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의 틈 속, 방황하는 인쇄업 문화와 산업의 틈 속, 방황하는 인쇄업
김재호 2015-05-04 10:55:10

인쇄기술협, 인쇄산업 발전 위해 첫 삽 뜬다
문화와 산업, 양대 발전 노선 만들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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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쇄기술협회가 인쇄산업 발전을 위해 기초자료 조사에 나선다고 밝히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안한
인쇄문화산업진흥법과 중복돼 해당 단체와 부딪히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왔다.
산업 전반에 걸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발전방안 및 법안제정의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의도 임에도
엉뚱한 부분에 에너지가 발산됐다. 인쇄업 자체가 산업과 문화 사이에 끼어있는 형상이다.
문화에 이어 산업적으로도 발전노선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취재 | 임성윤 기자(printingtrend@gmail.com)

 

# Scene 1

 

기술協, 인쇄산업 표준화 & 기초조사 나선다
인쇄산업 기반구축 및 발전토대 마련 목적


대한인쇄기술협회가 국내 인쇄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표준화와 기초조사 사업에 착수한다. 대한인쇄기술협회는 2004년 설립 이후 인쇄산업의 자생적 성장기반 구축과 공동 번영을 추구해 왔으며 업계 종사자들의 화합과 발전을 꾀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온 단체다. 이번에 본격화 되는 표준화사업 지원은 국내 인쇄물의 질적 향상 및 글로벌 위상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기초조사 사업은 그동안 부족했던 인쇄업계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인쇄기술협회는 지난 3월 31일 서울 국도호텔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2014년 결산보고와 2015년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대한인쇄기술협회는 김진배 회장은 “인쇄산업이 장기간의 불황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위기 일수록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생존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민국 인쇄산업 대상(KPIA2015)’개최를 비롯한 8가지 세부사업에 대한 계획을 전했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국제 인쇄 표준화 지원 사업’과 ‘인쇄산업 연구조사 사업’ 두 가지다. 이들은 국내 인쇄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사안으로 대한인쇄기술협회의 역할적인 부분과 인쇄산업 전반의 위상을 고취시킬 수 있어 이목이 주목된다.
먼저 국제 인쇄 표준화 지원 사업의 경우, 인쇄산업의 국제 표준인증 사업에 요구되는 ISO-TC130 한국위원회를 지원함으로서 국제인쇄표준의 제정 및 관련 인증제도 시행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ISO-TC130 한국위원회의회의를 주관해 간사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국제 ISO-TC130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해 투표권 및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나아가 ISO-TC130 한국위원회의 인쇄 관련 국제표준 및 환경인증 등 표준화 관련사업을 지원해 국내 인쇄물 품질향상을 도모함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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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TC130은 인쇄와 그래픽 기술에 있어 원본에서 후가공 뒤 최종제품에 이르기까지 용어, 테스트 방식, 사양 등을 다루고 있다. TC는 표준관련 전문기술위원회(Technical Committee)의 약자이며 이 중 그래픽 인쇄기술 분야는 130 으로 분류된다. 즉, 인쇄와 관련한 컴포지션, 리프로덕션, 인쇄공정, 후가공, 잉크와 피인쇄체, 재료와 소재 등 16가지 분야의 국제표준을 정하기 위한 국제단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27개국을 정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쿠바, 체코, 이집트 등 18개국을 준회원국(참관만 가능)으로 두고 있다.
대한인쇄기술협회는 ISO-TC130 한국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국제인쇄표준제정 시 대한민국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시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관련 인증제도 시행을 대비한 준비에 만반을 기할 예정이다. 기술표준원 표준 능력향상사업 등 정부지원사업에 참여를 확대시킨다는 포부도 밝혔다.다음으로 인쇄산업 연구조사 사업은 인쇄산업의 기초자료를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인쇄업은 대표적인 도시근간 산업으로 국가 경제의 흐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쇄사업자들이 소규모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업계의 현황을 파악하고 목소리를 한 곳으로 모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속된 불경기의 여파와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산업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이에 대한 통계를 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를 조사하는 단체들 역시 국가기관의 개괄적인 통계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때문에 정부나 각종 연구기관에서 인쇄업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마련하려해도 기초조사 결과를 접할 수 없어 현실적인 방안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인쇄기술협회는 이 점에 착안, 인쇄산업의 연구조사를 실시할 것임을 천명했다. 인쇄산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TF팀을 조직해 인쇄산업 총량 조사를 위한 지원에 나서고 인쇄산업 공동현안 해결 및 발전방안을 모색함은 물론 인쇄산업 연구조사 및 연구보고서를 제작을 통해 인쇄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의도다.
TF팀은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개최해 정보교환 및 세부 계획을 구성하게 되며 인쇄산업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발전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기초조사 항목을 파악하게 되면 해당 연구조사의 활성화, 발전방안 마련은 물론 인쇄산업 전반에 걸친 조직적인 움직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 된다. 더 나아가 이들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를 대상으로 한 지원계획 발의, 산업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 또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인쇄기술협회는 이 외에 ‘인쇄업계의 유공자 정부포상’, ‘인쇄 및 관련기술의 심화 교육을 위한 세미나 개최’, ‘인쇄 신기술 교류를 위한 국제화 사업’,‘국내 유관단체외 공동사업 추진’, ‘수익사업 개발 추진’, ‘회원사 지원활동 및 유대강화 사업’ 등을 사업계획으로 보고했으며, 회원들은 이에 대한 논의를 거친 후 가결시켰다. 김진배 회장은 이날 총회를 마친 뒤 “인쇄산업의 재도약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됐다는 의미가 있었다.”며 “앞으로 더욱 투철한 사명감으로 인쇄산업의 발전과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 Scene 2

 

인쇄, 문화일까? 산업일까? 그걸 꼭 나눠야 하나?


인쇄가 문화냐 산업이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이날 총회에서 연출됐다. 발단은 산업 현황을 조사하겠다는 대한인쇄기술협회의 2015년도 사업계획안이다. 인쇄산업발전을 위해, 정부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초조사에 착수하겠다는 이 안건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쇄문화산업진흥법과 충돌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이끌어 냈다. 이후, 대한인쇄기술협회의 총회는 문화냐 산업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서병기 대한인쇄기술연구소 이사장은 “현재 인쇄업에 대한 정부지원은 인쇄문화산업진흥법에 기초해서 진행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기술협회 차원에서도 산업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 그 첫발을 떼려고 한다.”며 “그러나 잘못 들으면 문화를 없애고 산업으로 봐야한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의미를 정확히 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인 대한인쇄문화협회 조정석 회장이 참석해 있었기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인쇄냐 문화냐를 놓고 많은 갈등이 있었음을 도리어 짐작해 볼 수 있는 발언이기도 했다. 민감한 부분을 정면으로 건드린 이 발언은 그동안 내재돼 있던 대한인쇄기술협회 회원들이 내재하고 있던 불만에 불씨를 당겼다.

 

밥그릇 뺏어오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오세인 정도알미늄 회장은 “인쇄에 문화적 측면은 너무 강조되고 산업적 측면은 너무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며 “문화관련 부분은 정부로부터 일정정도 지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으로 보면 이렇다 할 지원책이 없다. 기계장비를 구입하려해도 대출이나 지원이 없어 리스로 사야하고 인쇄기에 대한 감가상각율이 너무 높아 융자도 힘들다. 산업적 접근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범식 한국 하이델베르그 대표는 “정부부처나 업계 관계자나 인쇄문화산업진흥법이 있어 다른 지원책은 중복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보다 많은 지원을 받는 것이다. 문화부와 산업부에서 지원을 받는 것은 각기 다른 문제다.”라며, “‘문화에서 왔으니 산업에서는 하지마라’라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고 또한 산업차원에서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문화부분의 지원에 영향을 받게 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대한인쇄기술협회 회원들이 불만을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 인쇄업은 분명 제조업이나 임가공업으로 분류될만한데 출판업과 함께 문화로 인식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쇄업에 특화된 지원이나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원 규모가 크지 않다. 현재 정부가 인쇄업을 위해 지원하는 금액은 인쇄문화산업진흥법에 근거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는 대한민국 인쇄의 전통과 우수성을 알리는 쪽에 치우쳐있다. 하나의 산업으로서 이를 진흥시키고자 하는 지원은 딱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단체인 대한인쇄기술협회의 회원들의 머릿속에 ‘산업부의 인쇄업 진흥책이 나왔으면…’이라는 바람이 새겨질만하다. 지난해 국회에서 확정된 201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산업,중소,에너지 분야에 16조4,000억원이 편성됐으며, 문화체육관광분야에는 6조1,000억원이 배정됐다. 3배가까이 차이가 난다. 더욱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초점은 인쇄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자 하는 쪽이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자체의 경쟁력을 확보시키고자 지원에 나서는 쪽이다. 인쇄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인쇄기술협회 회원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쇄업의 규모가 점차 감소해감에 따라 이아쉬움이 불만으로 변질돼 갔다.

 

대표적인 예로 정부조직편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는 문화콘첸츠산업실 예하에 출판인쇄산업과가 존재한다. 이 부서가 인쇄문화를 진흥시키고자 하는 주요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직도에는 인쇄산업을 따로 관장하는 부서 자체가 없다. 디자인생활산업과가 관장하는 720개 분야 중 하나로만 취급받고 있을 뿐이다. 김범식 한국하이델베르그 대표는 “편제가 되어있질 않으니 마땅히 정책 제안을 할 곳이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를 만나려면 해당 과장조차도 만나기 힘들다. 인쇄업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물론 이 같은 현실이 인쇄가 문화인지 산업인지에 대한 논란에 날을 세워야 하는 이유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당당을 한다고 해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단체가 의견을 내지 못한다.’라는 법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은 그 예하 단체가 계획대로 받아내면 되고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대한인쇄기술협회는 산업을 진작시킬 마당한 사업을 제안해 관심을 유도하면 된다. 지원책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기초조사사업을 시작한다는데 이렇게 민감해야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만 그동안 인쇄업에 대한 정부에 관심이 부족했고 사양산업이라 평가절하되는 세간의 시선에 종사자들이 불편해 왔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행하게도 뜨거웠던 토론은 조정석 대한인쇄문화협회장이 “기술협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인쇄 관련업체들이 잘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문화협회와 기술협회가 부딪힐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발언과 여기에 김진배 기술협회장이 감사를 표함으로서 일단락 됐다.
김진배 대한인쇄기술협회장은 “인쇄산업 발전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려 안건을 상정했다. 정부지원사업에 도전할 수 있게 대 좋았다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며 “산업이냐 문화냐의 문제로 자칫 세력화 될 가능성도 있었는데 조정석 회장님이 정리를 잘 해준 것 같다. 보람찬 총회였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 Scene 3

 

기술협회의 야심찬 2015년 계획 성배일까? 독배일까?


이제 남은 것은 대한인쇄기술협회의 노력 여부다. 의안이 가결된 만큼 남은 행보는 고스란히 대한인쇄기술협회의 몫이 됐다. 협회차원에서 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것의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업계에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의도는 분명 협회 회원의 수를 늘리고 협회운영의 활성화를 꾀해보자는 데 있다. 문화냐 산업이냐에 대한 토론을 제외한다면 정기총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이 회비 납부와 회원 모집일 정도였다. 그런데 이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첫 바이 ISO/TC130 국제인증 지원이자 산업의 기초조사라는 걸출한 의안이었다. 지금의 대한인쇄기술협회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자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한인쇄기술협회의 2015년 예산 총액은 가입금 및 회비 수입 6,200만원을 포함 1억1,820만원이다. 이 중에서 국제인쇄 표준화 지원 사업에 편성된 금액은 150만원, 인쇄산업 연구조사 사업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200만원 뿐이다. 전체 자금도 크지 않은데다가 핵심 사업에 투입되는 지원금은 지원금이라 표현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진행이 잘 된다면야 대한인쇄기술협회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인쇄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게 한 것이 공로가 될 것이고 각종 지원정책이나 지원자금을 받는 일도 훨씬 간편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입안한 인쇄문화산업진흥법에 버금가는 법안이 만들어져 양대 발전노선이 구축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내용이다. 만약 진행에 차질이 생겼을 경우 이를 보완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빡빡한 일정과 부족한 인력으로 진행이 지지부진 해버린다면, 용두사미 정책이자 탁상공론, 생색내기 식 전시행정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화냐 산업이냐를 따지기보다. 지금의 인쇄업계 종사자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대변인 역할을 해 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협회가 적극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업계종사자들, 특히 정부지원에 아쉬움이 많은 종사자들은 저절로 모일 수 있다. 한 회원은 “명분만 분명하다면 회비는 물론 모금도 해 줄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대한인쇄기술협회가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인쇄업계 종사자들의 무엇을 진정 바라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정부를 상대로든 업계를 상대로든 발언권이 주어질 수 있다.

 

<출처 월간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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