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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미술·건축·역사가 스토리로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
신용경제 2017-12-01 13:34:08

잘츠부르크에서 300km 떨어져 있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
도나우 강 동편 구시가에는 중세도시의 아름다움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엄이 풍긴다. 빈은 수백 년 동안 대제국의 수도였으며, 지금도 중부 유럽의 경제, 문화, 예술, 교통의 중심지이다.

 

 

오랜 역사동안 수많은 예술가의 건축물과 자연환경으로 둘러싼 아름다운 도시임이 분명하지만, 빈을 말할 때는 무엇보다 ‘음악 도시’로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최고의 음악가를 배출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으로 둘러싸여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도시 존재만으로도 그만큼 우리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청량제 역할을 해준다.
빈의 중심부인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오각형의 순환도로에는 트램 레일이 깔려 있다.이 도로 안쪽에 위치한 구시가지 구역을 ‘링 안쪽’이라 부르고, 그 바깥을 ‘링 바깥쪽’이라고 부른다. 링 안쪽에는 옛 건축물이 집중되어 있는데, 아름다움과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에‘빈 역사 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곳이 빈 여행의 핵심이라고 보면 된다.

 

 

가장 멋진 고딕 건물 슈테판 대성당
빈을 찾는 여행자들이 처음 찾는 곳은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성 슈테판 성당이다. 이 도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 성당을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아끼고 사랑한다고 했다.
이 성당은 13세기 후반부터 무려 300여 년의 오랜 세월에걸쳐 완공되었으며, 오스트리아최대의 고딕 양식 성당인이 건물의 높이는 137m에 이른다. 한때 터키군과 독일군 소련군 등으로부터 폭격을 받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복구되어 웅장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요즘은 건축물을 지으면 몇 개월이면 충분히 완공하고 늦어도 수년 내에 완공하지만, 과거에는 건축물 하나로 대를 이어가며 지어야 가능했다. 그러했으니 건물 하나가 지닌 역사적인 의미가 얼마나 컸을까. 더불어 건물을 위시한 시민의 삶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살아있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빈은 음악 도시답게 아름다운 왈츠와 함께 새해의 문을 여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다. 매년 12월 31일 자정, 성 슈테판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를 신호로 전국의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일제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면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이 연주회는 유럽 전 지역과 미국 등지의 텔레비전에 위성으로 중계되어 새해 아침을 경쾌하고 아름다운 빈 왈츠로 축복한다. 이 곡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지금도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로서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연주되고 있다.
한편, 이 성당은 빈 필하모닉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빈소년합창단이 미사 때 노래하는 곳으로 하이든과 슈베르트도 그 단원이었다. 한때 베토벤도 합창단 반주를 맡았고, 모차르트는 지휘하기도 했다. 특히, 서른다섯 살에 요절한 모차르트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바로 슈테판 대성당에서 치러졌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왕들의 무덤(납골당)인 ‘카타콤베’가 있어 여전히 백골이 많이 쌓여 있다.
대성당을 빠져나오면 빈에서 가장 번화한 보행자 전용 거리인 ‘케른트너’가 있다. 이 거리 주변엔 쇼핑센터, 백화점,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몰려 있었다. 10여 분을 걷다 보면 빈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아름다운 국립오페라극장을 만나게 된다.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호프부르크 왕궁까지
아름다운 외관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펼쳐지는 공연 수준도 탁월하다. 이 극장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밀라노의 라스칼라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로 꼽히고 있다. 국립오페라극장은 1861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극장 개관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초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던 1945년에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빈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1955년 시청사보다도 먼저 복원하였다.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을 시민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복원했다는 점은, 그만큼 역사의식이 깨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적 뿌리를 상징하는 공간을 보존하고 가꾸는 일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요, 국민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안목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편리함만을 추구해 역사적 상징물을 필요에 따라 부수고,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건물 정면은 장식이 많은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며, 내부의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었다. 해마다 9월부터 공연이 시작되어 이듬해 6월까지 약 300여 회의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페라극장을 나와 큰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걷다 보면 왕궁의 입구인 부르크 문이 보인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내던 호프부르크 왕궁이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거주한 덕수궁과 같은 곳이다.
100여 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220년경 건축되었으며, 이때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주했던 겨울궁전(여름에는 쇤브룬 궁전에 거주)이다.
여러 왕을 거치면서 다양한 양식으로 여러 차례 증축되면서 16세기 초 지금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국의 정궁, 왕궁 단지 내 방의 개수만 2,000개에 달해 ‘도시 속의 도시’라 할 만큼 규모가 크다.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과 국제 컨벤션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궁궐안에는 승마학교, 황실 보물관, 황실 창고, 황실 예배당 등이 있고, 신왕궁 안에는 민속 악기, 무기 박물관 등이 있다.
처음 들어왔던 문인 부르크 문으로 나오면 마주 보고 있는두 건물이 보인다.

 

자연사 박물관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네오고딕 양식의 시청사
왼편이 16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와 17세기 레오폴드 빌헬름이 수집한 방대한 전시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1891년 개관한 미술관으로 파리의 루브르, 마드리드 프라도와 함께 유럽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칭한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상을 두고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마주하고 있다. 이 자연사 박물관은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과 함께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소이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광물, 화석, 박제품, 인간의 진화 과정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건물 앞 동상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만들어졌던 약 1,500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보석 부케도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 신전을 떠오르게 하는 국회의사당은 아테네에서 그리스 건축을 연구하고 온 데오필 한젠이 그리스 신전을 본떠 1883년 건립했다. 합스부르크 왕국이 사라진 뒤 지금까지 오스트리아 의회의 본거지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앞 한가운데에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분수대가 눈에 띈다. 빈 시청사도 국회의사당과 같은 해에 세워졌다. 네오고딕양식의 첨탑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첨탑의 높이는 98m이며 꼭대기 기사 상의 높이까지 무려 104m에 이른다. 멋진 건물로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어 관광객이 랜드마크로 삼고 모이는 곳으로, 빈에서 야경의 최고 명소로 꼽는다.

 

 

시청사 앞 광장은 시민의 휴식장소로 사랑받는다. 7~8월에는 뮤직 필름페스티벌이 열리고, 겨울에는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우리는 시청을 떠나 링 바깥쪽에 있는 벨베레테 궁전과 쇤브룬 궁전을 보기위해 트램을 타고 링 바깥쪽으로 이동했다.

 

벨베데레 궁전과 쇤브룬 궁전
벨베데레 궁은 1714~1723년에 걸쳐 사보이 왕가의 프린스 오이겐의 여름 궁전으로 지어졌다. 아름다운 정원을 중심으로 상궁(上宮)과 하궁(下宮)으로 이루어져 있다. 103년전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가 1914년까지 잠시 거주한 곳이기도 하다. 상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1955년 5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 외무 장관이 모여 오스트리아의 주권회복 조약이 조인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상궁 회화관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는 화려한 금색 액자에 담겨 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구스타프 클림트 이외에 오스트리아기 낳은 또 다른 대표화가 에곤 실레의 작품도 인기가 있다. 하궁은 오이겐 왕자의 별궁으로 현재는 바로크 미술관으로 다비드의 작품 ‘나폴레옹’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하궁을 나오니 옆 건물에 아열대 식물이 식물원에서 즐비하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쓰였던 이곳은 총1,400개의 방 가운데 39개의 방만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중에는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그의 놀라운 음악성을 선보인 ‘거울의 방’도 포함되어 있다.
궁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궁전 안에 수많은 방안에는 왕실의 숨은역사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왕실의 화려함 뒤에는 음모와 질투와 권력쟁탈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건들이 잠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옛날, 이 궁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상상해 보았다.
쇤부른 궁전 기념품점에는 유독 눈에 띄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물건들이 많다. 초콜릿, CD, 열쇠고리, 보석함 등 많은 물건에 한 여인이 계속 눈에 띄었다. 이는 시씨(Sisi)라고 불리는 바로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의 황후엘리자 배트(1837~1898)다.
아름다운 시씨의 모습을 상상하며 궁전을 빠져나왔다. 쇤브룬 궁전의 지붕 한가운데엔 마치 먼 옛날 화려한 대제국을 이룩했던 오스트리아 저력과 자존심을 대변하듯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이었던 쌍두 독수리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우뚝 솟아 있어 마치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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