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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치료법
신용경제 2017-04-03 18:15:04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교 1학년이었을 때 서울 출신의 친구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왜 너는 말끝마다 ‘진짜가?’라고 물어보니?”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서 “난 그런 적이 없는데?”라고 대답했지만, 몇 차례 내가 그렇게 되물을 때마다 그 친구는 “봐, 지금 또 ‘진짜가?’라고 했잖아”라며 지적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 말을 많이 쓰고 있었다.
지방 출신의 내가 말끝마다 “진짜가?”라고 물어보는 것은, 친구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 말이 사실인지를 물어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아, 그래?”에 가까운 뜻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여러 번 “진짜가?”라는 말을 듣다 보니, ‘내 말을 잘 믿지 못하는가?’, ‘혹시 나를 의심하나?’ 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그 말의 뜻이 ‘사실 너의 말에 추임새를 넣는 의미로 한 말로, 너의 이야기가 나의 삶과는 달랐기에 흥미진진함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을 의미한다’는 투의 장황한 설명과 함께, 나는 너를 의심하며 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자기변호를 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나의 언어습관이 행여 다른 사람에게는 신뢰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그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미 내 별명은 “진짜가?”가 되어있었고, 언어습관의 차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선생님! 침 맞고 진짜 좋아질 수 있나요?”
“한약을 먹으면 정말 괜찮아지나요?”

 

이와 같은 질문을 직업적으로는 가장 많이 듣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진료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없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파도가 살짝 일 때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퇴행성’이니, ‘노화’니하면서 자신의 증상에 내려진 가혹한 선고로 인하여 ‘더 좋아지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확신에 쌓인 채,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쉽게 개선이 되지 않음으로 인한 몸과, 마음고생 하여 지쳐있는 절망의 때에 ‘희망’의 가능성을 물어보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호, 만약 그렇다면 그건 믿지 못해서 불신감에 가득 찬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줄 구세주(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 주면서 남은 인생의 마라톤 기간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비록 질병을 지니고 있지만 삶을 찡그리며 살지 않도록 도와줄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고귀한 질문을 앞에 두고, 일었던 마음의 파도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사회지도층까지는 아니지만 진료실에서만큼은 진료를 이끄는 리더인데, 그들의 숨겨진 고통과 아픔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음으로 인해 약간(보다는 많이) 거친 투로 말하긴 했지만, 그 고통의 독주곡을 희망의 변주를 통해, 환희의 송가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을 해달라는 시적인 언어를 왜 발견해내지 못했을까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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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자신의 힘듦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자유롭게 소통하기보다는 정책 규칙 법 룰을 앞세워 잘 들어주지 않다 보니, 과장해서 이야기해야만 조금 귀 기울이는 것 같은 사회적 문법을 배워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조금은 더 거칠고, 힘들어하는 면을 강조하는 습관이 후천적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편하게 이야기해도 그대로의 진실을 신뢰하며 들을 수 있고,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밝은 대화들이 좀 더 넘쳐나는 진료현장이면 좋겠고, 그런 사회이면 더욱 좋겠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침 한 방!!! (이 있다면) 내가 먼저 맞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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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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