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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숙한다? 살벌한 질병의 세계사 <2>
임진우 2017-04-03 17:28:25

 

만약 이 세상에 질병이 없었다면 무병장수의 꿈을 이룬 인류는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을까? 질병이 없었다면 분명 조금 덜불행했을지 모르지만, 아팠던 만큼 좀 더 나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질병은 수많은 고난 중에서도가 장 난이도가 높은 레벨에 속했고 변화만이 이 난관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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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으로 100만여 명이 사망한 1630년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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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인 페스트균과 쥐벼룩 _ 흑사병으로 대규모 피해를 본 유럽에서는 이로 인해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

 

 

중세를 붕괴시킨 주역은 따로 있다?
1346년, 지중해부터 유럽을 강타한 한 질병은 서양사를 바꿔놓았다. 고열과 함께 고약한 악취가 나는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어가거나 50%의 생존율에 자신의 운을 실험해야 했다. 이 질병으로 빈에서는 하루에 6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파리에선 8백여 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4년이 흐르자 사망자 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태에 이르게 됐다. 유럽의 인구를 3분의 2로 감소시킨 이질병을 사람들은 페스트 혹은 흑사병이라 불렀다.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흑사병은 인구를 반 토막 내더니 경제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흑사병으로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자 임금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세력은 임금법령으로 임금 인상을 막아보려 했지만 당장 한 사람의 노동자가 급했던 자본가들에게 이런 압력이 통할 리가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의 지위는 임금 인상 그 이상으로 상승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자본을 기본으로 하는 도시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흑사병으로 사망한 지주가 늘어나자 농민들은 이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더는 한명의 지주에게 묶이지 않게 된 농민들은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노동시장이 발생한 것이다. 토네이도 급의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귀족들은 봉건제가 붕괴하면서 자연스럽게 몰락했다. 중세의 상징인 봉건제를 무너트린 흑사병은 여세를 몰아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회는 경제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전례 없는 공포를 경험한 사람들은 교회에 더 맹목적으로 매달렸고 성직자들은 그들을 향해 원죄를 강조하며 충성을 강요했다. 설령 교회의 가르침이 억지스럽다 하더라도 파문 이상의 징벌을 감수할 용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죄인과 신자들이 거의 같은 수로 죽어 나가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성직자를 포함해 교황의 추기경 중에서도 7명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자 사람들은 더는 교회를 신임하지 않았다. 염세주의가 만연해지면서 당연히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믿음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종교개혁이 싹트기 시작했다.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던 교회도 ‘오랜 병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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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의 공포는 아이러니하게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흑사병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으로 쓰인 문학작품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재앙의 법칙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전염병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그러들기도 했지만, 흑사병은 그 시작을 알아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결국, 맹목적인 믿음만으로는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교회는 1965년 해부 금지령을 철폐했고 희생양을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는 예수의 고행을 모방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이 재앙을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던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여기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에 대한 박해도 중지되었다. 자포자기에 들어선 이들은 도대체 이 세기말의 징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알지 못해 더 답답했다.
그들이 종말이라고까지 여겼던 이 사건은 신의 가르침도 벌도 아니었다. 물론 길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운이 나빠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문명이 질병을 만들고 질병이 문명을 만든다는 말처럼 흑사병은 의심할 바 없는 인재(人災)였다.
페스트균이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하는 흑사병은 설치류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 속에 사는 기생충이다. 감염된 벼룩이 인간을 포함해 다른 포유류에게 옮겨가 병을 옮기는 이 병은 원래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일부 산악지대에서만 발견되던 풍토병이었다. 그런데 이 풍토병이 협소한 지역을 벗어나 유럽 전역을 활보하게 된 데에는 매우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침략 혹은 자발적인 이동, 바로 전쟁과 무역이다. 지중해를 강타했던 페스트를 유럽에 들인 것도 로마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흑사병이 유
럽에 진출한 건 꽤 오래전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중세에 들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하였던 건 그 이전보다 중세의 환경이 더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악몽은 없는 것처럼 어두운 흑사병의 그림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지구 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894년 홍콩에서 세 번째 활약을 시작한 흑사병은 시베리아의 마몬트부터 아메리카의 다람쥐에게까지 균을 옮기며 지금도 어디선가 맹활동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불행한 점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흑사병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흑사병은 항생제를 투여하고 병든 설치류를 박멸하면 잠잠해질 수 있지만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는 빈도와 진화의 속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훨씬 더 빨리 진화하며 놀라운 속도로 정보를 교환하고 변한다. 인간이 바이러스의 진화를 따라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에이즈만 보더라도 HIV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virus)는 아프리카의 영장류에서 인간으로 옮겨오면서 엄청난 변화를 진행해왔다. 한 사람이 수천 가지의 변형 숙주가 되기도 한다. 효과를 본 약물의 내성은 몇 달, 며칠 만에 HIV바이러스 정보망에 걸린다. 바이러스는 서로 정보 교환을 하며 내성이 생긴 약물을 피해 재빨리 진화한다. 실제로 지구에는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슈퍼바이러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만 내성을 피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박테리아 역시 항생제에 내성을 갖추며 진화한다. 이 무서운 상황을 시카고 대학 질병 생태학자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은 ‘재앙 보존의 법칙’ 으로 설명했다.
바이러스는 숙주 집단이 증가하면 복제와 돌연변이, 재조합의 기회가 증가하므로 변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인구가 증가할수록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도 아니고 재앙 보존의 법칙이라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우리가 이 질병들과 싸워 이길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위생을 점검하고 긴장을 끈을 바짝 쥐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작은 틈을 보이면 그 사이로 질병은 곧바로 파고든다.
한때 많은 국가에선 감염성 질병이 조금 수그러지는 듯하자 곧바로 공공보건자금을 삭감했다. 그리고 백신 연구를 게을리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디프테리아(diphtheria), 홍역, 황열병 같은 질병들이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이 재앙의 법칙에서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제일 쉽지만, 자칫 잊기 쉬운 ‘기본’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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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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