였다. 화가 앙리 마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한 예술은 종이 위에서 이뤄졌다. 종이는 인류의 장난감으로 보드게임과 카드가 되어 유희를 선물했다. 종이는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여권은 여전히 종이로 만들어지고, 존재를 증명하는 주민등록 등ㆍ초본과 부동산 계약서도 종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기간에 500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고 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의 저술이 과연 그의 살았던 시기에 인쇄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필사본으로만 존재했거나, 인쇄되었다면 언제 누구에 의해 얼마나 찍혔을까라는 궁금증도 든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자랑스러운 민족임을 배웠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는 말은 금속활자를 통해 수많은 서적들이 인쇄되고 많은 백성들에게 책이 보급되었다는 것을 뜻할까? 아쉬운 이야기지만 금속활자의 발명이 일반 백성들에게 지식의 확산 수단으로는 사용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금속활자나 목활자는 국가소유였다. 중앙에서는 주자소와 교서관이 인쇄의 업무를 맡았고, 지방에서는 관찰사가 출판의 주체였다. 당연히 인쇄의 대상으로 선정된 책들은 법령이나, 유교경전, 농업서 등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지배계급의 교양과 이데올로기를 갖추는 역할과 체제유지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을 뿐 오늘날과 같이 책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인쇄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사설 책방도 없었다.


지금이야 책을 만드는 과정이 기계화되어 단순화되었지만 조선시대 책을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자 외에도 문선하는 삶, 조판하는 사람, 인쇄와 제본가와 같은 전문 장인들의 노고가 필수적이었다.
그 제작과정에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국가에서 책을 인쇄하는 경우에도 그 부수는 많아야 수백 권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종이값도 비싸고 만드는 일에도 많은 노동이 들어갔기 때문에 ‘대학’ 이나 ‘중용’과 같이 그리 두껍지 않는 책들도 논 2~3마지기 값을 했을 정도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정말 힘들이지 않고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책값 만원 내외로 저자의 노하우나 철학들을 손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배울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록 글을 깨쳤더라도 책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책의 역사도 몇 백 년만 되돌려 보면 오늘날과는 판이하다. 책을 만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글 : 월간PT 오석균 편집장(printingtrend@gmail.com)

 

<출처 월간PT 11월호>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