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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속에서도 더욱 강해지는 외교·안보정책
신용경제 2019-11-08 11:41:26

전재성 교수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한국외교에 불어 닥친 난관들
최근 몇 년간 한국 외교에 불어 닥친 난관들은 새롭고 심각하다.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북한의 도발과 핵 개발이라는 위협에 시달려왔고, 세계의 강대국들이 몰려 있는 동북아에서 상대적 약소국으로 강대국 정치 속에 살얼음 위를 걸어왔다. 그러나 분단의 긴장과 주변 강대국들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변수였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국 외교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 미·중 무역과 기술 분쟁, 한미동맹을 둘러싼 미국의 요구들, 일본의 수출규제로 악화된 한일관계,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불거진 많은 문제는 과거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한미동맹은 그간 한국의 군사안보는 물론 경제와 정치, 사회 분야의 발전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자산으로 평가받았다. 세계 최강대국과 맺은 동맹이 한국에 많은 실리를 가져다준 만큼 정치적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국력의 차이가 큰 비대칭 동맹관계에서 안보와 자율성 간의 교환관계는 보편적인 것이기에 한미 양국은 효과적으로 동맹을 관리하고자 힘을 합쳐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의 요구는 거세어졌다. 한국의 동맹 분담금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부자 동맹이 미국의 국력을 축내고 있으며, 가능하면 주한미군을 불러들이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라는 기치는 군사부문에만 머물지 않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개정, 중동과 같은 분쟁지역에 대한 한국의 지원 요구 등 다양한 부문에서 한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관대하고 신중한 미국의 패권적 역할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에게 미국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재정과 무역에서 쌍둥이 적자가 더욱 심화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바마 정부 후반부터 대중 무역적자에 대한 조정압박이 중국에 가해진 것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들어 중국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막대한 관세가 부과되고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조정을 넘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구조적으로 교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불거졌다.
더 나아가 무역 부문을 넘어 환율, 기술 등에 걸친 전방위 공세가 가해졌다.
중국은 미국의 무역적자 조정에 응할 의사를 보이면서도 미국의 대중 압박이 중국의 경제적, 외교적 부상 자체를 좌절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고 있다. 화웨이 사태에서 극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미·중 분쟁은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미·중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개별 이슈가 아닌 미·중 관계 전반에서 편가르기의 환경에 직면한 것은 유례가 없는 외교적 도전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한국과 긴장된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한국의 안보 이슈에서 미국을 축으로 삼각 안보협력을 유지해온 협력 국가였다. 과거사와 현재의 안보, 경제 문제를 분리해서 다루는 소위 투 트랙 관계가 고비를 넘기며 유지되어 오다가, 작년 10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과거사 문제가 악화되었다.
이후 양국 간 경제, 안보 관계 전반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일본은 납득하기 어려운 수출규제를 가하여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입장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맺은 군사정보보호협정, 소위 지소미아의 파기결정을 내렸다. 과거사 문제는 경제문제, 안보문제, 더 나아가 한미일 안보협력 문제로 빠르게 번져갔다.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로 가치를 공유하고, 경제발전 모델을 공유한 두 국가로서 한일 양국이 그간 쌓아왔던 우호 관계가 빠르게 악화된 것이다.
북핵문제는 26년째를 맞고 있기에 과연 문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정도로 뉴노멀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은 지금도 향상되고 있으며, 급기야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문제의 성격이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 말 북미 간 군사 충돌의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기고 2018년 초부터 협상의 국면이 진행되면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희망이 강화된 것이 사실이다. 남북간 판문점 협정과 9·19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합의 등 큰 변화가 있었지만 막상 북미 간 비핵화를 둘러싼 진전은 매우 더디고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를 협상 시한으로 못박았고, 향후 2개월간 협상의 성과가 없으면 북한은 소위 새로운 길을 모색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북한이 미국의 협상노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미사일발 사잠수함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과시하면 위기는 또다시 고조될 것이다.

 

중장기적·구조적 환경 변화
한국 외교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환경 변화는 개별 국가의 정책, 혹은 주변국 지도자들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원인은 훨씬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데 있다.
첫째, 미국 패권의 등락 주기에 관한 것이다. 국제정치는 중앙 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라고 흔히 일컬어진다. 모든 국가가 대외적 최고성을 주장하는 주권국가인 상황에서 합의에 의한 질서가 매우 드물고 결국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국제정치의 규범이다.
미국은 1945년 이래 냉전기에는 자유진영을, 냉전 종식 이후에는 전 세계를 이끄는 패권국가로 질서를 만들어왔다.
미국 주도 세계질서는 한편으로는 국가 간의 합의에 기초한 다자주의적, 자유주의적 질서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다른 국가들을 강제하는 권력정치의 질서이기도 했다. 패권을 유지하는 일은 많은 국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미국은 과대지출로 패권유지에 힘이 부칠 때마다 동맹국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때로는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리더십이 국제정치의 불확실성과 위기를 없애는 막대한 효용이 있기에 미국 주도질서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 정책을 추구해왔다.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단극의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미국의 국력이 향상될 것으로 보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국 유일의 세계질서에서 미국은 세계의 경찰 기능을 수행하느라 국력을 소모했고, 미국 주도 질서에 불만을 품은 국가들과 테러집단은 미국을 공격했다. 9·11테러와 중동 개입으로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행한 미국은 급기야 경제위기에 봉착했고 여전히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미국 대통령들과는 달리 비자유주의적 패권을 추구하고 미국 이익 우선주의를 표방한 것은 매우 새로운 일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바꾸고 있다기보다는 이미 바뀐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그간 추구해왔던 국제적 공공재를 거두어들이거나 유료화하고 있고, 공공재의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미국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유재의 성격을 강화하는추세에 있다. 소위 트럼프 리스크와 겹쳐 더욱 증폭되고 있는 미국패권의 난관은 한국과 같은 동맹국은 물론 세계 구석구석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향후 미국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미국의 적극적 리더십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국내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패권 없는 세계, 규칙보다는 힘과 이익이 지배하는 세계에 진입할 수도 있다.
둘째,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적 성장이 미·중 간에 긴장과 경쟁을 불러올 것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중국의 성장을 적절히 수용하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국제체제의 유연성과 효율성이 확보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를 수호하며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해있었지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중 간의 상호 비판은 본격화되었다. 중국은 미국이 이미 강화된 중국의 국력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고, 미국은 중국이 자유주의 질서를 저해하고 규칙을 어기는 수정주의 국가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책임소재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국 미·중 간의 경쟁은 양국의 전략적 핵심이익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가피하며 이를 타협과 협력에 의해 조정해나갈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근대 국제체제에서 부상하는 국가와 기존의 패권은 상당한 갈등을 일으키며 패권전쟁을 통해 승부를 가린 적이 많았다.
최근 회자되는 소위 투키디데스 함정의 논리이다. 부상하는 국가는 기존 질서에 점차 많은 불만족을 느끼고 다양한 조정과 도전을 추구하다 결국 군사력을 사용한 최후대결에 이
르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기존의 강대국은 자신의 쇠락이 명확해지고, 갈수록 부상국가와 국력격차가 증대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도전 국을 주저앉히려는 선제적 공
세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지금의 미·중 경쟁은 중국의 도전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제적 공세의 성격이 강하다. 이미 국내총생산의 역전이 불가피한 현실로 예측되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의 다양한 수정주의 정책들, 즉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해양영토 주장, 일대일로 사업과 같은 영향권 만들기, 사이버·우주 등 새로운 영역에서 주도권 추구 등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년 10월 4일 팬스 부통령의 허드슨 재단 연설에서 드러났듯이 향후 미·중 간의 경쟁은 비단 무역과 기술 등 경제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전방위적으로 펼쳐질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더 강한 나라 건설 위해 노력해야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을 서두르고 있다. 구조적 흐름이 굳어지고 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일본이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어기고 수출규제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나, 북한이 미·중 경쟁 구도를 의식하며 쉽사리 비핵화의 길로 나서지 않는 것도 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기존과는 다른 정책 수단을 강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변화의 본질을 직시하고 한편으로는 단기적 이슈에 대응하면서 중장기적 전략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그간 북핵 문제에서 발생하는 안보위협을 가라앉히고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통해 주변의 도전을 이겨나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해왔다. 북핵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켜 평화경제를 통해 한국 경제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다. 문제는 한반도를 위시한 국제환경이 빠르게 바뀌어 가면서 대북 전략과 외교 전략이 긴밀한 상호 선순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 향후 다음과 같은 고려가 필요하다.
첫째, 변화하는 국제정치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중장기적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은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 미국의 패권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를 추진해본 적이 없다. 미국 주도 질서를 기정사실로 가정하였고 한국 전쟁 이후에는 한미동맹을 축으로 외교를 펼쳐왔다. 앞으로 미국이 패권의 역할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국제질서가 패권 없는 상황에 진입할 경우 한국은 기존과는 매우 다른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미·중 간의 전략 경쟁 역시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을 둘러싼 경쟁으로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은 서둘러 입장을 정해야 하는 이슈와, 장기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유예하고 이익을 증진해야 하는 이슈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둘째, 미·중의 경쟁은 개별 이슈를 둘러싼 경쟁을 넘어 아시아 지역의 질서와 거버넌스에 대한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추구하고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구하여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가 미·중의 경쟁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인프라 건설을 넘어 경제 전반, 에너지, 군사안보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지역 운용 구상이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이 반드시 충돌로 귀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중 모두 기존의 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옹호하고 다자주의 규범과 규칙을 준수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한국은 그간 자유주의 국제질서하에서 번영과 민주화의 기틀을 이룩한 국가인 만큼, 미국과 중국의 구상에 적극 개입하여 강대국 경쟁의 성격을 완화해야 한다.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양자 간의 이익을 도모하는 통로가 아니라 아시아 중견 국들의 이익이 보장되는 지역구상을 만드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중견국외교가 미·중 간의 신뢰를 증진하고 아시아에서 보편규범을 증진하는 외교라 한다면 한국의 실력을 배양하여 강대국들 사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점차 군사안보 분야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지금, 미·중 사이에서 의미 있는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세계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모든 국가도 그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흔들림 속에 쓰러지지 않고 더욱 강해지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前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일본 게이오대학교 방문교수, 동아시아연구원 국가안보패널 소장/現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저서: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동아시아연구원, 2011)」, 「정치는 도덕적인가: 라인홀드 니버의 초월적 국제정치사상(한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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