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출판 포럼 21, 점점 심각해 지는 매출감소 가격저하가 원인 인쇄출판 포럼 21, 점점 심각해 지는 매출감소 가격저하가 원인
월간PT 2015-09-24 14:15:04

공정한 산업질서의 확립 필요


「인쇄출판 포럼 21」제15회 원탁회의가 5월 22일, 동경 분쿄구의 남녀평등센터에서 개최되어
노사 합쳐 약 40명이 가격파괴 및 매출감소에 대응, 노력, 관공의 과제, 서점의 현상황과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원탁회의는 공정한 산업질서 확립을 위해 전국인쇄출판업 노동조합 총연합회(전인총련),
일본출판노동조합연합회(출판노련), 실무진의 츠키오카 신협인쇄(주) 상무,
다나카 ㈜동심사 사장 주도로 매년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요지를 소개한다.
글 | 일본 인쇄계 정리 | 월간 PT 편집부(printingtre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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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원탁회의는 인쇄출판관련업계의 문제점을 노사 함께 인식하고 일치되는 과제로서 노사 공동 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2001년부터 실시되어왔습니다. 경영자와 노동조합이 이처럼 테이블에서 논의하는 곳은 다른 업계에서는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개회에 있어 실무진의 츠키오카 씨, 출판노련의 오오다니 중앙집행위원장, 전인총련의 코레무라 중앙집행위원장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제본업의 사업소수, 출하액은 반감
츠키오카 신협인쇄(주) 상무 : 니케이신문에 코지엔(일본어 사전)이 환갑을 맞이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1955년 첫해에 100만권, 1983년에는 더많은 260만권, 2008년 최신판의 제6판은 40만부 발행되었습니다. 모두 “팔렸다”라고는 써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2년 전까지 있었던 삼성당인쇄에서는 1980년경 사전을 포함해 540만권 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150만~160만권입니다. 아동인구 감소가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1980년 당시에는 초중고생을 합하면 2240만명, 지금은 1350만명. 학생이 900만명 줄었다는 것은 단순히 국어, 한문, 영어, 일영 4종류의 사전만 3600만권이 없어졌다는 계산이 됩니다. 2년 전부터 사원이 12명인 신협인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수주가격은 매년 떨어지고 있습니다. 3000만엔 받던 일도 종이값, 인쇄대, 제본대, 여기에 급여를 지불하면 회사에는 5만엔 정도만 남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경영자의 낮은 논리관 탓으로 눈앞의 일을 따기 위해 적극적으로 가격을 내려버린 결과입니다.

 

제본가격은 10년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중견 제본회사는 5억엔이었던 매출액이 3억엔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가격을 자발적으로 내린 것이 아니라, 다른 제본소 및 인쇄회사가 「이 가격에 하겠습니다.」, 「우리는 더 싸게 가능합니다.」라고 발주자에게 제안합니다. 이것이 반복되어 자사의 일을 확보하기 위해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원가가 고객에게서 받는 가격보다 더 높은 실정입니다. 이래서는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1998년과 현재를 비교해 보면 3000사 이었던 제본소는 1600 정도로 약 절반이 되었고, 전일본제본공업조합연합회에서도 1800이었던 조합원수가 900으로 줄었습니다. 제본업 전체의 출하액은 3000억엔을 넘던 것이 1500억~1650억엔으로 반감되었습니다.


인쇄도 마찬가지입니다. 1998년에 8.7조엔 이었던 인쇄 출하액은 지금 5.2조엔. 이것은 인쇄물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가격이 대폭 떨어진 결과입니다.
출판도 2.5조엔에서 1.7조엔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에 제본업 거래처의 비율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4년도에 50% 이었던 인쇄업은 2012년도에는 48%로 떨어지고, 한편 출판업이 25%에서 35%로 올랐습니다. 원인은 두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쇄소가 자사 내에 제본라인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제본업자에 발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다른 하나는 출판업자가 제본업자에게 직접 발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가 하락은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쇄도 제본도 채산을 맞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도 사장 및 영업맨과 함께 연중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수첩에 붙여둔 외출처를 세어보면 2~4월은 고객, 제본소, 인쇄사 등 1일 평균 12곳을 돌고 있었습니다. 이정도로 뛰어다니지 않으면 10인 전후의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견적만으로는 일을 따낼 수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움직여 자사의 기술과 사람을 팔아 인간관계를 양성하면서 일을 따냅니다. 매상을 늘려 회사의 규모를 크게 하기 위해 영업활동을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세 증세, 경제-문화 모두에 악영향
오오다니 출판노련 중앙집행위원회 : 출판노련의 정기대회 보조로서 2016년도에 활동을 구성, 과제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때 다시 산업동향을 뒤돌아보았습니다만, 여전히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소비세 증세의 악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고, 판매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매상은 최고일 때의 60%, 전체금액은 1조엔 줄어들었습니다. 금년도도 이 상황은 여전합니다. 다음의 소비세 증세는 치명상이 될 것이며, 경제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업계를 통틀어 경감세율 적용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는 의미는 문화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널리 출판물에 닿아 읽을 기회, 권리를 빼앗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사히 배싱”과 같이 보도, 미디어에 널리 알려진 중개인 및 통제색이 진해진 현상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국회에서도 논의를 하고 있는데, 알리바이 공작에 지나지 않고, 결론이 있는, 숫자의 힘으로 마음대로 해버리려는 무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밀실에서 모든 것이 정해진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 방송, 출판을 포함한 기성미디어, 매스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언론, 표현의 역할, 자유가 가지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잘 생각해서 이것은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 및 산업구조의 변화가 있으므로 10년 전의 직장체제 및 인원문제, 임금 및 노동조건이 지금까지와 같아서는 절대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출판문화를 유지, 발전시켜가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에 관계된 노동자 및 노동조합의 생각만으로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원탁회의가 상징적이지만, 경영자와 노동자가 한 번에 만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물론 입장의 차이에 따라 보는 방법 및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것은 당연한 전제로 두고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서 의논된 여러 가지와 보고된 것에 대해 하나의 노동조합으로서 또 출판사 중 한 노동자로서 참고해 주셨으면 하고, 내일부터 활동에 큰 힌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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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계약 조례 제정에 업계단체도 운동을
코레무라 전인총련 중앙집행 위원회 : 원탁회의에서는 지금까지 입찰제도 개선, 관공서 인쇄물의 적정화를 주 테마로 해왔습니다만, 최근에는 공계약 조례가 의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전인총련에서는 당초 입찰제도가 개선되면 공계약 조례는 없어도 되지 않는 냐라는 인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입찰제도만으로는 거기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최저임금 문제 및 움직이는 사람이 문제는 개선할 수 없습니다. 역시 공계약조례가 필요합니다. 관제 워킹파라고 하는 것이 계속 이야기 되는데 우리의 귀중한 세금을 사용해 공개조달되어 그 결과 노동자가 워킹파가 되거나, 혹은 공계약에 연계되어 있는 기업이 폐업 및 도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공계약을 전국에 보급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월간 「인쇄계」에서 「세타가야구의 공계약 조례에 준하면서 공계약 조례에 있어서 인쇄업계용으로 써졌으면 한다.」라고 하는 원고를 의뢰받아 노동조합의 시점에서 「인쇄관련 산업과 공계약 조례」에 대해서 썼습니다만, 전일본 인쇄공업조합연합회 및 일본 그래픽 서비스 공업회 등 인쇄 업계단체도 공계약조례라고 하는 것에 한 발 다가갔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입찰제도 개선만이 아니라 공계약 조례를 제정하는 운동을 꼭 노동조합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일전에 전일총련으로서 세타가야구와 간담회가 있었는데 「어쨌든 공계약 조례를 먼저 제정하고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의논을 해 수정해가자.」라고 구의담당자가 말했습니다. 즉 기본적으로는 전회일치로 만드는 공계약 조례이므로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자.」와, 「만들면 끝이다.」가 아니라 만든 뒤에 어떻게 운용해 갈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세타가야구의 방법을 배워 전국으로 확대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인총련과 관련있는 삿포로에서는 전 시장이 공계약 조례를 제정하는 운동을 진행해 왔는데,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어 버렸습니다. 한번 부결되면 다시한 번 햇빛을 보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밑에서 올라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위에서 내려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실제 공계약 조례가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공계약 조례에 대해서는 출판노련과 전인총련의 약간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인쇄의 경우 관공서 인쇄물이라고 하는 형태로 직접 관련되어 있는데, 출판의 경우 공공조달의 면에 접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무교육 교과서는 무상이므로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약간이지만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자체와 교과서 교섭을 할 수는 없지만 공계약의 관점에서 「교과서의 가격도 제대로 올려서 적정화해 간다.」라는 것은 전인총련으로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 그림책」의 문화를 계속 지키자
사회 : 두 분에게 특별보고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번부터 중개인을 맡고 계신 동심사의 다나카 사장님께 부탁드립니다.
다나카 ㈜동심 대표 : 노사련(인쇄출판노사합동연구회) 및 원탁회의에 참가해 중소기업 분야에서는 노사가 함께 산업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한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츠키오카씨의 「중개인을 맡아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참입니다. 디지털화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으니 동심사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동심사는 그림연극 출판사로서 시작했습니다. 그림연극이라는 것은 나이 있으신 분께서는 길모퉁에서 있었던 가두 그림연극에 대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젊은이들은 보육원, 유치원 및 초등학교 등 교육의 장에서 접한 경험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연극은 교육의 장에서도 사용되고,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호소하는 힘, 어린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쪽으로 사용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림연극의 발상은 에도시대의 「그림자 연극」에서 유해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해집니다. 「그림자 연극」은 어두운 중에 유채씨 기름을 피운 등불을 광원으로 그림을 투영하는 슬라이드기를 이용한 구경거리로 렌즈로 확대된 그림을 움직여 관객을 놀라게 한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종이 인형과 같은 것으로 발전해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은 1929년 세계대공황 경입니다. 넘쳐나던 실업자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당시에는 「평화(平畵)」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그림연극이라는 형태가 되었다고 말해집니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그린 그림에 니스를 바른 것으로 이것을 빌려 자전거에 쌓아 마을을 돌거나 어린이들 앞에서 연기해 사탕 등을 팔아 푼돈을 번 것입니다. 이러한 그림 연극은 종교의 포교활동 및 교재 등으로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전쟁터에 보내기 위해 전의고장에 사용된 것이 「스파이 조심」, 「적이다. 미국과 영국을 이기자」, 「하늘의 군신, 가토 소장」 등, 제목만 들어도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다이쇼 익찬회 항전부의 추천이라고 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전국 아이들을 앞에서 연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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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작품 중에 하나가 「초콜릿과 병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작문운동 등, 어린이의 입장에서 작품활동을 한 코쿠분 이치타로가 각본을 쓰고 화가 코야노 한지가 그림을 그린 작품입니다. 출정한 부친이 위문으로 받은 초콜릿 점수(모으면 초콜릿으로 받을 수 있음)를 모아서 내지의 아이들에게 보냅니다.그 초콜릿이 아이들에게 도착한 날 부친이 전사 소식이 전해지고, 모친은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전사했다.」라고 말하며 끝이 납니다. 이러한 형태가 아니면 일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실제로 카나가와 대학의 선생들이 무문자 문화를 연구하던 중에 코야노의 유족을 취재할 기회가 있어 저도 그 현장에 동석했었는데, 전쟁에 협력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에 상당히 후회하고, 스스로 그린 그림을 싫어했었다고 합니다. 그림연극도 전쟁 중에는 안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동경재판에서도 그림 연극이 전쟁에 협력했다고 지적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림연극은 원래 어린이의 감성을 끌어내는 플러스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두 번 다시는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어린이의 입장에서 그림연극을 만들고 싶다」라고 하는 그림연극 작가가 모여 1948년 민주그림연극인 집단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전후의 새로운 그림 연극이 시작되게 됩니다. 1949년에는 교육그림연극 연구회가 회사를 만들어 그림연극의 출판을 시작했습니다만,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1957년 주요멤버가 모여 동심사를 만들고, 1958년부터 유치원 등에 매월 새로운 그림 연극을 전하고 정기간행 그림연극을 시작했습니다. 1961년이 되면서 그림연극만이 아니라 「아이우에오 책」(글 하마다 히로스케, 그림 이와사키 치히로)를 간행했습니다. 그리고 7년 후에 간행된 「없어 없어」(글 마쓰야 미요코, 그림 세가와 야스오)가 그림책 출판에 힘을 쓰면서 「영아용 그램책과 그림연극 동심사」라고 하는 정평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의 행복과 평화를 염두에 둔 출판활동을 하는 회사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림연극은 많은 관중과 연기자가 서로 만나 이야기를 공유하고 쌍방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여러 가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한다고 봅니다. 이때 그림책은 어린이를 무릎에 올려 함께 책을 읽는 것을 저는 「읽고 이야기하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 때 어린이와 함께 그림책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점이 그림책과 그림 연극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동심사는 2013년 중견의 출판사가 만는 출판단체에서 업계 내에서는 영광스러운 제 29회 사회출판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이유는 지금까지 동심사가 이어온 어린이들의 행복을 추구한 출판활동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선정 이유로, 작품으로서는 한중일의 평화 그림책을 만들어온 점 및 시인 아서비나드의 사진그림책 「찾고 있습니다」의 출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동심사가 출판을 이어온 공이 평가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및 그림 연극의 디지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냐라는 문제입니다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과서의 디지털화가 계획이 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물건을 조사하는 경우 즉시성 및 비교성을 생각하면 디지털화의 이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의 발달에 적합한 것인가가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년 전에 출판노련과 동심사의 편집자,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포플러사의 사카이 사장도 가담해 연구가 진행된 보고서 중에 사카이 사장은 명확하게 「교과서의 디지털화 반대」를 주장했었습니다.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중 스마트폰, 태블릿 PC가 점점 보급되어 가고, 그것이 편리하게 사용되면 정말로 좋은것인가, 제어가 되지 않는 어린이가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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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화과의회가 2013년 11월에 신문광고 등으로 「어린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지말자」라는 경고를 전했습니다. 또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죽기전 iPad가 나왔을 때 인터뷰에서 「댁에서는 아이들도 마음대로 이러한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말도 안 됩니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은 만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어린이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끼리식사를 하면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밖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라는 교육방침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편리하게 사용하면 좋은 것이지만, 완전히 잠식당했을 때 얼마만큼 문제가 있는지, 만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때문에 동심사에서는 그림책 및 그림연극을 디지털화하는 것을 당연히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이에 그려진 문자의 문화, 그림 문화를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형 서점 사이에서 “마을의 책방”을 유지하는 대책을
사회 : 계속해서 일본서점상업조합연합회(일서련)의 시자키 부회장님께 특별 보고를 부탁드립니다.
시자키 일본서점상업조합연합회 부회장 : 오늘은 평소에 느끼고 있던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메구로구 유텐지에서 20평 정도의 책방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25년 전에 동경도 도서상업조합(동서상)의 청년부를 동료들과 구성했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까운 것으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을 하나씩 해소해가고자 모인 모임인데, 19지부에 약 170명이 회원이 있었습니다.

집행부는 30~50명이고, 실제로 운영하고 사람은 20명 정도였습니다. 청년부가 현재도 필요한가라는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1990년 경에는 오래된 가게의 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새로 문을 연 책방 신입이 아주 많았습니다만, 정말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오래된 가계는 계속 영업을 하는데 야구로 치면 1타석만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1타석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야구장 밖에 있는 사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에 「팀을 만들어 속에 들어가자」라는 생각해 시작되었습니다.

 

소리도 크게 지르고 신랄하게도 말하기도 했습니다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여기서 나왔습니다. 물론 대상은 중개인입니다. 일판회 및 토판회 등에 횡단적으로 들어가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때문에 중개인이 아무리 숨겨도 모든 것을 들켜버립니다. 일판, 토판의 각각의 좋은 점은 그대로 남기고 나쁜 점 개선을 요구하는 방법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는 중에 동서상의 부이사장에 취임함과 동시에 일서련의 부회장에도 취임했습니다. 일서련의 가맹점은 약 4000점입니다. 전국 서점 수는 12000점이 넘으므로 가맹률을 35% 정도입니다.
서점은 먼저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멈추지 않으면 점점 사라지게될 것입니다. 동서상에서도 1983년에 1400점 있었던 조합원이 지금은 400점입니다. 경영이 성립하지 않는 가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경영이 되더라도 노령화로 물려줄 이가 없는 가게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러한 가게는 남아줬으면 합니다. 제 가게는 시부야에서 3정거장, 급행이 정차하지 않는 유텐지역 앞에 비교적 주택가 속에 있습니다. 선대가 4평의 가게로 시작한 1967년경에는 200평 집에 3세대가 사는 가정이 표준이었습니다. 가족구성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신상품이 나오면 그 집에 팔러 나갑니다. 최고는 역시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상당히 권 수가 많지만 책장에 나열해 놓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그러는 중 점차 결혼한 뒤 아파트 생활 등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이러한 중에도 외상판매는 절호조였습니다. 이때 양친의 학력은 대부분이 고졸인시대였기 때문에 희망의 별은 어린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대학에 보내고 싶다.」, 「동경대에 보내 공무원을 시키고 싶다.」, 이것이 가장 큰 희망이었습니다. 책을 샀다고 해서 동경대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좋은 책입니다.」라고, 숙제가 있으면 안에서 잠자고 있던 백과사전을 조사해서 힌트를 줍니다. 이것이 마을 책방의 일이였습니다. 헌데 이러한 서점은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하는데, 1000평의 가게가 한 곳에 있는 것 보다 1000개의 가게가 마을 책방으로서 남는 쪽이 이 나라를 위해 절대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상황에서는 어렵습니다. 이것을 모두가 생각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가게의 일상을 소개하면 아침 10시에 열고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1995년 개점 당시에는 22시~새벽 1시의 매상이 하루의 1/3 이었습니다. 지금은 같은 시간대가 5% 정도입니다. 밤 시간대는 이미 아무도 없습니다. 밤에 깨어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마시고 놀던 사람이 아주 많아서 귀가길에 선물로 사서 돌아가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노인분들이 안계십니다. 밤중에 있는 사람은 젊은이들로 대부분 약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폐점부터 오전 중에 오는 사람은 나이든 사람으로 12~13시는 완전히 매상이 없습니다. 시작했을 때에는 가까이에 메구로 구청이 있어서 유텐지에 밥먹으러 와서 그참에 책을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구청이 나카메구로로 이전하면서 3500명의 구매력이 0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13~16시는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는 엄마들과 아이들. 여기에 사립중학교와 도립 메구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층은 훑어보기만 할 뿐 책을 사지는 않습니다. 16시가 지나면 본래는 슈퍼에 물건을 사러 나온 어머니들이 메인인데, 토큐스토어가 3월부터 개장한 탓에 좀처럼 사람이 안 오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조사하니 여성의 구매실적이 80%나 줄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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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중 맞은 편 서점이 내진공사 관계로 폐점하면서 전년대비 최대 140%까지 매상이 올랐습니다. 이것으로 겨우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더니 가게 바로 앞에 있던 역 입구가 100m 정도 이전해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사람의 흐름이 바뀌어 왕래가 정말로 적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을의 변화는 작은 책방의 상황을 한 번에 바꾸어버렸습니다. 16~21시에 매상의 2/3을 점하는 상태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전년, 전전년과 비교하면 확실이 10%는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 가게는 외상도 있고, 학교판매도 하고 있어 나름 어떻게든 운영해 가고 있습니다만, 수비범위가 1km권 내에서 5km권 내로 넓어졌습니다. 학교를 제외한 매상은 감소경향에 있습니다.


이것 외에 도서관 납품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곳만으로는 안됩니다. 행정단위로 각 지부와 수의계약으로 맺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은 서점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입찰은 일절 거절하고 있습니다. 제가 청년부에서 활동하던 때 「업계 내에 돈을 돌게하는 방법으로서 유통세를 창설하면 어떤가」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출판사가 책을 발간하면 1권 1엔, 취급점도 1엔, 책방도 1엔, 팔거나 팔리지 않는 것은 별도로 하고 배본되면 1엔 받는 것으로 한다. 이것으로 연간 40억엔 정도가 됩니다. 이것을 모아서 책방을 내고 싶을때 펀드로서 사용합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방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경감세율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일서련에서는 동정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자민당의 세조 간부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일서련 중에는 특히 오사카의 이사장이 선봉에 서 쿄토, 오사카, 후쿠오카의 경감세율의 적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출처 월간PT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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