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다. 경고음은 온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경제 지표는 온통 빨간불이다. 성장을 이끌 투자·생산·소비 3대 축이 모두 추락 중이다. 이에 따라 경제 활동의 과실인 고용과 소득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미래의 노동력인 신생아 감소 추세도 가팔라졌다. 한국 경제가 차갑게 식어간다.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기 호조 속 한국만 나홀로 날벼락
통계청이 8월 31일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지수는 전월 대비 0.6% 줄어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부터 열 달 연속 투자가 감소한 이래 20년 만에 가장 긴 설비투자 감소 행진이다. 생산과 소비도 기력을 차릴 조짐이 없다. 7월 전(全)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0.5% 늘어 전달(0.7% 감소)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0%대에 머물고 있다. 소매 판매 역시 0.5% 증가에 그쳐 둔화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은행은 이런 경제 환경을 반영해 지난 8월 3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9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반면 미국은 “경제가 완벽한(perfect) 모습”이라며 9월 27일 올 들어 세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은 0.75%포인트로 벌어져 자본유출의 우려가 한층 커졌다. 그런데도 한은은 경기 침체와 고용 부진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1.50%에서 동결하고 있다. 이런 저금리는 1116조 원에 달하는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에몰리게 하면서 집값을 달구고 있다. 정부의 거듭된 수요억제책에도 서울 집값이 뛰고 있는 배경이다.
이렇게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정부는 국민혈세 총동원 카드를 뽑아 들었다. 내년 예산(총지출)을 올해보다 9.7% 증가한 470조5,000억 원 규모로 짰다. 초(超)슈퍼 예산이다. 이미 2년간 54조 원이나 나랏돈을 풀었는데도 고용을 개선하지 못한 정부가 더욱 공격적인 재정 동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부작용만 뻔히 예상되는 악수(惡手)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는 고용에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신규 취업자 수는 3,000명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 기준으로삼는 신규 취업자 30만 명과 비교하면 100분의 1토막 수준이다. 신규 취업자가 줄면서 실업자는 올 첫 달부터 8개월 연속 100만 명을 웃돌았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었던 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참사다. 또 실업률은 4%로 껑충 뛰었다. 경기 호조로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이 모두 고용 호황을 누리는 중 한국만 ‘나홀로 날벼락’이다.
최저임금 더해진 일자리 참사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올 들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도매·소매업, 숙박·음식업, 사업시설·지원·임대서비스업 등 취약업종에서만 31만9,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산업의 중추인 제조업 취업자가10만5,000명 감소했다는 점이다. 구조조정 지연으로 조선·자동차 등에서 경쟁력을 잃은 산업벨트가 ‘러스트 벨트’로 전락하면서 실업자가 줄줄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노동시장의 허리인 30~40대 취업자가 대규모 감소했다. 특히 40대는 15만8,000명이나 급감하면서 91년 12월 25만9,000명 이후 26년 8개월 만에 최대폭의 감소를 기록했다. 수많은 가장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가 걱정스럽다. 경기가 둔화되면 저소득층부터 직격탄을 맞게 된다. 투자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면 생산이 줄어들게 되고, 그럴수록 경제 생태계의 최저층부터 돈이 마르기 시작한다. 외식을 줄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경제가 둔화되면서 가계의 소득도 꺾였다는 점이다.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유가 상승 등 교역조건이 나빠지면서 1분기에 비해 1% 줄었다. 소득이 낮을수록 충격은 더 심했다. 2분기에 1분위(소득 하위 20%)의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7.6% 줄었다. 반면 5분위 (소득 상위 20%)의 소득은 10.3% 늘었다. 1분기 추세 그대로다.
이 같은 ‘고용·분배 참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사업인 일자리 정책이 사실상 파산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5월 문대통령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부터 내걸었고 일자리위원회도 만들었다. 2년간 일자리 정책에 동원된 예산만도 54조 원에 이른다. 일자리 관련 추경을 두 차례나 했고 본예산 내 일자리 관련 예산은 지난해 17조 원에서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9조 원으로 불어났다. 더구나 내년에는 본예산이 23조5,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최저임금 인상 1년 만에 일자리가 이렇게 쑥대밭이 됐지만 하반기 이후가 더 문제다. 갈수록 상황이 나빠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 충격을 간신히 버텨낸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내년에 또 10.9% 인상 쓰나미가 덮친다. 여기다가 올 7월부터 주 52시간 노동이 획일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실업급여에 의지하다 대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내려앉아 버리면 복지비용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게 된다. 이런 재앙이 어른거리는데도 경제담당 부처와 통계청은 “폭염에 따른 위축” “도 소매업종의 과당경쟁” “경제활동인구 감소” 때문이라며 유체이탈식 변명만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분배의 정의’를 내세워 ‘소득주도 성장’이란 검증되지 않은이론을 거침없이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은커녕 2분기 연속 분배까지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올바른 경제정책기조로 가고 있다”고 밝혔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존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고용과 분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통계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필요하고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 효과는 최소 2~3분기가 지나서 서서히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고용 참사에 대해서는 “경제 체질 바뀌며 수반되는 통증”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온 사방에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득주도 성장 정책만 고집한다.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당초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가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혁신성장은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영국의 적기조례(붉은 깃발)까지 얘기하면서 규제혁파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시민단체의 눈치를보는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규제 완화 불가 원리주의’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저출산 쇼크, 식어가는 성장 엔진
그러는 사이 한국은 점차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정책방향을 틀지 않으면 돌이킬 수없는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우려되는 문제는 ‘인구절벽’의 시대가 가시화됐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출생통계’와 ‘2017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만성적저출산이 노동인구 감소를 초래해 성장동력의 한계를 맞게 되는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가 35만 명대로 추락하면서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1.05명으로 떨어졌다. 인구유지를 위한 2.1명의 절반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올 2분기는 0.97명으로 올해 전체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추락할 것이란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2027년부터는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다. 당장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등 국가 경제가 더욱 급속히 활력을 잃게 된다. 투자·생산·소비가 함께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 쇼크는 필연적으로 노동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통계청에서도 지난해 우리나라의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11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14.2%를 기록해 첫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것과 함께다.
이같이 한국 경제는 투자·생산·소비·고용·분배가 모두 뒷걸음치는 악순환의 도미노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바깥세상과는 딴 판이다. 미국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10%에 달하던 실업률이 최근 3%대로 떨어졌다. 일본은 유효구인배율이 1.5를 넘어섰다. 취업 희망자 1명에 고용하려는 기업 1.5개라는 뜻이다.
경제 활력 키우는 정책 방향으로 바꿔야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기업의 내부유보가 많은데도 설비 투자가 준다는 건 수익성을 장담하기 어렵거나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핵심 원인은 촘촘한 규제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말잔치에 그치고 있다. 규제를 풀기는커녕 기업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 옥죄면서 혁신을 기대하는 건 자가당착일 수밖에 없다.
당장 시급한 것은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중환자에게 모레주머니 차고 뛰라고 하는 격이나다름없는 소득주도 성장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동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등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 생태계의 밑바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영세자영업자들이 임금부담에 따라 종업원을 줄이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은 더 줄고, 고소득층의 소득만 늘어나는 역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그런데도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지난해 (최저임금이) 16.4% 오른건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며 “저도 깜짝 놀랐다”며 엉뚱한 발언을 했다. 장 실장은 그러면서 “소비는 굉장히 견조하고 좋다. 수출도 상당히 증가세에있다”고 덧붙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서울 강남조차 죽은 도시처럼 불 꺼진 상권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자영업자는 도산도미노에 직면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권리금이 뚝 떨어져 폐업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 몰렸다. 서울 강남역이나 신촌·홍대 같은 핵심 상권에서도 장사가 안돼 권리금이 0이 된 사례가 수두룩하다. 폐업하려는 자영업자로서는 쌓인 적자에 수천만 원 권리금까지 포기해야 할 판이다.
물론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자영업자가 워낙 많아 경쟁이 심한 데다 경제의 디지털화가가속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영업의 종말(apocalypse)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최저임금을 2년간 29% 올려 기름을 부었다. 이대로 가면 올해 680만 명 자영업 종사자중 100만 명 이상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리마저 오르면 600조 원이 넘는 자영업 부채는 금융시장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위기를 감지한 정부와 여당은 지난 8월 7조원 규모의 자영업자 지원책을 내놨지만 최저임금 속도 조절은 쏙 빠져 있다.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해법도 찾을 수 있다. 경기 침체의 삭풍이 불 기미가 보이면 땔감을 마련해놓고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 핵심은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투자와 생산이늘고 종업원의 소득이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정책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고집에서 벗어나 경제 활력을 키우도록 혁신성장으로 정책 방향을 확실히 틀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직접 방향을 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인다고 한청와대가 경제 현장의 비명에 침묵할 이유는 없다. 과도한 정치 논리가 계속될수록 한국경제는 위기 탈출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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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경영학 박사/ 前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現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요저서 : 『대통령 경제사』, 『반퇴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