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나라’ 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는 영국은 이 두 가지 닉네임만으로도 양면성을 느낄 수 있다. 의회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의 발상지, 그리고 세계 공용어인영어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신사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을 통해 전 세계에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도 했다. 영국이 밤일 때, 반대로 인도는 해가 떠 있다는 의미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영국. 우리도 일본을통해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피지배자 처지에서는 얼마나 참혹한 상황이었나를 되돌아볼 수 있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사호선문학회(四護旋文學會) 고문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실제 영국은 우리나라와도 좋지 않은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885년 3월 1일부터 영국 동양함대사령관 W.M. 도웰 제독은 군함 3척을 거느리고 와서, 1887년 2월 4일까지 거문도(여수시 소재)를 불법 점령했다. 이후에도 을사늑약 당시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 동맹을 체결하여 영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하여 주었던 슬픈 과거가 있다. 약육강식의 양면성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역사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역사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보면 영국은 항상 높은 위치에서 있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역할로, 그들의 식민지 활동마저도 마치 문명의 전달자로 미화되어 있다.
그들로부터 배울 점도 많지만, 선을 그어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영국을 볼 때는균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합왕국 영국의 수도 런던
흔히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이름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정식명칭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라면 영국의 정식명칭은 조금 긴 이름의 ‘위대한 브리튼 북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흔히 UK, 영국연합왕국이라고 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을 보면 그들의 역사도 가늠해볼 수 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상징 깃발이 합쳐진 것인데, 통합하던 당시 웨일스는 이미 잉글랜드에 포함돼 있어 별도로 표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영국이란 이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국(英國)’은 ‘England’를 한자로음차한 ‘양길리(英吉利)’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즉, 영국이라는 말은 잉글랜드만을말할 뿐, 이 단어가 그외의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를 포함하는 말은 아니다.
영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나라다. 그러한 영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역시 영국의 수도 런던이다.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도시로, 차분함과 우아함으로 대변되는 영국의 다양한 문화와 풍습,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런던은 정복왕 윌리엄 1세 시절인 1066년부터 천 년 가까이 영국의 수도로서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원전 43년 브리타니아가 로마의 속주(屬州) 편입된 이후 지금까지, 연합왕국 UK의 중심인 이 도시에는 정치·행정 및 군사가 집중돼 있다. 또한, 40여 개국에 이르던 연방을 거느린 영연방의 권력의 중심지로 영국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도시로 각인됐다.
가장 먼저 사상가 칼 마르크스 무덤을 찾다
영국은 근대과학과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자본주의를 일으킨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자본주의에 가장 강렬하게 맞섰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두 사람의 흔적 또한고스란히 남아있다. 런던 시내에서 북쪽 교외지역에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가 있는데, 영국에 와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다. 그의 묘지공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인 입장료 4파운드를 지불해야만 하는데, 이는 1960년 한창 좌우대립이 심하던 때, 우익청년들이 묘지에 침입해 칼 마르크스 무덤을 폭파시키려고 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이 곳에는 이스트 공동묘지와 웨스트 공동묘지가 있는데, 이스트 공동묘지 한 켠에는 사상가 칼 마르크스가 잠들어 있다. 너무나 흥미로운 대목이다. 묘비에는 ‘Workers of all lands united(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공산당 선언’ 속 유명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는 평생을 떠돌아다녔다. 1860년에 런던으로 이주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머물렀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그는 ‘자본론’을 집필하여 출간했다. 죽음을 맞이할 당시에그는 무국적자 신분이었으며, 그의 장례식에는 열 명 정도만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의 벗이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은 추도사를 남긴다.
“On the 14th of March, at a quarter to three in the afternoon, the greatest living thinker ceased to think(3월 14일 오후 2시45분,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사색을 멈추었습니다)”
지금도 마르크스 하면 육신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공산주의 사상적 토대를 구축한 인물로 영원히 살아남아 있다. 지금도 공산주의 이념을 토대로 현존하는 사회주의 나라들이 있다. 이 이념을 자본주의와 접목시켜, 장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영국 산업혁명의 상징 ‘타워 브리지’
어릴 적 배웠던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말은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그 정도로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에 가장 큰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이다.
바로 그 현장에 왔다. 영국 산업혁명의 표상 타워 브리지와 런던 왕실의 역사를 그대로 담은 전쟁 박물관이 있는 런던 타워를 찾았다.
타워 브리지, 템스 강은 대영제국 전성기 때의 기념비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주요 무대여서 하루에 수백 척의 배가 템스 강을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조수 간만의 차가 6m 이상인데다 다리와 강 수면이 10m 이상 차이가 난다.이 때문에 배들이 쉽게 통과하지 못해 다리 중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개폐식 다리를 짓게되었다.
호레이스 존슨의 설계로 1894년 완공된 빅토리아 양식의 타워 브리지는 길이 250m, 다리하나의 무게만 해도 1,000톤 가까이 된다.
들어 올리는 데에 1분 30초 정도의 소요된다. 대형 선박이 지나갈때에는 다리 중앙이 위로올라가며 ‘八’ 모양이 된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현재는 다리가 올라가는 횟수가 일주일에2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타워 브리지 전시관에서는 이와 같은 타워 브리지의 설계와 역사를 볼 수 있었다.
런던 왕실의 역사를 그대로 담은 전쟁박물관 ‘런던 타워’
런던 타워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으로, 영국 왕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1483년 13세 때 즉위한 에드워드 5세와 동생 리처드가 브리지 타워에 유폐되었다가 암살된 뒤, 리처드 3세가 왕이 되었다. 1544년 레이디 제인 그레이는 부모의 야심 때문에 여왕이 되었지만, 전 왕의 친자식인 메리가 등극하자 반역 혐의를 받아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헨리 8세는 영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이다. 영국 크리스트교 역사를 바꿔 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6명의 아내와 결혼하여 그 가운데 2명의 아내를 처형하였다. 1536년 두 번째 왕비 앤불린이 간통죄로 처형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왕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왕족이나 죄인을 유폐하는 감옥과 처형장의 역할도 했다.
어두운 역사가 깃든 성이기도 하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용도를 변경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도 역사상 왕들이 여러 후궁을 거느리고 왕권에 이용했듯이, 영국 또한 왕이 현존했던 시대에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왕권을 과시하였다. 암암리에 왕권과 권력층의 암투가 벌어지면, 왕궁에 있는 여자들이 모함을 받고 처형당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권력과여자는 떼 놓을 수 없는 바늘과 실 같은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곳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갖춘 성이다. 이중 성벽 사이로 대포가 놓여 있으며 지하에는 전쟁 당시의 각종 무기도 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왕실의 보물관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530캐럿의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왕관, 의복 등 영국 왕실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를 둘러보는 데만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템스 강 유람선을 타다
웨스트민스터 브리지 유람선 선착장에서 지붕이 없는 배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관광객과 섞여서 투어가 시작되었다.
템스 강물은 상수원으로 이용된다고 하는데, 오염과는 관계없지만, 육안으로는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북해로 흘러들어 밀물 썰물영향을 받았는지 강물의 양이 변하는 것 같았다.
템스 강을 일정구간 따라가며 강변에 있는 건물들의 이름과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런던은 서울면적의 2.5배이고, 인구수는 서울보다 조금 적은 850만 명이다. 아름다운 건물이 늘어선 템스 강엔 많은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72층으로 런던에서 가장 높은 타워로 우뚝 서 있는 ‘더 샤드’, 아주 천천히 움직여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관람차 ‘런던아이’… 유람선을 타고 이처럼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감상하면서 지나갔다. 유리 달걀로 불리는 런던시청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애니메이션을 이용하여 설계했다고 한다. 템스 강여러 개의 다리를 지날 때마다 손을 흔들며 관광객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비언 리와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애수’의 워털루 다리를 지날 때는 함성이 더 커졌다. 특히 빅벤, 국회의사당을 직접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런던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이처럼 고전문화와 현대 문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나라 영국에서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역사적 상징을 담는 건축물,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에 미친 영향들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