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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호황은 계속될 것인가
신용경제 2018-11-05 11:33:23

장박원 논설위원
매일경제신문

 

최근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200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으니 13년 만에 다시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셈이다. 반도체 공장은 보안이 엄격할 뿐만 아니라 청정지역이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봐도 두 공장은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기흥공장이 동네 슈퍼마켓이라면 최신 설비를 갖춘 이천공장은 대형마트였다. 집채만 한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운반 로봇들이 천장에 달린 레일을 타고 분주하게 부품을 옮기고 있었다. 대형 설비 사이로 업무 유형에 따라 다른 색의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10여 년 전에 기흥공장에서는 하얀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카트 위에 부품 상자를 놓고 직접 날랐다. 직원 수도 이천공장에 비해 많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 모습이 이렇게 달라진이유를 묻자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생산 단가를 낮추고 효율을 높이려면 큰 장비가 필요하다. 지금 새로 짓는 공장에는 한 대당 2,000만 원이 넘는 설비가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니 공장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공장 외부에도 사람이 많았다. SK하이닉스 소속 직원과 협력업체 사람, 새 공장을 짓는 건설 인력까지 바쁘게 움직였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다.

 

반도체 호황과 불안한 전망
우리나라 산업에서 반도체가 효자 품목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반도체를 빼면 한국 경제의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수출 통계를 보면 이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 수출은 997억달러를 넘었는데 이는2016년에 비해 60.2%가 증가한 것이고 단일 품목 수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1,000억 달러를 넘길 게 확실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최상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성능, 고용량 메모리반도체 수출이 90% 이상 늘어난 배경이다. 미국이 절대적인 주도권을 보유한 시스템(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한국 수출 물량이 늘고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수출 증가율이 25.1%에 달했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주요 고객은 중국이다. 중국 수출액은 393억 달러로 62.4%나 증가했다. 중국은 2005년 이후 한국 반도체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반도체는 정보통신 분야 수출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전체 수출에서도 17%를 차지한다. 장치산업이다 보니 설비투자 점유율도 전체의 10%를 훌쩍 넘는다.
반도체 호황은 세계 메모리반도체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우리경제에는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반도체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호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만약 시장 흐름이 바뀐다면 우리 경제는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을까? 반도체 불황이 찾아왔을 때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어떤대비를 해야 하나?

D램과 낸드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몇 년간 지속된 호황은 당분간 주춤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당장 올 4분기부터 메모리반도체 평균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전망하고 있다. 다수의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D램은 3~6% 떨어지고 낸드는 10% 안팎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랜기간 가격이 급등한데다 글로벌 경기가 주춤하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등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많아 수요가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계절적으로도 4분기는 반도체 비수기에 해당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4분기부터 곤두박질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도이치뱅크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내년 이익 전망치를 5%가량 하향 조정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둔화하며 모바일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잔치는 계속될 것인가
그러나 이는 공급 측면을 보지 않은 외눈박이 시각일 수 있다.
과거 반도체 기업들이 난립했을 때는 치열한 치킨게임을 벌이며 불황을 그대로 겪어야 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혈경쟁을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는 문을 닫거나 다른 기업에 넘어갔다. 반도체 업체들 입장에서는 힘든 시간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현재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는 기업은 여기서 생존한 곳이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호황은 치킨게임이 끝나고 펼쳐진 큰 잔치였다. 그렇다면 잔치는 끝난 것일까? 끝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통해 기업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 경쟁자라고 볼 수 없다. 얼마나 먹을 게 많이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잔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만들어놓았으니 양을 줄여야 하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기업들이 공급 과잉으로 업황이 악화되기 전에 출하량을 조절할 것
이라는 의미다. 방법은 두 가지다. 생산라인의 증설 시기와 규모를 분산하고, 시장에서 일어나는 수급을 보면서 설비투자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치킨게임이 끝났기 때문에 충분히가능한 전략이다. 요즘 증권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나오는 배경이다. “내년에는 메모리 업체들이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설비투자(CAPEX, 기업이 미래 이윤 창출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보다는 둔화될 것이다. D램 수요에 대한 우려가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설비투자를 확정하지 않고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올 4분기와 내년 상반기를 지나면 다시 큰잔치가 벌어질 것으로 본다.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새로 건설하거나 확충하는 추세인 데다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반 기기들은 대부분 첨단 반도체를 탑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고점을 찍어 호황은 힘들 것이라는 분석은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 호황은 예상을 깨고 계속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평균 가격이 하락했다지만 데이터센터 서버용 D램 수요는 꾸준하다. 특히 한국기업이 개발한 고부가가치 메모리반도체는 수요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음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공급 측면에서 수급을 조절할 수 있고 신산업의 등장으로 지속적으로 수요가 생기고 있다고 해서 탄탄대로라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중국의 무역갈등과 금리인상에 따른 실물 경기 위축 등 예상할 수 있는 함정과 현시점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블랙스완
(돌발변수)이 반도체 업체를 가로막을 수 있다. 반도체 수급과 상관없이 벌어질 글로벌 경기에는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의 4가지 도전 요인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결점도 고쳐야 한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을 방문했을 때 회사 관계자는 4가지 도전 요인을 꼽았다. 첫째, 개발과 투자효율의 약화다. 반도체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고도로 집적된 메모리반도체가 탄생한 것은 이익의 상당액을 연구개발에 투입한 결과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기술에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발업체들과 격차를 유지하려면 천문학적 개발비를 쓰지않으면 불가능하다. 문제는 기술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절대투자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생산성 증가율은
그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후발업체에 따라잡힐 위험이 높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화훼이는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애플과 삼성전자가 더 이상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서 지금은 수준이 비슷해졌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없다.
이는 SK하이닉스가 꼽은 두 번째 도전적 환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바로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17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소자와 장비, 소재, 부품의 70%를
국산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굴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목표가 이뤄지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다. 푸젠 진화IC와 허페이 창신IC, 칭화 YMTC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올 4분기 양산을 목표로 D램과 낸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에 비해서는 아직 수준이 떨어지지만 의미 있는 경험을 축적할 것이라는 점에서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 강력한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이 절대적인데 이들이 실력을 갖추게 되면 가장 큰 시장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을 위협한 세 번째 요인은 반도체를 대체하는 신제품과 신기술의 출현이다. 한 예로 인텔은 새로운 메모리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새로운 컴퓨팅 방식이 등장해 기존 반도체를 무력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5세대 통신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은 반도체 업체들에 기회가 되면서 동시에 생명줄을 끊은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기존 반도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초고속, 저전력, 대용량 제품이 요구되면 전혀 다른 기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기업들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복병이다.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 등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막대한 구매력과 자체 반도체 개발 능력을 기반으로 기존 반도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 시장방향이 공급자 우위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뀔 수있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체질 강화하고 긴장의 끈 늦추지 않아야
한국 반도체 산업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약점도 있다. 장비와 소재, 부품 등 후방 산업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핵심 장비는 유럽과 일본에서 들여오고 부품과 소재도 절반 이상은 수입에 의존한다.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에 불과하다. 반도체 공장은 설비가 대부분이다. 투자의 상당액이 외국으로 흘러나간다는 의미다. 문제는 장비와 소재, 부품은 완제품과 달리 발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비와 소재, 부품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다 보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산을 쓰지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는 반도체 전문 인력에 대한 투자가 줄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학교에서 반도체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자는 10년 전에는 100명이 넘었지만 지난해 43명으로 줄었다.
정부의 반도체 연구개발 사업 지원 예산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반도체 강국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반도체 호황은 끝날 것인가? 올해 말과 내년 상반기까지는 주춤하겠지만 장기 호황이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복병이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며 초격차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 前 매일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중소기업부장 / 現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주요저서 : 『인문학, 주식시장을 이기다』, 『춘추전국의 전략가들』, 『현대자동차 왜
강한가』, 『대한민국 부동산 경제학』, 『우화경영』, 『새판을 짜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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