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는 특히 우리나라와 밀접한 역사적 관계가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축전을 벌이던 4세기 무렵부터 국호도 없던 왜(倭)와 교류를 했다.
그중 백제는 기울어져 가는 시기였다. 국가적 어려움 앞에 문명과 기술을 전수하면서, 군사적인 도움을 얻으며 연명했다. 이때 가장 활발한 교류를 한 지역이 바로 오사카다.
글·사진 : 김정일
4·19 혁명정신 선양회 회장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오랜 역사 속에서 강과 산업, 사람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온 오사카. 삼각주로 이루어져 있는 오사카에 흐르는 하천 면적은 시 면적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매우 두드러진 오사카의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오사카에서는 도심부를 둘러싸는 하천을 ‘물의 회랑’으로 정비하여 새로운 도시의 매력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자연의 일부인 하천을 중심으로 발달해서인지 나라나, 교토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 유적이 많지는 않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박물관 덴슈카쿠(天守閣)
먼저 찾아간 곳은 일본의 3대 성(城) 가운데 하나인 오사카 성이다.
오사카 성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 권력의 상징으로 건축한 곳으로, 그가 일본통일 원정을 나가는 데 있어 본거지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15년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여 완공시킨 성의 면적은 약 100만㎡로 135개의 축구장 넓이와 맞먹는다.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깊은 해자와 깎아 자른 듯한 성벽, 그리고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을 듯한 여러 개의 성문과 망루를 지나면 8층 높이의 위풍당당한 덴슈카쿠가 나타난다.
덴슈카쿠의 1층에서 7층까지는 오사카 성의 400년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자료관이 있다. 1층 영상실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오사카 성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상영하고 있으며, 한국어 자막으로도 볼 수 있다. 2층에서는 투구, 진바오리(갑옷 위에 입는 옷) 입어보기 체험을 할 수 있고, 3·4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시대, 도요토미 연관 유물을 비롯한 전국시대 오사카 성에 얽힌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5층에는 오사카 여름 전투도, 병풍, 영상과 미니어처 모형이, 7층은 오사카 성을 축성하고 일본 열도 통일을 이룬 도요
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를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으며 8층에는 오사카공원과 주변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독특한 간판의 ‘도톤보리’
과거의 흔적인 오사카 성을 뒤로하고, 도톤보리를 찾았다. 현대를 대변하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독특한 간판으로 유명한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시이다.
강 주변에 형성된 번화가로 오사카의 대표적인 먹자골목인 도톤보리는 길게 뻗은 아케이드 사이로 고급 상점들이 즐비하고 많은 음식점과 형형색색의 간판들, 술집, 오락실, 극장, 포장마차 등의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눈알을 빙글빙글 굴리는 용 모습의 간판, 길쭉한 다리를 이리저리 뒤흔드는 거대한 게 모양 간판, 무지개 빛깔로 반짝이는 초대형 네온사인까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옷가게 앞에 있는 받침대에 올라서서, 큰 목소리로 호객하는 젊은 상인들의 모습을 보니, 예전 우리의 남대문시장에서 많이 본 모습이 떠올랐다. 지구촌 어디에서든, 청춘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활기가 넘쳐서 기분이 좋아진다.
우연히 도톤보리 강에 유람선이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길로 바로 유람선을 찾아갔다. 우리의 청계천보다 조금 큰 것 같은데 유람선이 다닌다니 무척 신기했다.
유람선은 돈키호테 에비스 타워 앞의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약 2km 구간을 왕복하는 20분 코스였다. 가이드는 친절하게 다가와 사진도 찍어주고, 운행시간에 도톤보리에 관한 이야기, 건물 등을 소개해주어 시간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다시 배를 돌려 돈키호테 쪽에 있는 승선장으로 돌아가니 어느새 유람선 관광은 끝이 났다.
사슴들의 놀이터 나라공원(奈良公園)
나라(奈良)는 일본 최초의 국가가 세워진 곳으로 710년부터 70여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나라에는 사슴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나라 공원을 비롯하여 일본 최대의 청동 불상인 도다이지(東大寺) 대불과 고후쿠지(興福寺),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등 유명한 사찰과 신사들이 있어 가볼 곳이 많다.
오사카에서 출발해 약 1시간 정도 지나 나라 공원에 도착했다.
1880년에 만들어 1922년에는 나라의 명승지로 지정되었다는 이곳의 총면적은 축구장1,100개 합친 것과 맞먹는 8만㎡에 달한다. 출입을 가로막는 담이나 울타리가 전혀 없어 누구나 가까이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공원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약 1.200마리의 사슴이 울창한 수목과 잔디밭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이드는 살면서 볼 수 있는 사슴을 모두 다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사슴이 많다 보니 ‘사슴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이곳 사람들이 사슴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가스가다이샤(春日大社)라는 신사(神社)에서는 사슴을 신의 사신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에도 사슴이 신으로 표현됐는데, 어쩌면 여기서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사슴들은 밤에만 우리에 넣어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자유롭게 노닌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관광객들의 손에 든 과자나 먹을거리가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심지어 과자를 달라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니 사슴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공원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공원 잔디다. 사슴이 풀을 뜯어 먹을 때, 입의 구조상 지면에서 2~3cm를 남겨 놓고 뜯어 먹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잔디 깎기의 역할과 잡초 제거를 겸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나라 공원의 잔디는 늘 아름답다고 알려졌다.
문득 어릴 적 동화가 생각났다. 매일 황금알을 낳는 닭을 보고, 인간이 욕심을 부려 배를 가르면 더 커다란 금덩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닭의 배를 갈라보니 아무것도 없이 닭만 잃었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야욕은 파멸을 부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사슴이 풀을 일부 남겨 놓아 사슴도 풀도 살 수 있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한편, 공원 안의 고후쿠지(興福寺)와 탑을 통해 일본 불교도 엿볼 수 있다. 고후쿠지는 도다이지와 함께 나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주요사찰로 710년 교토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후지와라 집안 개인 사찰이다. 원래 170여 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전란과 화재로 거의 소실되고 현재는 그 가운데 10여 개만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산주노토(三重塔), 고주노토, 고쿠호칸(國寶館) 등은 매우 유명하다. 고쿠호칸은 국보급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중요 문화재, 공예품 등 2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청동대불로 유명한 사찰 도다이지
도다이지는 호류지(法隆寺)와 함께 나라 시대의 양대 사찰로 알려졌으며 세계 최대의 청동대불로 유명하다. 수차례의 화재로 규모가 무척 작아졌지만, 8세기 초 쇼무천황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만든것이다. 26년이란 긴 세월 끝에 탄생한 역작으로 절을 창건할 당시에는 거대한 불당과 탑이 드넓은 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문인 남대문을 지나면 중문을 거쳐 대불전에 다다른다. 본당인 대불전은 실제로 보면 거대한 크기인 너비 57m 높이 48m이다. 초대형 목조 건물로 내부에 청동대불(높이 15m, 무게 380톤)을 모셔 놓았는데, 청동대불 오른쪽에 있는 나무 기둥 밑의 조그만 구멍을 빠져 나오면 액운을 막아준다는 재미난 속설도 있다.
나라 옛 모습을 재현한 나라마치(奈良町)
나라마치는 나라현에서 19세기 말의 전통가옥을 재현해 과거의 풍습과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나라마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지역은 시루시와노이케 연못의 남쪽 일대, 일찍이 간고지(元興寺)의 절터 유적에 형성된 지역을 말한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유
명세를 타고 있는 간고지는 세계 유산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한 곳으로 야스카 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본당의 기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와라고 하는데, 그 기와를 보는 순간 우리 백제시대의 기와를 만난 듯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 백제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여러 부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곳, 그래서인지 이번 도다이지와 나라마치의 여행에서는 백제시대의 건축술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속에 백제 문화가 살아 숨 쉬고, 그 재연된 역사적 숨결을 재음미할 수 있어서 새로운 감회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