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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세계여행 - 아름다움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전쟁의 상흔
신용경제 2018-03-05 13:21:57

18세기 섹슨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던 드레스덴은 아우구스트 왕과 그의 아들 아우구스트 3세의 60년 재위기간 동안 이탈리아 예술가, 음악가, 공예의 대가들을 동원해서 건축된다. 긴 노력의 결과 도시 전체가 바로크풍의 우아하고 고색창연한 건축물이 구시가지 안에 몰려 ‘독일의 피렌체’ 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답던 도시 드레스덴이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담은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구동독 드레스덴은 엘베 강 연안의 마이센과 피르나의 중간,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엘베 강에 의해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아름다움으로 인해 ‘독일의 피렌체’라고도 불렸던 드레스덴이지만 우리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융단 폭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45년 2월 13일, 영국과 미국 연합군의 전투기 800대가 단 두 시간 동안 융단폭격을해 도시의 80%가 파괴되고, 시민 2만5,000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역사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앞두고 ‘D-데이’라고 하는데, 이에 관해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연합국 측에서 드레스덴 폭격 예정일을 드레스덴(Dresden)의 첫 글자인 ‘D’를 따서 D-day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력하다고 한다.
그렇게 처참한 폭격이 있었음에도 다행스럽게 드레스덴은 쓰러지지 않았고, 긴 세월을 두고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성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있는 드레스덴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드레스덴의 자랑 젬퍼 오페라 하우스
첫 번째 방문지는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을 포함한 주변 일대였다. 궁전 가까운 곳에서 버스를 내려 광장으로 향하자 도로 가운데로 트랩이 다니는 레일이 보인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젬퍼 오페라 하우스. 이 건물은 1941년 건축가 젬퍼의 설계로 르네상스와 후기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극장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복구하여 1985년에 재개관했다고 한다. 바그너의 대표작 ‘탄호이저’를 초연한 곳으로 유명하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로 꼽힌다. 현재 이 극장은 드레스덴 오페라와 발레단, 오케스트라가 사용하는 전용 극장이기도 하다.
극장 앞 중앙에는 작센 요한 왕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 왼편으로는 츠빙거 궁전이 있는데, 이는 작센과 폴란드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아우구스트의 명으로 지었다고 한다.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기 위해 1709년 설계를 시작하여 1728년 완공한 작센 바로크 건축의 대표
적인 건물이다.
마이스터 회화관에는 19세기 루벤스, 라파엘로, 렘브란트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회화관과 무기 박물관이 증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1945년부터 시작된 복구공사는 1963년
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궁전에서 한눈에 보이는 왕관의 문은 바로크 양식의 폴란드식 왕관이 올리어져 있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맞추어 균형미 있는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복구하였다.
십자형으로 조성된 안뜰에는 4개의 분수가 있다.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박진감 넘치게 춤을 춘다. 회화관, 무기박물관, 도자기 컬렉션, 동물학, 수학, 그리고 물리학 박물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입장하는 곳이 다르다. 이 궁전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밖으로 둘러 파 만든 못인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개신교에서 개종한 가톨릭 궁정 대성당
젬퍼 오페라 하우스 건너편에는 가톨릭 궁정 대성당이 있다. 작센 주는 개신교가 지배적인 지방이었다. 아우구스트 2세가 폴란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왕실 성당으로 지었다. 가톨릭 궁정 대성당은 작센 주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1980년 이후 드레스덴 마이센 가톨릭 교구의 대성당이 되었다. 정식 명칭은 ‘성 삼위일체 대성당’이다.
성당 외관에서는 건물 위를 둘러싸고 서 있는 78체의 성인들의 석상이 자리하고 있는데,섬세한 조각상과 건물의 아름다움은 경외함을 느끼기 충분하였다. 성당 내부에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18세기 최고의 오르간 제작자였던 고트프리트 질버만의 최후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파이프오르간은 서로 다른 악기 소리를 내는 스톱 3, 4개가 있는 것부터 700가지 악기 소리를 내는 것도 있는데, 모차르트는 ‘악기의 제왕’이라며 극찬했다. 파이프오르간은 대체로 건축 설계 단계에서 구조와 용도, 음향은 물론 지역 역사와 전통을 고려해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제작 과정도 건축과 흡사해 해외에선 ‘만들다’(make)가 아닌 ‘건축하다’(build)로 표현할 정도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의 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그 위용만으로도 소리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드레스덴 여행의 백미 레지덴츠 궁전
성당 밖으로 나와 바로 우측에 있는 건물이 레지던츠 궁전이다. 13세기 작센 왕의 거처로짓기 시작하여 증축과 복원을 거듭하였다.
1701년은 화재로 소실되자 아우구스트 왕은 절대군주의 막강한 부와 권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새롭게 궁전을 지었고, 이곳에 후기 바로크 예술작품과 보물을 수집 보관하였다. 왕은 ‘드레스덴에 이 탑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왕의 말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레지던츠 궁전 또한 2차 세계대전의 대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궁전은 1986년부터 재건을 시작해서 2013년에 마무리되었다.
보통 유럽을 여행하며 오래된 유적지를 방문하면 일부를 가리고 보수작업이 한창인데, 드레스덴은 보수가 아닌 재건 수준의 복구공사였다.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이 궁전은 현재 수많은 걸작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그뤼네스(녹색 금륭 천장)는 황금, 상아, 은, 다이아몬드 등 각종 보석이 가득해서 마치 육지의 ‘보물섬’이라 할만하다. 실제로 다양한 보물을 보유하고 있어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보물이 있는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벽화와 바로크풍 탑을 포함해 훌륭하게 복원한 건물 역시 또 하나의 보물처럼 경이로웠다.

 

 

 

레지던츠 궁전 안에 있는 교통박물관인 요하네움을 둘러싸고 있는 슈탈호프는 중세시대에 마상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 경기장이다. 슈탈호프의 외벽에 있는 ‘군주들의 행렬’은 길이가 무려 101m에 이른다. 작센을 다스린 35명의 역대 군주를 그린 것으로 1876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원래는 방수 성분의 재질로 그렸으나 1907년에 벽화의 손상을 막기 위해 2만 4천 장이 넘는 마이센 도자기 타일에 옮겨 놓았다. 왕가의 인물 외에도 59명의 과학자와 예술가, 농민이 있고 화가인 빌헬름 발터도 그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에 거의 유일하게 보존된 유적이라 더욱 가치가 있다.

 

시민의 가슴으로 재건된 교회 ‘프라우엔 교회’
프라우엔 교회는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대가로 칭송을 받던 게오르크 베어에 의해서 설계된 루터파 개신교회이다. 높이 95m의 돔은 드레스덴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과 비교하
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을 당한 뒤, 처참하게 무너졌고, 구동독 정부는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는 취지로 그대로 버려두었지만 독일통일 후, 1992년 다시 옛 모습을 찾기 위하여 방치되었던 약 만 개의 파편조각을 시민들이 다시 모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레스덴 50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10월 30일,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외관을 보면 군데군데 폭격으로 불에타서 검게 그을린 부분과 새로운 자재로 사용한 환한 부분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독일 태생 미국학자로 귄터 불로벨은 재건을 맡았다. 자신이 받은 상금 모두를 재건하는데 쓰기 위해 기부금으로 내놓을 만큼 작업에 각별함을 나타낸 그는, 어린 시절 눈으로 직접 보았던 교회의 모습을 떠올리며 돌조각들을 감정해 가며 원위치에 복귀시키려고 노력했다.
또한, 실제 건축에 사용된 잔해 약 3,800개를 일일이 3차원 그래픽기술로 파편의 위치를 찾아내 재건했다고 하니 그 정성만으로도 감탄할만하다. 프라우엔 교회는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바뀌었다. 이를 입증하듯 교회 앞의 마르
틴 루터 동상이 있다.

 

엘베 강 가의 아름다운 유럽의 발코니 ‘브륄의 테라스’
드레스덴을 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꼭 들르는 ‘브륄의 발코니’를 마지막으로 코스로 찾아갔다. 브륄의 테라스는 엘베 강 변을 따라 조성된 작은 공원으로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릴정도로 조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1740년 아우구스트 3세의 친구인 브륄 백작이 원래 도시를 방어하던 요새의 일부였던 이곳을 멋진 정원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브륄의 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은 시인 괴테가 지어 준 것이다. 브륄의 테라스 쪽으로는 멋진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데, 예쁘다고 알려진 드레스덴 미술학교와 에메랄드 빛 지붕이 매력적인 호텔, 그 앞으로 이어지는 난간까지 장관을 이뤄 아름다운 한 폭의그림과 같다. 브륄의 테라스 위에서 바라본 엘베 강과 아우구스투스 다리 광경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멋진 풍광 때문에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이 생긴 게 아닐까?
드레스덴은 영국군과 미국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80% 이상을 잃었다. 100년 이상이 걸릴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도시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드레스덴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다. 현재진행형 속에 과거가 들어와 숨 쉬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시작된 전쟁은 결국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수백 년의 역사를 파편으로 만들고 나서야 종결됐다. 하지만 그 아픔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어떠한 이유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절대 악이자 금기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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