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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에게도 윤리강령은 필요한가?
신용경제 2018-02-05 10:53:45

지난 2011년 1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Denver)에서는 전미경제학회(AEA: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연차총회가 개최되었다.
전미경제학회는 1885년에 성립된 유서 깊은 경제학회로, 현재는 약 18,0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전미경제학회에서 발행하는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는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학술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미경제학회 연차총회는 학회의 명성에 걸맞게 매우 큰 규모로 진행이 되는데, 총회가 열리는 3일 동안 진행되는 학술 세미나는 500여 개에 이른다. 2011년 전미경제학회 총회가 이전의 총회와 구분되는 점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금융위기 예방에 경제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연결이 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윤리강령 제정을 촉구한 300명의 경제학자
자성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2011년 연차총회의 첫 번째 토론주제는 ‘윤리,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Ethics, Democracy and the Economy)’로 정해졌다. 토론의 패널로 나선 미주리대(University of Missouri-Kansas City) 교수 윌리엄 블랙(William Black)은 경제위기는 경제 주체들의 부정부패에 기인한 측면이 크며, 경제학자들이 이를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랙 교수의 주장은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철저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제학계는 아직 사회학·인류학·정치학 등 다른 학문 분야에서 제정한 것과 같은 윤리강령을 공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연차총회에 앞서 300명에 가까운 경제학자들은 전 미경제학회에 윤리강령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보낸 바 있다. 공동서한의 서명에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와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크리스티나 로머(Christina Romer)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경제학자의 윤리라는 것은 사실 모호한 측면이 크다. 제국주의적이라고 비판받을 정도로 경제학의 연구 범위가 매우 넓고,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기 힘든 분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윤리강령 제정을 촉구한 경제학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300명의 학자가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이해상충’에 관련된 윤리강령이다.

 

 

경제학자들은 기업의 이사직이나 자문역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실을 숨기고 해당 기업이 속한 분야에 대해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객관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스탠퍼드대 교수 대럴 더피(Darrell Duffie)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장을 역임한 로라 타이슨(Laura Tyson) UC버클리 교수가 각각 무디스와 모건스탠리의 이사직을 겸임하고도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상충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맷 데이먼(Matt Damon)이 내레이션을 맡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Inside Job)>(2010)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월스트리트와 긴밀히 연결돼 있었고, 이것이 글로벌금융위기를 부추겼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우울한 학문, 경제학
한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전미경제학회 연차총회가 열릴 무렵 이해상충 문제와 관련된 한 연구결과를 보도한 바 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소개한 연구는 매사추세츠대의 제럴드 엡스타인(Gerald Epstein)과 제시카 캐릭-하겐바트(Jessica Carrick-Hagenbarth)가 수행한 것으로, 이들은 미국의 특정 금융개혁 프로그램을 지지한 19명의 유명 금융경제학자들이 언론에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조사했다. 19명의 학자는 대부분 금융기업에서 이사직 등을 맡고 있었지만, 언론에 기고할 때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이코노미스트지는 표본의 수가 적기 때문에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과 연관된 경제학자들이 편향된 연구결과를 내놓는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을 거부할 필요 또한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윤리강령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큰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 전반에 대해서도 윤리적 시각이 개입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이해상충 문제와는 달리 대답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경제학은 분명 있는 사실을 그대로 분석하는 실증경제학 (positive economics)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규범경제학(normative economics)도 존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경제학의 가치판단은 어디까지나 실증경제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과거 스코틀랜드 출신의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칼라일의 이 표현은 경제학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수없이 언급됐다. 경제학의 윤리에 관련된 논란에서도 칼라일의 말이 자주 인용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조지메이슨대의 알렉스 태버럭(Alex Tabarrok) 교수에 따르면 칼라일은 노예제도의 옹호자였고, 경제학의 윤리적 시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이는 매우 역설적이면서도 우리에게 정답은 알기 어렵다는 이치를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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