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뉴스
등록된 기사가 없습니다.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아픈 만큼 성숙한다? 살벌한 질병의 세계사
신용경제 2017-03-02 15:31:14

1960년대 말 미국 공중위생 국장이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한 이래로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전 세계 인구 중 세 명당 한 명은 질병으로 삶을 마감한다. 아마도 미국 공중위생 국장은 세균과 박테리아도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못 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인류가 생각지도 못할 눈부신 속도로 말이다.

 

1.jpg

 

슈퍼스타 컴백, 월드 투어 나선 콜레라?


인류의 역사는 시작부터 질병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인류에게 눈부신 속도로 진화하는 질병은 항상 풀기 어려운 과제
였다. 대재앙과 맞먹는 전염병들은 인류의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기며 인류를 아픈 만큼 성숙시키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세계 정복도 순식간에 이루곤 했다. 남극대륙을 제외한 전 대륙을 휩쓸었던 콜레라가 그 주인공 되시겠다.

 

고작 설사와 구토를 반복하는 콜레라가 그토록 무서운 질병이었나 싶지만 마땅한 약이 없는 상태에서 약 100개에서 1억개의 균이 소화기에 침투해 설사와 구토를 일으킨다면 심각한 탈수로 4~12시간에 쇼크에 빠질 수 있고 적당한 처방을 하지 않으면 수일 내에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의학적인 지식이 전무 했던 18세기 유럽에선 콜레라만큼 두려운 전염병도 없었다. 1817년 인도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콜레라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위력을 과시하다가 6년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 만에 돌연 활동을 접었다. 그리고 3년 뒤, 슈퍼스타의 컴백처럼 화려하게 인류 역사에 나타나 무서운 기세로 맹렬히 활동했다. 그런데 문제는 컴백한 콜레라의 위상이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해졌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훨씬 넓어진 활동 무대를 더하고 보니 세기의 종말 기운까지 느껴질 판이었다.

 

2.jpg

 

시베리아를 통해 동유럽의 관문을 넘어유럽으로,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지나 아프리카로 진격한 콜레라는 이제 월드 스타급이었다. 급기야 중국까지 진출하며 범 글로벌적인 활동을 펼친 콜레라는 접촉한 사람은 인종과 지위고하를 논하지 않고 누구나 감염시키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렇게 인류는 무려 180년 동안 콜레라의 공포에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6차례 동안 은퇴와 컴백을 번갈아 진행할 동안 사람들은 치료는 고사하고 변변한 예방책 하나 알아내지못했다.

 

구석까지 몰린 이들이 간혹 궁여지책으로 예방과 치료법으로 내놓기는 했다. 콜레라가 군대는 아니지만, 협곡들을 폭파해 길을 막아 보려는 시도도 동원됐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이번엔 과대포장 전술처럼 큰 징을 시끄럽게 울리거나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쉼 없이 소리를 지르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나마 종교의 힘으로 콜레라를 이겨보고자 구원의 공휴일을 지정한 영국은 양반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모든 것이 그냥 과거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jpg

 

새옹지마의 교훈을 질병에서 배운다?


콜레라가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지만, 결과적으로 해만 끼쳤다고는 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깨끗한 도시와 위생적인 생활은 콜레라의 괴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콜레라가 만연하던 18세기~19세기 도시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럽고 어두웠다. 1696년 영국에서는 창문이 여섯 개이상 달린 집에 부과되는 창문세로 웬만한 가정에서는 유리로 된 창문을 구경하기 힘들었고 길거리에선 사람들의 대소변을 어디 가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악취라는 별명을 가진 템스강은 가축들의 대소변은 물론이요, 사람들의 대소변 각종 공장 폐수와 쓰레기가 사라진 물고기를 대신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어두운 집에서 템스 강의 더러운 물을 식수로 마셨다. 그나마 옥외 변소를 가지고 쾌적한 저택을 소유한 부유층은 콜레라로부터 안전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열악한 식생활과 그보다 더 열악한 공중위생이라는 악재 속에 살고 있는 빈민층의 감열 속도는 빨라졌고 이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기 힘든 부유층도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콜레라를 이길만한 면역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런 최고의 환경에서 왕성하게 콜레라는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이라는 공무원이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콜레라가 창궐할 때마다 시골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생존율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나름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이 기특한 공무원은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하나씩 집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막힌 결론에 이르게 됐다. 바로 도시의 기분 나쁜 냄새가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도시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 도시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론이 악취라는 것이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그 악취의 근본 원인이 도시의 공중위생 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에드윈 채드윅의 주장이 나름 타당하고 판단한 영국 정부는 1848년, 공공의료법을 시작으로 창문세를 폐지하고 공중위생에 힘을 쏟았다. 도시는 점점 깨끗해졌다. 그리고 식수를 소독하고 공급하는 일을 시가 담당하면서 도시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손을 깨끗이 씻고 깨끗한 환경에서 소독된 물을 마셨다. 그리고 콜레라의 악몽에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콜레라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오물이 떠다니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이한 점은 콜레라의 예방이 빈민층을 포함한 사회 복지 발전을 가져 왔다는 점이다. 공리주의자였던 채드윅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기득권 세력에게 막대한 세금으로 도시 정화 산업을 펼쳐야 한다고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콜레라로 인해 빈민층을 위한 시설이 만들어지고 정비됐다. 자 이만하면 최소한 콜레라로 아픈 인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전보다 성숙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인류가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기 어려울듯하다. 인류와 질병과의 전쟁사엔 피할 수 없는 재앙의 보존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출현해서 개인은 물론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질병은 기존의 문화와 가치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상 관점을 바꿔 질병을 중심으로 보자면 인류의 역사는 질병을 주인공으로 장편의 공포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질병에 새로운 숙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무시무시한 질병의 역사를 감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흥미로운 본편은 이제 시작이다.

아픈 만큼 성숙했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질병과의 전쟁사<2>은 다음 편에…

 

4.jpg

 

<월간 신용경제 2017년 3월 호>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