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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구지도(絜矩之道)’의 경영철학
신용경제 2017-04-03 10:09:50

 

내가 사서삼경에 대해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대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강연을 하셨던 분이 “세종대왕께서 삼천 독을 하신 책이 있는데 이것이 大學이라는 사서삼경 중의 한 고전”이라고 하셨다. 그 후로 大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았던 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의 이기동 교수님을 모시고 大學을 공부하는모 임을 몇몇 교수님들과 함께 만들어서 했었다. 이것이 이기동 교수님과의 인연이 되어 교수님으로부터 사서삼경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다.

 

大學에 나와 있는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르침이 바로 ‘絜矩之道(혈구지도, 잣대로 재는 것과 같은 정확한 방법)’의 가르침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중에서 가장 큰 이치는 아마도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일 것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치를 따라 하는 것일까? 중국 고전의 四書(사서) 중 하나인 大學에는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에 대한 글이 나와 있는데 이 글에는 治國平天下를 하는 데에는 絜矩之道가 있다고 가르친다.

 

所謂平天下 소위평천하 在治其國者 재치기국자에는
有絜矩之道 유혈구지도니라.
所惡於上 소오어상으로 毋以使下 무이사하하며,
所惡於下 소오어하로 毋以事上 무이사상하며,
所惡於前 소오어전으로 毋以先後 무이선후하며,
所惡於後 소오어후로 毋以從前 무이종전하며,
所惡於右 소오어우로 毋以交於左 무이교어좌하며,
所惡於左 소오어좌로 毋以交於右 무이교어우하니,
此之謂絜矩之道 차지위혈구지도니라.

 

천하를 화평하게 하고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는 잣대로 재는 방법이 있다.
윗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뒷사람에게 먼저 하지말며, 뒷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앞사람에게 하지 말며,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왼쪽 사람과 사귀지 말며, 왼쪽 사람에게서 싫은 것을 가지고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지니, 이것을 잣대로 재는 방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大學 10장>

 

이기동 교수님의 사서삼경 강설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있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윗사람이 나에게 꾸중을 하면 듣기 싫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별로 잘못한것도 없는 아랫사람을 꾸짖으면 아랫사람의 마음도 윗사람에게 꾸중을 듣고 싫어하는 나의 마음과 같기 때문에 그도 역시 싫어할 것이다. 이 마음을 헤아린다면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로 재는 것과 같은 정확한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랫사람이 나에게 불손하게 대하는 것이 싫다면 나는 윗사람에게 불손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을 헤아리는 방법이고 이것이 잣대로 재는 방법, 즉 絜矩之道인 것이다.
絜矩之道는 나라를 다스리는 경영철학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큰일들을 해결하는 큰 이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모형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수의 대기업들에 자원과 인재가 집중되면서 중소기업들은 점점 더 영세한 위치로 전락하게 되었고, 대기 업들의 경쟁력과 비교해서 중소기업의 경쟁력 격차는 자꾸만 벌어져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가져온 대기업집단에 대해서 소위 ‘재벌해체’와 같은 과격한 단어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모형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일까?
국가의 경영에서도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을 도입해야 한다. 絜矩之道의 설명에 나오는 윗사람을 대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아랫사람을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어떨까?(물론 기업 간 비교에서 위와 아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지만,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기에 나는 이런 비교를 하고자 한다) 대기업집단을 바라보는 중소기업들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를 헤아려 보자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자원에서 많은 것들이 갖춰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규모의 기반기술에 대한 투자가 불가능하다. 중소기업은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가 없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정보와 시장에 대한 판매망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기업처럼 투자할 수가 없다. 중소기업은 해외의 수요자들과 직접적인 연결을 통해서 거래할 수 있는 신용과 자금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국가정책에서 헤아릴 수 있다면 絜矩之道의혜안으로 국가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絜矩之道의 방법은 중소기업의 네트워크화를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을 동일한 산업 내에서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국가가 대기업들과 함께 파트너십을 형성해서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기술과 시장정보, 제품개발 프로세스, 유통채널의 전 단계에 걸친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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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닥(똑똑한 닥터)’ 앱

 

또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도벤처기업이 자신이 보유한 인프라와 노하우를 지원해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의 성공적인 창업을 유도하는 것이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이다. 이러한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을 대한민국 1호 벤처기업 ‘비트컴퓨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트컴퓨터는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개발과 헬스케어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벤처기업이다. 당시 이미 선도기업으로 시장에서 자리 잡은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벤처기업 간의 괴리는 매우 컸으며 서로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이 적은것이 현실이었다. 초창기 벤처기업 중에는 이러한 모임이 성공한 상위기업 간의 친목단체 정도로 여겨 거리감을 두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트컴퓨터는 개별기업의 능력만으로 가는 것보다 네트워크를 통해 성공한다면 파이를 더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비트컴퓨터는 서로 간의 괴리를 좁히고 후배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벤처협회, 소프트웨어협회 등을 설립하여 선도 벤처인과 후배 벤처인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게다가, 비트컴퓨터는 병원, 의료기관의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앱 ‘똑닥(똑똑한 닥터)’서비스를 운영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비브로스(대표송용범)와 인연을 맺은 뒤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돕고 있다. 양사는 비트컴퓨터가 33년간 쌓아온 전국 병의원 고객을 비브로스의 ‘똑닥’ 앱과 연결해 강력한 헬스케어 정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존 의료용 앱들이 단순히 위치와 전화 정보만을 제공하는 한계를 뛰어넘어 비브로스는 질환에 따라 최적의 병원을 전문의 검수를 거쳐 검색할 수 있게 만들었고 예약시스템도 구축했다. 비브로스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비트컴퓨터는 2016년 3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의료전시회인 ‘제32회 국제의료기기 병원설비전시회(KIMES 2016)’에 마련한 자사 부스에서 비브로스의 ‘똑닥’ 앱을 같이 홍보하며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비브로스는 비트컴퓨터 사업부인 닥터비트 사업부의 영업망, 대리점과 연계해 공격적인 고객 확보에도 나설 수 있었다. 최근 비트컴퓨터는 비브로스에 직접 투자까지 결정해 사업 종료 후에도 비브로스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해줬다. 비트컴퓨터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비브로스는 앱 런칭 6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수 60만을 돌파하고, 전국 250여 개 병원과 제휴 중에 있다.
이처럼 비브로스가 좋은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선도벤처기업인 비트컴퓨터의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이 있었다. 선도벤처기업은 매칭된 창업기업에 직접투자를 진행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국내외 공동마케팅을 진행해 창업기업 판로 확보도 지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멘토링 및 컨설팅, 시제품 제작, 마케팅 등 사업에 필요한비용 일부와 선도벤처기업 내에 마련된 공간에 입주해 경영노하우 전수, 바이어알선 등 밀착 지원했다. 비트컴퓨터의 사례는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을 가진 선도기업들은 상대방과 함께 공감하며 그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 헤아리면서 처지와 사정에 맞는 도움을 진심으로 줄 수 있는 배려와 포용의 덕목을 지닌 진정한 리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絜矩之道의 경영철학을 가진 국가정책과 선도기업들이 대세를 이룬다면 어려워 보이는 중소기업과 벤처창업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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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만
성균관대 교수
smha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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