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흐르는 세월의 길섶에서 다시 한 해를 맞이하게 된다. 연속적 시간을 나누어 지난날을 돌아보며 새해 희망을 간구하는 풍습. 이는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는 ‘소망하는 인간’의 세계에서만 엿볼 수 있는 정경이라 하겠다. 더구나 올 2020년은 십 단위 숫자까지 바뀌는 때인지라 신년에 거는 기대감이 각별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고도성장으로 한국경제는 단기간에 괄목한 성과를 거뒀다.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잠시 주춤했지만, 2018년도에 이르러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에 도달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000만 명을 넘어서는 ‘30-50클럽’에 진입했고, 제조업 규모, 수출량 및 외화보유액 등으로도 세계 10위를 오르내리는 경제 대국에 꼽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권위주의적 통제가 점차 퇴조되고 있는 반면, 시민사회의 자율적 역량이나 참여도가 급성장했다. 특히, 우리 국민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인습의 굴레를 떨쳐버리고 자신의 심중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능동적 존재로 탈바꿈해 사회변혁에 앞장섰고, 개인 미디어를 통해 자기 소신을 송출할 수 있게 되면서 공론장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국사회는 지난날 축적한 성과나 자신감을 상실한 채 나락으로 곤두박질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이 속한 시대를 난세로 간주하는 자기애적 고정관념이나 욕구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들이 부분적 이유로 꼽힐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존 위기감의 주된 원천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있다. 그런 추세는 객관적 자료 분석을 통해서도 확증 가능하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적 탄식이 사회 전역에 팽배하는 현황으로부터 직감할 수 있다.
국가의 존립성마저 의문시하는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의 진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국가발전보다 국민행복이 강조되면서 중요성이 더해가는 개인의 존재 이유(raison detre)에 적신호가 켜진 때문이라고 본다. 개인의 실존적 가치에 대한 담론에서 빈번히 거론되어 온 사항은 부당한 통제나 빈부격차와 같은 불평등 현상이다. 불평등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문제시되어온 보편적 쟁점이지만, “나라 꼴이 왜 이 모양이냐”는 힐난(詰難)이 회자하는 우리 사회의 최근 모습은 통상적 불평등론으로는 해명하기 힘들다는 점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분열된 국가, 쪼개진 여론, 찢어진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제시되어온 유력한 해법이 사회통합론이다. 역대 선거 후보자나 국가 지도자들이 어김없이 사회통합을 국정과제 핵심 목표의 하나로 내세워온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이념, 계층, 성, 세대, 직업, 지역, 종교 등을 소재로 한 심각한 갈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갈등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든 상존해 온 보편적 현상이요, 적당한 갈등은 사회체계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안전판이라는 통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생업에 전념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지금의 갈등 국면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그로 인한 유·무형 손실까지 감안하면 국가의 미래도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모든 갈등의 배후에 유무, 과다, 고저, 좌우, 내외 등에 기초한 불평등 현상이 내재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그 골이 깊어져 형평성 회복을 기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금수저-흙수저론, 3·5·7포세대론, 혹은 사회이동의 사다리 해체론, 갑을사회론 등이 대중적 호소력을 발하고 있음이 바로 그 점을 실증한다. 요컨대 우열집단 간의 단절을 함축하는 양극화 명제처럼, 불평등이 심화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논변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으로 거의 매주 십만 혹은 백만 단위에 이르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광장의 투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른바 ‘조국 사태’라는 것을 통해 직시할 수 있듯, 지금의 이분법적 대치 정국은 많고 적음이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닌 공정과 불공정, 정상과 비정상 혹은 상식과 몰상식과 같은 사회적 기본 가치와 맞닿는 현상이다. 양적 현상에 질적 논쟁이 가세된 이례적 형국인 것이다. 이처럼 갈등이 극단적·적대적 형태로 변질되어온 데는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치권의 책동이나 미디어 프레임 책략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분열된 국가, 쪼개진 여론, 찢어진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제시되어온 유력한 해법이 사회통합론이다. 역대 선거 후보자나 국가 지도자들이 어김없이 사회통합을 국정과제 핵심 목표의 하나로 내세워온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과거의 생활체험에 근거한 불신,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 미래적 생활전망에 대한 불안이라는 ‘3불(三不)’ 극복을 목표로 삼아온 기존 한국사회 통합론은 엄정한 법치를 통한 사법적 접근, 재분배 원리의 실현에 의한 복지적 접근 및 상호 인정에 기초한 포용적 접근을 근간으로 해 왔다. 그러나 공정성 훼손이라는 부당, 비정상적 사태의 소산인 불의, 몰상식한 처사로 인한 불쾌라는 ‘신(新)3불’이 추가된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 상황은 상대방을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차등적 존재가 아니라 종류 자체가 다른 이질적 존재, 상생 가능한 인물이 아닌 공존불가한 인물, 함께하기 불편한 기피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추출 대상으로 단죄하는 적대적 경로로 치닫고 있다.
날로 악성화되어가는 현존 사회질서의 개선을 위한 대안적 사회통합은 ‘막자’라는 사법적 접근, ‘품자’라는 복지적 접근, ‘트자’라는 포용적 접근을 넘어선 새로운 비전과 실천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그 유효한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재활적 치유를 목표로 하는 ‘풀자’라는 화해적 통합론이다. 경쟁이 투쟁, 일상이 전투, 상대가 적, 실패가 패배로 간주되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격증하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인 만큼, 2020년 새해는 자신에 대한 자성과 상대방에 대한 용서를 기반으로 한 화해적 사회통합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월간 신용경제 202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