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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세계여행 - 과거를 거울삼아 평화의 선봉장이 되다
신용경제 2018-05-02 14:50:57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세계대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특히 두 번의 패전국 독일은 1989년 통일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폭격당한 그 모습 그대로인 곳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잊지 않기 위해 영구 보존하는 것이란다. 역사는 빛과 그림자의 직조물이다. 우리 역사에서 굵직한 상처를 안겨준 일제가 남긴 건축물을 없애느냐 보존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했지만, 무조건 지우는 게 능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어두운 역사 역시 이 땅에 각인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교과 교과서’로 후손들에게 전해 줌으로써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독일의 어두운 그림자를 밟다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 베를린 처참한 외관 탓에 ‘썩은 이빨’로 불리는 빌헬름 교회를 지나 전쟁의 피해가 제일 컸던 하노버로 향하였다. 아직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곳은 생산의 중심지이자 교통 요지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기간 동안 석유 작전과 같은 전략폭격의 주요 목표였다. 전쟁 기간 중 88회의 폭격이 있었고, 이 때문에 도시의 90%가 파괴되었으며 6천여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전쟁 후 하노버는 영국의 신탁통치 지역이 되었다. 1946년 한때 하나의 주로 독립했다가, 하노버는 니더작센 주의 주도가 되어 북독일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인구 50만으로 독일 내에서도 5번째로 큰 도시다.
하노버는 목가적인 소도시와 마을로 둘러싸여 있으며,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 멋진 조화를 이루어낸 유럽의 중심 도시라 할 수 있다. 특히 하노버는 ‘강둑’이라는 어원에서 느낄 수 있듯 라인 강을 이용한 무역을 통해 발전하였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귀족스런 도시이며, 시내의 주요 관광명소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에기디엔 플랏츠 역 부근에 도착하니 에기디엔 교회가 바로 보인다. 별 의미 없이 지나칠 뻔한, 첨탑만 보고는 그저 흔한 오래된 교회라고만 생각하였다. 이곳은 원래 영국의 코번트리(Coventry) 대성당의 외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여 교회 지붕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3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그 후 복원되지 않은 채 사방의 벽들과 가운데 있는 십자가와 종 몇 개만이 보존되어 있다. 이는 전쟁의 참상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복구하지 않은 것인데, 실제로 교회를 보기 위하여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매일 하노버를 찾아오고 있다.
하노버는 원자폭탄 최대의 피해도시 일본 히로시마와 자매도시를 맺었다. 서로 전쟁의 상흔을 위로하고 교훈 삼자는 의미일 게다. 히로시마와 하노버 두 도시는 패전의 최대 시련을 겪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에기디엔 교회의 첨탑에 들어가는 길에 자그마한 종이 하나 걸려 있는데, 이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보내온 ‘평화의 종’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매년 8월 6일에는 종을 한 번씩 울린다. 전쟁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서일까. 안으로 들어서니 더욱더 숭고해진다.
신도 전쟁을 막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을 그대로 용인한 것인가. 신성한 교회도 무너질 수 있음에 과연 신이란 존재하는지,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들었다.

 

첨탑과 벽면만 보이는 에기디엔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초라하게 남은 외벽을 양옆으로 하고 앞과 뒤에 보이는 풍경이 심상치 않다. 지붕이 있었다면 못 보았을 장면, 알록달록한 덩굴가지가 전면을 덮고 있고, 십자가가 홀로 서 있는 뒤편의 연단엔 누군가가 놓아둔 꽃이 있다. 바닥에는 1m 정도 크기의 히로시마에서 가져온 돌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돌 하단에는 「6. AUG, 1945. 8:15:17」 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미국 에놀라 게이 호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시간인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17초를 의미한다. 돌 형상은 너무 작았지만 숭고하며, 바닥에 놓인 낙엽들은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이곳이 하노버의 과거와 현재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하노버 왕국을 과시하듯 화려한 하노버 신시청사
다음으로는 신시청사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고, 다가갈수록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청이라고 생각하기엔 믿기지 않는 비주얼로, 실제로 저기서 공무원들이 일을 하겠느냐는 의구심도 들게 했다. 실내로 들어서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미녀와 야수가 손을 잡고 내려와 춤을 출 것 같다.
유럽은 대부분 성주를 중심으로 발달한 나라들이어서 지방마다 여전히 특유의 색깔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유서 깊은 대도시들에는 화려한 시청사가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름 ‘하노버 왕국’으로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던 하노버인 만큼, 이 도시의 시청사 또한 상당히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들어 관공서들이 과거의 건물을 헐고, 새로 짓거나 별도의 위치에 새롭게 신축하고 있는 것처럼 하노버에도 구시청사와 별도로 약간 떨어져 있는 위치에 신시청사가 있다. 신시청사는 상당히 큰 규모의 공원과 연못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관광객이 좋아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신시청사라고는 하지만 약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로 빌헬름 2세 시대의 전형적인 독일식 건축 스타일을 반영했다. 1912년 완공된 이후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손상을 입기도 했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건물의 특이점은 돔 위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대개 수직으로 올라가는 다른 건물들과 달리, 약간 비스듬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도록 설계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신청사 입장은 무료이며, 내부를 홀에서 간단한 하노버의 모형과 전쟁 당시의 상황 등을 볼 수 있다.
하노버 시청사(시민들과 함께공유하는 하노버 시청사) 앞에는 큰 연못이 있고, 그 옆으로는 잘 가꾸어진 공원이 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곳에는 다양한 새들이 노닐고, 하노버 시민이 이 근처를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날이 마침 축제기간이어서인지 수십 명이 형형색색의 옷을 걸치고, 분주히 악기 연주를 연습하고 있었다. 감독처럼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지휘를 하고 있다. 본 공연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예행연습을 보니 오히려 동네 산책을 하는 듯 포근한 시간이 된다.
그들이 공원을 떠난 후 일행도 넓고 깊은 호수 쪽으로 건너갔다. 호수에 비치는 신시청사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한창 독일제국이 번성하던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라 마치 며칠 전 보았던 베를린 대성당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노버 중심의 옛 구시청사와 마르크트 교회
하노버역 앞 크뢰프케 광장을 지나서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근사한 건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하노버 구시청사다. 외관은 평범한 붉은빛의 벽돌이지만, 고딕양식으로 지어져 인상적이다. 뾰족한 기둥들과 건물 꼭대기에는 조그마한 첨탑들이 눈에 띈다.
구시청사는 1410년부터 건축을 시작해 수차례에 걸쳐 개축이 이뤄졌다. 화려한 궁전 같은 신시청사가 들어서고 나서 한때 철거계획이 세워지기도 했지만, 구시청사 보호를 위해 조직된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철거를 막았다고 한다. 이후 대부분의 관공서는 신시청사로 옮겨지고 약간의 역할만 남아, 레스토랑 등 상업 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구시청 건물 붉은 벽돌은 최초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구시청사는 하노버를 넘어 북부 독일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신혼부부들이 이 앞에서 종종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단다.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일제 치하의 건물이라 하여 문민정부 시절 중앙청 건물을 단숨에 헐어 버렸던 우리와는 달리, 독일인들은 역사적인 건물을 보존하여 관광객을 부르는 오묘한 지혜는 참고할 만하다.
구시청사를 끼고 구시가지 초입에 있는 커다란 교회 앞으로 이동했다. 높은 교회 탑이 독특한 문양을 갖고 있어 인상적이다. 양 측면으로는 시계가 설치되어 있고, 뒷면으로는 벽돌로 별 문양이 있다. 마르크트 교회의 높이가 워낙 높아 반대편 좁은 거리 끝에 붙어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마르크트 교회 탑 높이는 97m로 꽤 높은 편이지만 사실 최초 계획은 이것의 두 배였다고 한다.
구시청사보다 이른 시기에 건축된 교회답게 하노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꼽힌다. 마르크트 교회 측면에 해시계가 설치돼 있다. 너무 높아서 식별이 가능할지는 의문이 들었다. 마침 날씨가 흐려 해가 가려져 확인할 길도 없었다.
마르크트 광장의 한복판에 선 마르크트 교회는 하노버 구시가지의 중심에 있다. 상인들의 기부로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이후 사업비가 부족하여 공사가 중단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14세기에 북부 독일의 신고딕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애초 계획상으로는 지금보다 두 배 높은 첨탑을 가지고 있어야 할 교회였다. 이런 이유로 계획에 못 미친 채로 완공되었다. 간소한 교회의 내부는 항시 개방된다. 관광지가 아닌 교회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중앙의 제단만 빛을 발하는 엄숙한 분위기이다.
마크르트 교회가 건립되고, 몇백 년 후에 그 옆에는 마르틴루터 동상이 세워졌다. 이 교회가 역사적 흐름 속에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던 것 같다.
긴 역사만큼 다양한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근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있고, 사라졌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이 미래 후세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는 산물이고, 미래를 대처하는 자세에 표본이 된다.

 


현재 하노버시의 시장은 평화를 위한 시장 회의의 부의장이다. 이 단체는 2020년까지 모든 핵무기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쓰라렸던 그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평화를 외치는 선봉장이 된 것이다.
중국 고사 와신상담(臥薪嘗膽) 생각이 떠오른다. ‘가시 많은 거친 나무 위에서 자고 쓰디쓴 쓸개를 먹는다’는 뜻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디어 심신을 단련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실패를 맛보거나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굳은 의지를 의미한다. 마지막까지 목표를 향해 힘든 순간을 견뎌내자고,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현재 독일은 와신상담을 통해 세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독일은 한때는 승전국으로, 한때는 패전국으로 지내며 역사를 그대로 남기고 그것에 교훈을 더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냈다. 우리의 역사는 독일과 달라 어느 것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기는 힘들지만, 마냥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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