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 역사로 본 해양활동(동양의 해양사) 동양의 해양사
이명규 2014-05-07 1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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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화함대의 모선인 정화보선 복원 모형
출처. 한국해양재단>

 

해양문화 - 역사로 본 해양활동(동양의 해양사)

 

* 춘추전국시대

먼저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각국이 생존을 위한 부국강병책으로 대규모의 관개와 수리사업, 운하 개척과 같은 사업을 실행하였으며, 그 결과 중국 대륙에서 대륙 수운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양자강의 하류와 산동 및 절강 연해안을 중심으로한 지역에서 선박 건조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종류의 선박이 등장 하였는데 특히 제(濟)나라는 기원전 567년경 산동반도 연해를 장악하며 항해 민족인 내인과 융합함으로써 해상진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기원전 486년에는 남방의 해상강국인 오(吳)와 황해에서 큰 해전을 벌이고 오국군을 격퇴할 정도의 실력을 보유한 해상강국으로 발전하였다.

오(吳)나라는 지리적으로 해상국가의 여건을 갖춘 나라로서 합려왕(기원전514∼496) 치하에 이르러 해상강국으로 발전하였는데 운하를 개척하여 내륙 수운로를 열고 양자강을 중심으로 수운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으며, 월(越)나라는 중국 동남지방의 연해안은 물론이고 지금의 월남 북부지역의 연해 수역까지 진출하여 해상활동을 전개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는 특히 산동, 절강, 복건, 광동 등 연해 항로의 이용이 활발해졌으며, 선박 건조기술이 발달하였고, 그 결과 다양한 선박이 출현하여 기원전 6세기에는 수군이 등장하면서 제·오·월 등과 같은 해상강국 사이에 해전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 진한시대

진시황 때 제인(齊人) 서복 등이 동해의 삼신산에 있다고 전해지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녀 수천명을 데리고 산동반도를 출발한 사실이 전해지는데 이는 진의 원양항해 능력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또한 진시황은 총 4차(기원전 219, 218, 215, 210)에 걸쳐 산동반도 및 발해만과 절강 연해안 시찰하였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조직적인 항해 활동으로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국력과 항해실력을 과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기원전 221년에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했으나 그의 사후 수년 내에 제국이 멸망하고, 기원전 202년에 한이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한제국은 무제(기원전 141∼87)에 이르러 지속적인 흉노 정벌과 파미르 고원으로의 진출로 영토가 대폭 확장되었으며, 동방과 서방간의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등 크게 발전하였으나, 서기 8년 왕망의 찬탈로 말미암아 붕괴하고 말았다. 중국 대륙에서 서기 25년에 후한에 의해 제국이 재건되었으며, 후한은 서역 및 유럽과의 해상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당대 최고 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한 무제는 민월과 남월(南越)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수군의 활동영역을 중국 동·남부의 전 연안으로 넓힐 수 있었다.

기원전 108년 조선 정벌과 그에 따른 4군의 설치로 중국 연해와 한반도 및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동북아시아 항로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 삼국시대

오(吳)는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해상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으며, 특히 위(魏)의 배후인 요동의 공손씨와 고구려의 지원을 얻기 위하여 해상을 통한 외교 교섭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 특히 동남부 연해 항해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여 근해 및 원해 항해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으며, 위는 한반도 연해항로를 통하여 일본과의 해상교류를 실현하였다.

 

* 위진남북조시대

220년에 후한이 멸망한 후 중국은 위·촉·오의 삼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이 분열은 280년 서진(西晉)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서진은 316년에 남흉노에게 멸망당다. 이후 화북 지방에서는 5호 16국이 난립하였고, 화남 지방에서는 동진 정권이 수립되었는데 동진은 420년에 다시 남조의 송(宋)에게 멸망되었으며, 이후 화남 지방은 제(齊), 양(梁), 진(陳)으로 이어졌다.

동진 말기 이후 남조는 고구려 및 백제와의 해상교류를 증대시켰으며, 신라는 항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백제의 사신선에 편승하여 남조와 교류를 하였다.

남조는 6세기 양대까지 일본과의 해상교류를 긴밀하게 전개하였며, 남해(南海)의 여러 국가와 해상을 통해 사신을 교류하였고 특히 송대(宋代, 420∼479)에는 중국의 선박들이 인도양을 건너 페르시아까지 원양 항해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 수당시대

이 시기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이다. 수 차례의 걸친 소모전으로 수나라는 고구려에 패하고 결국 멸망하고 만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598년 요서에 대한 고구려의 선제 공격과 수 문제의 1차 고구려 침공 시 수나라의 수군은 동래로부터 서해를 횡단하여 평양으로 직행하였다.

612년에 수(양제)의 2차 고구려 침공시 수군 4만명이 동래를 출항하여 평양을 공격하였으며, 614년에 수(양제)의 4차 고구려 침공시 수의 수군은 발해 해협을 도항하여 요동반도의 남단에 상륙하였다.

수를 이어 건국한 당은 645년에 태종의 고구려 침공 시 500척의 전함과 4만명의 병력으로 동래를 출항하여 요동반도의 비사성을 공격하였다. 647년 3월에 당의 수군은 내주를 출항하여 압록강 하구에 진입한 다음, 강안의 석성(石城)과 지리성(禾兄利城)을 공격하였으며, 648년 4월에 당의 수군이 묘도군도를 공격하였다.

660년 8월에 당 고종은 소정방을 시켜 수륙군 10만 명의 병력으로 서해를 횡단하여 공격함으로써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에 당 고종은 수군 7,000명을 백제의 웅진에 증파하였고 663년에 당군은 백제를 지원하러 온 왜국(倭國) 수군 27,000명과 웅진강(白江, 白村江) 입구에서 접전을 벌이는가 하면 668년에 당군은 수륙군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평양성을 함락시키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도왔다.

이후 당은 300여년 간 크게 번영했다가 907년에 멸망하였으며, 당이 멸망한 후 중앙에서는 5왕조가 교체되고, 지방에서는 10국이 분립하는 혼란기가 도래하였다.

이 시기 일본은 10세기 중기부터 율령체제가 무너지면서 고대 귀족 국가가 붕괴하고 무사(武士)가 새로운 지배 계층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출현하였다. 일본은 수당과의 왕래를 통해 선진 문물수입에 열을 올렸는데 593년에 성덕태자(聖德太子)의 등장으로 일본은 한반도를 통하여 중국문화를 수입했던 관행을 깨고 중국에서 문화를 직접 수입하려는 시도를 시작하였다.

이후 일본은 600∼614년 동안 3차례에 걸쳐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하였으며, 630∼838년까지 총 15차례에 걸쳐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항해술과 조선술이 열악한 탓으로 조난사고와 표착사고가 빈발하여 장보고와 신라의 선원과 선박을 임대하여 항해하기도 하였다.

 

* 송원시대

송대에 중국의 원양항해가 대단히 발전했으며, 중국 무역선이 인도양, 아라비아해, 홍해까지 진출하였다. 특히 1,1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항해용 나침반이 등장하면서 항해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원대에도 해외무역은 계속 발전하였으며, 이 해외무역을 바탕으로 원은 13세기 중엽에서 14세기 중엽까지 무역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원은 고려와 함께 1차 일본침공을 단행하였던 1274년에 900척의 함선과 15,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하였으며, 1281년에 2차 일본 침공을 단행하면서 고려에서 건조한 900척의 함선이 4만명의 병력을 싣고 합포에서 출항하였으며, 중국 강남에서 건조한 3,500척의 함선에는 10만명의 병력을 절강성 영파에서 출항시키기도 하였다.

원과 일본은 1·2차의 침공기간 중에도 해상무역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원말(元末) 60∼70년간은 양국의 해상무역이 최전성기에 이른 시기였다.

 

* 명청시대

1368년 명은 원을 북쪽의 초원으로 밀어내고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청은 1644년에 명을 멸망시키고 이민족으로서 중국을 통치하다가 1911년에 멸망하였다. 특히 명청대는 정화의 대항해의 업적을 계승하지 못하고 명 태조의 해금정책(海禁政策)을 고수하며 해외진출과 무역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 일본의 해양강국 부상

일본은 1867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의한 부국강병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양 제국과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평등관계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후 일본은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05)에서의 승리하면서 세계적인 해양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2010년-2011년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개발"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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