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1980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흐름으로 평가되어 자본주의 3.0으로 명명이 된 어젠다의 근간은 레이거노믹스였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과 함께 공급중시경제학으로 발표된 이 정책 패키지는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중에서 도 감세정책은 세금을 유인체계로 인식하면서 근로와 투자를 확대시키는 방안으로 제시되어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 정책은 우선적으로 세율과 세수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세율을 올린다고 세수가 반드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보자. 세금수입(T)은 세율(a)에 납세대상소득(Y)을 곱해서 결정이 된다(T=a×Y). 공식만으로 보면 세율 a가 인상되면 세수 T도 늘어난다. 하지만 공급중시경제학은 다른 진단을 내린다. 세율이 너무 높아지면 추가로 돈을 벌어도 납세자에게 돌아오는 돈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돈을 더 벌고싶은 욕구가 줄어들어 과세대상소득 Y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누진세제가 도입된 경우 납세대상소득(Y)이 늘어나면 세율(a)도 높아지기 때문에 세금납부액(a×Y)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소득이 늘어나면 세율까지 늘어나면서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할 때,소득을 증가시킬 유인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세율 a가 높아지면 납세대상소득 Y가 줄어들어서 세수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 공급중시경제학의 핵심 논리 중의 하나였다.
이 경우 누진소득세율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세율을 낮추면 돈을 벌고 싶은욕구를 자극하여 소득이 늘어나면서 세수가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 a를 낮추면 Y가 늘어나면서 세수 즉 aY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은 매우 주목을 받았다.
법인세의 장막효과
이러한 논리는 법인세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높은 법인세율이 높은 법인세 수입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닌 셈이다.
세율이 낮으면 법인도 이윤을 많이 창출할 유인이 생기고 세율이 낮을수록 법인세수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다양하게 확장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낮은 법인세가 더 많은 법인을 유인해 들일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법인을 어디에 설립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법인세율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로벌 시대에 법인들은 자신의 입지를 결정할 때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비용이 낮은 곳을 찾는경향이 있다. 임금이 싸거나 에너지 비용이 싼 지역이 우선적으로 선호된다.
법인세율 또한 중요한 입지조건 중에 하나이다. 기업들이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에 법인을더 많이 설립하게 되므로 해당국가 입장에서는 법인세율을 낮출수록 법인이 많이 유입된다.
낮은 법인세율이 더 많은 법인을 유인하여 법인세수 기반을 확충시키는 것이다. 낮은 법인세율은 이미 존재하는 법인이 이윤을 창출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인들을 유인해 들여서 세수를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고려될 부분은 법인세가 개인소득세와는 달리 전가가 가능한 세금이라는 점이다. 개인소득세는 세금을 A에게 부과하면 A가 세금을 낸다. 하지만 법인세의 경우 한 법인에세금을 부과하면 세금부담이 다른 쪽으로 전가(transfer)된다. 법인은 근로자들을 고용하여 임금을 지급하고 납품업체로부터 부품이나 원자재를 구매하여 생산 활동을 하고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또한, 이렇게 생산과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내고 나서 이윤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지급한다.
법인을 둘러싼 관련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경우 법인은 이 부담을 일부 혹은 전부 관계자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방법은 많다. 첫째, 임금을 줄이거나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 둘째, 납품가격을 인하하거나 가격 인상속도를 줄일 수 있다.
셋째,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 넷째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줄일 수 있다. 법인세 부담이 근로자, 납품업체, 소비자, 그리고 주주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이 경우 정부의 세금수입도 영향을 받는다. 임금이 줄거나 덜 늘어나면 개인소득세수가 줄거나 덜 늘어난다. 납품가격이 인하되면 협력사의 이익이 줄어들면서 이들에 대한 법인세수가 줄어들거나 정체된다. 제품가격이 인상되면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경제활동 위축 효과가 있다. 주주들에 대한 배당이 줄면 배당소득세 수입이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법인세에는 일종의 장막효과가 있는 것이다. 법인세율을 올리면 장막의 앞쪽에서는 세금이 올라간다. 하지만 장막뒤쪽을 보면 다른 세금들이 줄어든다. 세금을 걷는 정부는 현명해야 한다. 장막 앞쪽만 보면 안 되고 장막 뒤쪽도 잘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장막 뒤에서 세금 감소 효과가 크면 정부는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이 옳다. 앞에서 더걷고 뒤에서 덜 걷는 것 보다. 앞에서 덜 걷고 뒤에서 더 걷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근로자, 납품업체, 소비자, 그리고 주주의 숫자가 많아진다. 바꾸어 말하면 법인세를 전가하는 방법이 상당히 많아진다. 이 경우 법인세율 인상은 조세 전가를 유도하여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즉, 법인세에 누진세 제도를 도입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여지가 많다. 대부분 국가에서 법인세율은 단일세율이거나 단일세율에 가깝다. 누진세는 개인소득세에 주로 도입하고 법인세는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세의 전가가 쉽게 일어나는 세금은 앞에서 많이 거둘 필요가없다는 것이다. 장막 뒤에서 많이 거두면 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추세는 ‘법인세율 인하’
조세의 형평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효율성도 중요하다.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조세이다. 법인 세율을 전반적으로 올리는 것도 문제이고 법인의 규모가 크다고 법인세율을 더 인상하는 누진 세제를 도입하면 형평성은 제고될지 모르지만, 효율성은 사라진다.
또한 이 문제를 글로벌적 시각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국가들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있다. 뒤에서 더 거두면 되니 앞에서 더 거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율을 낮춰서 많은 법인을 자국 안으로 유도하면 세율이 낮아진 만큼 세금 수입은 거꾸로 올라간다. 또한, 근로소득세, 배당소득세가 더 걷히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소비세도 더 걷힌다. 법인세율을 높게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당장 미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21%로 14%p씩이나 인하하였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최근 S&P500지수를 구성하는 뉴욕증시 상장 500대 기업의 올 1분기 주당순이익(EPS)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1%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이익 증가율이 지난 2011년 1분기(19.5%) 이래 최고수준이라는 의미이다. 미국 대기업의 실적 호조세로 인해 연간 기준으로도 순이익 증가율이 18.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세금 인하가 이윤을 증가시키면서 투자 증대→일자리증가→소득 증가→소비 증가의 선순환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최대 식품회사인 타이슨푸드의 톰 헤이즈 최고경영자 (CEO)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을 인용해보자.
타이슨푸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율 인하에 따라 올해 이익이 전년 대비 3억 달러(약3,228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헤이즈 CEO는 “늘어나는 이익은 모두 자본재투자와 근로자 급여 인상에 쓸 것”이며 “올해 초 모든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 앞으로 고용도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식품산업은 다른 분야보다 규제가 강ㅋ데,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법인세 인하의 효과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법인세 감세 이후 신규 투자 및 임금인상 계획을 발표한 기업이500개 이상이다. 미국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낮은 4.1%를 유지하고 있고, 실업수당 청구건수가1969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물론 감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일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인들과 금융인들은 이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감세로 인해 많은 현금이 늘어나면서 이 돈이 인수합병(M&A) 등 새로운 기회 포착에도 쓰이고 있다. 또한, 애플의 경우 주주 환원을 위해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세제 개편이 되면서 해외에서 올린 이익을 미국에 들여올 때 내야 할 세금이 35%에서 15.5%로 줄어들자 해외법인에 있던 돈을 미국으로 가져와서 사용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애플의 미국 주주들은 상당한 이익을 챙기고 정부는 배당세와 양도세 수입이 늘어난다.
기업의 기 살리고 투자 촉진해야
우리 경제는 어떤가.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과거에 낮춘 법인세율이 올해부터 25%로인상되었다. 대기업들에게 제공되던 R&D 세액 공제도 대폭 축소되었다. 법인에게 이익이되는 조치를 특혜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과표 구간 3,000억 원이 넘는 초(超) 대기업들에 대해 25%의 법인세가 부과되면서 77개 대기업이 2015년 소득을 기준으로 현재보다 법인세수를 2조3,000억 원 더 부담해야 할 처지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이인상된 것은 지난 1990년 이후 28년 만이다.
최근 10년간 법인세율을 올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6곳 가운데 3개국의 세수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세를 인상했음에도 전체 법인세수가 포르투갈은5.4%, 프랑스는 8.8%, 헝가리는 13.7%나 줄었다. 이에 따라 3개국은 2014년 이후 법인세를 인하했거나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세금부담은 고스란히 제품가격 상승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액주주, 근로자, 소비자, 협력사 등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법인이 어느 특정 오너의 개인소유물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법인세율 인상이 공정하다는 식으로 문제를 본다. 하지만 기업의 안쪽을 잘 들여다보면 열심히 일하는 임직원들은 다 우리 국민이다. 이들의 일자리와 급여 그리고 납품업체들이 챙기는 소득들이 모두 법인을 통해 제공된다. 기업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반도체 착시 현상이 심각하다. 작년 법인세 전체세수 59조원의 18%에 해당하는 10조 원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회사가 납부하였다. 두 회사를 빼면 실적이 엉망이다. 이럴 때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대폭적 규제완화는 경기부양을 위해 아주 좋은 대책이 될 것이다.
기업의 기를 살리고 투자를 촉진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형성되는 일자리가 진짜 일자리이다. 국민세금을 더 걷으면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부가가치창출이 아니라 소득이전에 불과하다. A의돈을 가져다가 B에게 주는 식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전 세계가 법인세 인하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 부담에 대한 보다 효율적 시각을 통해 이 문제를 대승적으로 풀어가려는 의지가 아쉬운 시점이다. 기업에 대해 유인체계를 제공하면서 이를 특혜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이 움직이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지 기업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법인세 문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美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前 한국금융연구원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 現 신용회복위원회 위원, 국민건강보험기금관리위원,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