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 선박발달사(4) 선박이 걸어온 발자취(임진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
이명규 2014-05-07 11:32:34

 캡처.JPG

<사진. 클리르몽 호
출처. 한국해양재단>

 

1.JPG

<사진. 타이타닉호
출처. 한국해양재단>

 

해양문화 - 선박발달사(4)

 

* 선박이 걸어온 발자취(임진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

 

- 20세기까지의 선박

19세기까지 수천 년 동안 배는 사람의 힘이나 바람의 힘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인력에 의한 추진은 큰 고역이었고, 바람은 조정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제3의 선박 추진 방법이 끊임없이 모색되었는데, 18세기 후반에 증기기관이 실용화되고부터 많은 사람이 시도한 동력선 개발 노력은 1807년 미국 풀턴의 클러몬트호가 시운전에 성공함으로써 열매를 맺기에 이르렀다. 동력선의 시대를 연 것이다.

클러몬트호는 선체중앙에 기관과 보일러를 두고, 양쪽 선측 중앙에 물레방아와 같은 추진기를 설치하였다. 클러몬트호의 평균 속력은 4.8노트로, 약 시속 8.9km에 해당 한다. 참고로 1노트(knot)란 1시간에 1해리(海里)를 가는 속력을 말하며, 1해리는 1852m이다. 그후 추진기관도 계속 발전하여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스크루 프로펠러의 개발에 이르게 된다.

동력기관, 프로펠러, 철선의 등장으로 선박은 대형화를 이루었다. 특히 1858년 영국에서 건 조된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인 브루넬(Isambard K. Brunell)이 설계한 배로, 당시의 모든 기술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선박의 길이 210m, 총톤수 1만 8900톤, 항해 속력 14노트인 이 배는 승객 4000명과 승무원 400명이 탈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이었다. 당시 대형선이 3000톤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규모의 선박은 그레이트 이스턴호가 건조된 후 40년 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배는 선체가 너무 커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고 1864년에 해저전선 부설선으로 전선회사에 대 여되었다가 1888년에 해체되었다. 조선사학자들은 이 배를 가리켜 ‘가장 야심적인 실패작 (The Most Ambitious Failure)’ 또는 50년을 앞질러 탄생해서 불행했던 배라고 칭하고 있다.

19세기부터 이미 바다의 여왕으로 군림해 온 여객선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빠르게 대형 화·고속화를 이루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 간의, 정기 호화여객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다. 20세기 초의 대형 호화 여객선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타이타닉호일 것이다.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스햄프턴항을 처녀 출항하여 뉴욕으로 향하던 타이타닉호는 나흘 뒤인 4월 14일 밤 11시 40분 빙산과 충돌하여 2시간 40분 만인 4월 15일 오전 2시 20분 침몰, 승객과 선원 815명이 생명을 잃은 참사였다.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2010년-2011년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개발"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 한국해양재단 www.changpogo.or.kr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